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었으니 왕년에 어땠다고 할 만한 것이 있을 법도 한데
너무도 평범한 유년기 소녀기 숙녀기를 거친 나는 왕년에~라고
할만한 건더기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왕년이벤트에 참가한 이유는 cd가 탐나서는 절대 아닙고요.
이런 적도 있었더라..하는겁니다.
스무살에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같은 직장에서 5년 3개월을 채웠는데 모범사원으로 일했습니다.
원래 내숭이 좀 있기도 하지만 쑥맥같아서 남 앞에 나서는 일은
정말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잘 하는 것도 없었지만 자신있는 일도 없어서
늘 뒷자리에 서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평범한 사회생활이었습니다.
지금 20대들은 키도 크지만 그땐 크다해야 165cm정도 될까요.
그런데 저는 그 키가 훨씬 넘는 요즘치면 키만 슈퍼모델감에 가까웠습니다.
사내(社內)체육대회가 대대적인 행사로 열릴 모양이었습니다.
부서별로 꽤 많은 인원이 참가하는 큰 행사였는데
부서별 기수를 뽑는다고 각 부서에서 술렁거리고 있었습니다.
'모퉁씨~우리과 기수로 나가줘요.'
허거덩~
앞에서 말했듯이 저는 뒤에 서 있는것은 해도
앞에 서는 것은 정말 못하는 사람이어서
'에고~저는 못해요.누구 하라 하세요.'
이런저런 애로 끝에 체육대회 깃발을 들고 나가야 하는 운명에 처한 나는
지금 생각하니 민망스러울만치 짧은 핫팬츠에 엉성한 자세로 쇠막대기에
달린 깃발을 앞으로 비스듬히 들고 입장하느라 애 먹었더랬습니다.
그리고 다음해 .
해마다 열릴 양인지 체육대회가 또 있다고 했습니다.
이번엔 기수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나는 편안한 체육복장으로 응원석에
앉아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당일 아침에 갑자기 부름을 받고 또 하나 더 받은 것은
이번엔 우리과 피켓을 들고 입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수때에는 깃발을 앞으로 제대로 들고 가기만 하면 되었는데
피켓은 부서명이 적혀 있었으므로 본부석 앞을 지날때 피켓을
본부석으로 향하여 돌려주어야 된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더랬습니다.
본부석 아래에서 마이크들고 진행하시던 어느 부장님이
손짓으로 뭐라고 하시는 것 같긴 한데 도대체 무슨 신호인지
알 수가 없던 나는 태연하게 피켓을 앞으로 꼿꼿히 들고 입장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날 늦게야 나는 그 부장님의 신호의 의미를 알고는
어찌나 무안하고 쑥스럽고 부끄럽던지...
앞장 서는 사람이 있어야 뒤에 따르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뒤에서 그늘 만들어 주는 일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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