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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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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BY 손풍금 2003-12-08

우리동네 맞은편 신호등을 건너 돌아서면 하나은행이 있고,
그 이층엔 동사무소가 있고 그 옆 큰건물엔 롯데리아가 있고 농협이 있어
며칠전 장에 가는 시간을 놓쳐 그 건물앞에 물건을 펴놓고 오후 장사를 한적이 있었는데 장터에서 하루종일 장사한것보다 더  장사가 잘되어 흠, 흠,, 하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찾아갈 장터하나 더 건져놓아 한결 여유로운게 든든하기조차 했다.
 
오늘 아침 한없이 무너지는 몸이 이불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못일어나면 바보~!'하는 혼자소리에 벌떡 일어나 늦어버린 시간을 뒤따라 며칠전 장사하던 동네 아파트앞으로 나갔다.
몇몇 상인들이 추위에 떨며 짐을 펴지 못하고 있어 '왜 안펴세요?'하니
'열시에서 열한시 사이에 구청직원의 단속이 나오는데 이 동네가 제일 심해요'한다.
차속에 앉아 어서 단속반원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다가 열한시가 되어서도 안나타나 물건을 펴기 시작했다.
얼마전부터 친구의 도움으로 그릇도 함께 갖다 팔면서 간단한 화장품 바구니에 비해 그릇은 일일히 상자에서 꺼내 진열을 해놓아야 해 짐펴는시간이 꽤 오래걸렸다.
겨우 다폈나 했는데 옆자리에 폈던 속옷장사하고 숙녀복장사가 급하게 짐을 싼다.
무슨일인가 싶어 뒤돌아 보니 검은잠바에 검은 바지를 입은 건장한 세청년이 한손에는 카메라를 또한사람 손엔 커다란 노트가 또 한사람 손에 지휘봉인지 뭔지,,
아무튼 시커먼옷차림에 눌려 말한마디 붙이질 못하겠다.
그리고는 다른말은 필요없이 '치워요. 빨리'하고 쳐다본다.
옆에 함께 한사람들은 빠른 손놀림으로 이미 차에 물건이 거의 실린 상태로 차에 앉아 시동을 켜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가만히 서있는 내게 다가와 '아줌마는 뭐예요?'한다.
 
'장사하러 왔는데요'
 
'여기는 노점상 금지구역입니다, 빨리 치우세요'하는데 뒤에 선사람들이
'여기서는 장사못해요'하는데 당체 시커먼옷에 주눅이 들려 한마디도 뭐라고 할수있는 분위기가 아니였다.
'네. 치울께요'주섬주섬 풀어놓았던 상자속의 물건을 도로 담아 차에 올렸다.
노점단속차량이라고 써붙인 트럭에 앉아 줄곧 내쪽을 쳐다보고 앉아있는 사람들을 뒤에 두고 물건을 쌓는데 추운줄도 모르고 땀이 났다.
허리한번 펴고 하늘 올려다 보는데 차에 앉아있던 직원이 빨리 여기 떠나라는 손짓을 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하자 내 뒤를 따라 오다 없어진 구청차를 뒤로 하고 어딘지 모르게 헤메고 돌아다니다 또다른 아파트 단지 상가옆에 자리를 잡고 물건을 내렸다.
반쯤 물건을 내렸을까. 두터운 잠바로 몸을 감싸고 머리에 머플러를 감고 마스크를 쓰고 눈만 보이는 아주머니가 다가와서는 '여기서 장사하려구요?'한다.
 
'네'
 
'여기 안되요. 구청에서 조금있으면 단속나올 시간이예요.
그리고 저기 상인회에서 알면 못하게 해요, 괜히 물건 펴고 접다 하루해 다가요. 여기서는 못해요'한다.
 
'..........네에.'
 
상가앞 화단에 앉아 숨을 돌리고 다시 물건을 차에 올렸다.
시계를 보니 열두시가 넘어서고 한시가 다 되가고 있었다.
몇번이나 짐을 내리고 올리다 보니 팔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상인들중의 누군가 한번 단속나오면 주변상가에서 신고하지 않는 이상은 나오지 않는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 다시 우리동네 아파트쪽으로 향했다.
설마 또 나오랴..나오기만 해봐라.. (나오면? 나도 빨랑 도망가야지이..)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긴 주차장옆에 물건을 펴기 시작했다.
물건을 펴면서 내가 찾아다니는 다정한 장터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울컥 솟았다.
그리고 부피가 크지않고 단촐하고 그동안 내가족과 생활하게끔 해준 내 화장품도 더없이 소중했다.
물건을 펴고 나니 두시가 되었다.
하늘은 처음처럼 환하지 않았고 조금씩 어두워지더니 빗줄기를 뿌리기 시작했다.
'단속반 지나고 장사좀 하려고 여지껏 차안에 있었더니 비가 내리네.'하던 젊은여자는 비가온다고 하면서도 물건을 진열하고 있었고 아무래도 희꾸무리한 날씨가 수상하여 몇번이고 올려다 본 하늘에서 흰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 눈이예요. 이봐요, 눈이네요. 첫눈요'하고 옷을 펴는 아줌마를 향해 소리치는데 그 아주머니 사색이 되어 물건을 앉고 뛴다.
.......왜 저러지...
 
'아줌마, 비도 오는데 또 물건 폈어요?'하며 다가서는 사람은 검정잠바에 검은 바지를 입은 아까 그 구청직원들이였다.
나는 이제 기운이 다빠져 그냥 멀뚱하니 그들을 바라보다 내입에서 나온소리가
'비가 아니고 눈이네요, 첫눈요'했는데 이런.. 제기랄.. 여기서 그런소리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멍청한 나는 '다시 물건 싸야 하나요?'하는데 웬 장부를 들고 오더니 카메라를 찾고 사진을 찍어야 한단다.
'무슨 사진요?'
'단속했는데 불응한 사진요'
'.......그래요? 그럼 찍으세요.'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구청직원은 '필림이 없네요'한다.
이번엔 조사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해서 신상명세를 확인하고 싸인을 했다.
아까 함께 물건을 폈던 아줌마가 차안에서 나를 쳐다보며 뭐라고 손짓을 한다.
아마도 적지말고 사정해라 했던것 같았는데 나는 그들에게
'그래도 여기밖에 할곳이 없네요. 오늘 두번이나 여기서 폈는데  장사 좀 하다 갈께요'하니
'아줌마, 여기는 장사 못하는곳입니다. 비도 오는데 그만 집에 가세요'한다.
예전 같으면 '돌아갈 집이 없네요'하고 '비오는데 오죽하면 이렇게 나왔을까요.'했을텐데
'그래요. 가야지요. 미안해요. 짐싸서 갈께요, 돌아가세요'하니
가는것 보고 갈테니 짐싸란다.
좀전에 젊은새댁 몇명이 '어, 춥다'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발로 물건을 가르키며 가격을 물어보던 그녀들이 되돌아오며 상자에 담는 물건을 또 발로 가르키며 펴보란다.
함께 한 일행이 '야아. 비오는데 빨리 가자. 아이들 학원에서 올때 되었어'하고 서둘러 물어본 값도 듣지않고 가는 그녀들에게
'비 아니고, 눈이예요. 잘 봐요. 비는 간간히 섞이고 눈이 더 많이 내리잖아요'하니 그제서야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허공을 향해 손바닥을 편다.
물건을 차에 올리고 내 뒤를 따라오는 구청차량의 호위를(?) 받으면서(또 거기서 장사할까봐 못미더워 쫓아다니네) 집으로 돌아 오는길 잘라내지 못한 머리가 목덜미를 간지럽혀 미장원을 가면서 생각해보니 오늘이 40일만에 갖는 휴일이다.
짧아진 머리가 마음까지 가볍게 들어내고 있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 내 오래된 친구에게 말했다.
'나.. 사는것 미련하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 지키지 못할까 겁나서 그래, 이해해?'
 
'그럼.. 이해할수 있어. 내가 그랬잖아.
나는 네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 같은 친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