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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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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기도


BY 27kaksi 2003-11-27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오늘이 그의 생일이었다. 지난 주말에 어른들이 오고, 아들까지 와서

생일을 했었지만, 오늘이 진짜로 그가 태어난 날이라고, 생각하니, 아침

에 눈을 뜨자마자 간절히 기도를 했다.

"이렇게 반듯하고 잘 생긴 남자를 나의 남자로 허락해 주셨으니,내가 산

동안 그의 반쪽으로 부족함이 없게 살다가 가게 해 주시옵소서"

언제나 행복속에서만 지내온 철부지 아내로서 그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

만이 가득하다. 아무 도움도 못 주는 아내인게 씁쓸하다.

옆에 누운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내겐 한없이 다정한 사람,

자신감에 차있고, 언제나 당당했던 사람!

그런데, 지금 그는 많이 지쳐 있다. 이놈의 나라는 언제나 경제가 나아

지려는지.....

빠른 승진에 30대의 최연소은행 지점장을 10년이나 한 그는 요즘 소위

말하는 실업자이다. 월급사장도, 자기 사업도 모두 쉽게 풀리지않아서,

지금 많이 절망하고 있다. 그에게 힘을 줄 수 있는것은 뭘까?

종일을 컴에앉아있고 주식에 매달릴 때는 그의 어깨가 많이 무겁고

슬퍼 보여서 그의방에 들어가기가 싫어진다.

난 가끔 물끄러미 그의 등뒤에서 바라보다가 거실로 나와버린다.

금융계의 사정바람에 그는 가장먼저 사표를 내던졌다. 자신감에서 오는

호기였다. 곧 일이 주어지리라는 예상으로 우린 휴가를 받은것처럼

부담없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전혀 예상하지도 않았고, 이런시간들은 상상조차 하지못했었기 때문에

우린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난 거실에서 컴에 앉아있고 그는 방에서 컴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게 매일 매일이 간다. 시간은 잘도 흘러 간다.

그가 너무 바빠서 불평을 할 때가 많았었다. 집에 일찍 들어오는게

소원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와 같이 지내는 낮시간은 고통

스러울 때도 있다. 그저 조용히 서로의 일과 서로의 생각으로 지내는

이런 시간은 때론 부작용을 낳는다.

우울해지고 답답해지고,......

갑자기 떠나는 여행은,예전엔 새로움으로 즐거웠지만 이젠 서로의

스트레스를 치료하기위한 위로의 여행일 때가 많다.

아이셋이 어질고 영특해서 자기 앞가림을 잘하고 있어서,감사하고,그애

들은 엄마 아빠 여행이나 하며, 맘 편하게 사시란다.

이제사 그의 나이가 50을 넘겼으니, 앉아서 쉴 나이는 아니지 않는가.!

그는 아직도 젊은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고 한다.

고여있는물 인것을 가장 싫어하는 그는, 일이 없다는것에 견딜 수없어

한다. 안타까운일이지만 나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다.

박사과정에 들어간 큰딸아이가 내년 오월로 결혼날이 잡혔고, 둘째도

내년엔 졸업반이고 군대2년을 해야 하는 아들도 노동부 감사실에 근무

를 하게 되어있고, 좋은 학교에 다니는것 말고도, 세아이가 얼마나

성실하고 반듯하게 자랐는지 아이들을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부르겠다고

주위에서 부러워들 하는데......

우리 부부는 욕심이 지나쳐 옛날의 영화에 연연하는건가!...

그의 얼굴을 가만히 만져본다. 그가 알아채고는 내손을 꼭 잡는다.

따뜻하다. 도톰하고 따뜻해서 난 그의 손을 잡으면 늘 안정감을 찾는다.

분명히 그에게 좋은일이 주어지겠지... 그래서 이제까지보다 더 많이

베풀고 살 수 있는날이 오겠지....

그가 낚시 가방을 챙기고, 집을 나선다. 잘 다녀오라고 웃으며 인사를

했지만 콧등이 찡해온다.

올 가을은 부쩍 낚시에 열을 올리는 그를 말리지 못한다. 너무 여러번

아픔을 겪어서 좀 쉬게 하고 싶기도 하다. 온가족을 어깨에 메고 너무

힘들었을 그를 위해,지금은 묵묵히 지켜봐 줘야 할것만 같다.

생일날에는 국수를 먹어야 오래 산다는데.. 혼자서 국수를 삶아 먹으려

고 생각하니 낚시터에 앉아 있을 그가 떠오른다.

같이 갈걸 그랬나?....난 영 낚시에 취미를 들이지 못하고 있다.

며칠동안 날씨는 회색이고,마음도 회색빛이다.

그러나 마음을 추스리고 저녁엔 미역국도 끓이고, 맛있는 음식을 장만

해야겠다. 아이들도 일찍 들어오라는 문자를 보내고, 식탁엔 꽃도 꽂아

야지, 또 한번 생일 파티를 하는거야!

풍요로운 식탁에서 사랑하는 우리끼리둥글게 모여 앉으면 우린 또

아이들의 까르르한 웃음소리에 모든시름을 잊고, 새로운 힘이 생기겠지.

그와나는 내잔이 넘치나이다 라는 고백이 나오게 될꺼야.....

내년의 그의 생일은 오늘보다 더 밝고 행복해지길 빌며......

아름다운 가정을 허락하신 그분께 간절히 감사기도를 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