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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이벤트]그때 그 시절을 아시나요.


BY 비아 2003-11-18

빛바랜 사진첩 속에서 지금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스카프 목에 두르고 면바지 염색해 멋을 내며
친구들과 통 키타에 매료되어 지내던 그 시절.

담배연기 자욱한 음악다방에서 신청곡 고이 적어
긴 머리 DJ오빠에게 가슴 설레며 건네주던 그 시절.

학창시절 목련꽃처럼 흰칼라 눈부시게 펼쳐 입고
그 무거운 가방과 보조가방 힘겹게 들고 다니던,

그때 그 시절을 아시나요.

아침 일찍 검은 머리핀 하나로 한층 멋을 내어 만원버스에
오르면 제복 입은 안내양 언니는 늘 씩씩한 몸짓으로

우리를 차안으로 힘껏 밀어 넣고는 차등을 힘껏
두둘기며 기사 아저씨에게 출발의 신호를 보냅니다.

안내양 언니의 우렁찬 오라이~ 소리에
차가 움직이며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였던

그때 그 시절을 아시는지요.

손잡이를 잡지 않아도 넘어짐이 없을 정도의
만원버스를 타 보았던 기억이 언제였던지 까마득합니다.

가끔은 가방 속 젓갈병에 싸온 김치국물이
흘러 두 갈래로 세워 놓은 책 모서리를 붉게

물들이기도 했지만 성질 급한 식욕으로 꺼내먹는
도시락의 그 맛은 과연 어떤 맛에 비할까요.

매점에는 그런 친구들의 꺼지지 않는 먹성의 아우성으로
항상 북적대던 그 매점은 지금도 아직 그 곳에 있을까요.

따스한 봄..
햇빛 한곳에 모아 놓은 듯한 운동장 한 구석에 친구와 함께
라디오 방송에 보낼 엽서를 정성들여 써 본적 있으신지요.

친한 친구의 이름과 신청곡 고이 써서 그 많은 엽서 중
나의 엽서가 눈에 띄길 바라는 얕은 마음에 엽서를 예쁘게
치장하느라 밤새 레이스를 수 놓던 사춘기 소녀는

늦은 밤 설레이며 라디오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종환의.. 별이.. 빛나는.. 밤에..."

그때 그 시절을 기억하시는지요.

고교 얄개의 전영록과 임예진은 우리들의 우상이었고
러브스토리..라스트콘서트..로미오와 쥴리엣..

너무나도 아름답고 슬픈 영화를 보고 온 그날 밤엔
잠 못 이루며 마음 아파한 적도 참 많았답니다.

뜨거운 여름이 우리의 청춘을 그렇게 또 반깁니다.
바닷가를 옆에 끼고 모래밭에 둥그렇게 자리 잡고
둘러앉아 부르던 노래를 기억하시는지요.

조개~ 껍질 먹고~~ 그녀의 목에 걸고~~

기타소리에 참 많이도 불러 보았던 그 노래가
아직도 그곳에 남아 있을까 싶어 밤바다를 둘러보니

화려한 폭죽과 굉음만이 밤하늘을 수 놓으며
씁쓸하게 날 반기더군요.

그때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아마 그때도 이렇게 또 가을이 왔었나 봅니다.
감히 세상을 살아보지 않은 소녀는 괜히 가을이라는
이유 하나로 한껏 센치해 보기도 하였지요.

멀리서 지나가는 기차를 교실안에서 바라보기도 하고
발밑에 일렁이는 낙엽 책갈피에 꽂아 글을 써 놓기도 하고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에 와서 이렇게 가을을 지내보니
그 시절 제가 지낸 가을은 모양내기의 가을임을 알게 되었네요.

그때 그 시절이 우습습니다.

아주 추운 겨울 날 학교에서도 눈이 옵니다.
조개석탄의 난로불 위엔 행동 빠른 아이의 도시락 순으로
높이 포개어 있었던 그 겨울의 정경은 이젠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교실의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엄마의 버선을 신기도하고
털실로 짠 속바지와 뜨개질한 목도리가 우리의 한 겨울을
따스하게 꾸며 주었지요.

오늘처럼 찬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밤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들이 가슴 한켠에
소리없는 그리움으로 비집고 들어옵니다.

어느 덧 시큼한 가을바람에 떠 오르는 옛 생각들이
많아진걸 보니 정말 세월이 참 많이도 흐른 것 같습니다.

계절이 또 이렇게 바뀔 때마다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 그때 그 시절들이..

너무나...
너무나 그립습니다.

그때 그 시절을 아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