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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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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있는 시간엔 빨간 귀를 가진 시를 드리죠


BY 27kaksi 2003-11-10

하늘이  잔뜩  흐리다.

며칠째 비가 내리는 상태로   세상이 온통 회색빛이다.

우울해지기도 하고, 심심해지기도 하는 날이다.

찾을물건이 있어서   베란다랑 창고를 다 뒤지다가, 예전부터 썼던

일기장을   넣어둔  상자를  발견했다. 학교때 썼던 문집이랑, 시작노트등...

결국  찾으려고  했던    물건은  찾지도  못하고, 빛바랜 일기뭉치만 날

추억에 젖게 했다.. 지금보면 유치한 것들이지만, 한때는 많은 시간들을

할애하며 글에  빠져 지내던 적이 있었다. 물론 공부도 했었다.

그때가 행복했던가!

그래, 행복하기도   했고, 또 어딘가는 그렇지 않기도 했다.

작고 자기중심적이었던 나는, 결국 전공과는 무관한   직업을  갖게 되면서

-아니면 , 나의 능력의  한계를 일찌기 느꼈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문학에  관한 모든것을 접었다. 지금도 치기어린 문장력을 구사하는

것으로보면 나의 선택은 탁월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노랗게 변한 노트들 중에 몇개를 꺼내 오늘은 그때의 감정으로

돌아가   읽어보고  얼마동안, 이제 흰머리가 나기 시작 하는 나자신을

잊을 수가 있었다.

그외롭고, 시리던 사춘기 시절- 집에는 나이가 드신 아버지와 새엄마

그리고, 좋진 않았지만   넓은집, 고즈넉하던   자그마한 동네, 동네사람이

모두 함께  먹던 우물과,  저녁이면   붉게   물든 저녁놀- 은  나의 문학의

무대 배경이고 나의 세계였다. 무작위로  읽어대던 상당한 양의  독서와

불면의밤은  아마도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밑거름이  되기도 했으리라.

그후로 서울의 생활은 더 삭막 했었던것  같다.

아무 걱정없는 환경이었지만,

내가 얹혀  살았던 둘째오빠는 군인이었고 올케는  불임이어서 자녀가

없었다. 난 시누이라기 보다 딸이며, 친구이며, 관심의 대상 이었고,

친구들 사이에서 옷을 제일 잘 입고 다니는, 아이로 살았다.

겉 모습이 화려해 지면서, 차츰 난 낙천적이고,단순한 아이로 변해갔다.

글을 쓰는것보다는 공부가 없으면   친구들과 서울 도심지를 쏘다니며

놀고, 웃고 그렇게 지냈다.

주말이면 산으로 들로  놀러다니기에 바빠, 책을  읽는다든지 문학수업은

아주 소홀했다.

동인회  활동도  했지만 그것은 사람을  만나는게 좋아서 였다. 졸업후

우연하게  들어가게된  은행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집에서는 보내고

싶어하는  신랑감이  있어서 엄청난  반대에 부딪쳤고, 난 결혼을 하기위해

태어난 사람마냥 결혼에 매달렸다.

결국 난  그의 아내가 되었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아주 동적이어서,

여행도 스포츠도  좋아하는 멋쟁이고, 나의 결혼 생활은 순탄했다.

어쨌든 여자가, 자기 분야에서  인정 받는 일을  가지려면 야무지게

노력하고  관리를  해야 한다. 나처럼 안일하고 자신에게 게으르면 성취감

을 가질 수가 없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강조 하는부분이다.

자연스럽게,

세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나의 글쓰기는  완전히 육이일기를 쓰는 수준

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이 자라 학교에 들어가면서, 방학이 되면 "엄마와

함께 쓰는 일기"를 쓴 적이 있다 .

그게 아이들과의  통로가  되어서 지금도  아이들과는 친구처럼 지낸다.

유일하게  남은 나의 글쓰기였던 셈이다. 물론 잡문이나  일기를  늘상

써오고 있지만.......

내 계시판의  글들을   보고 친구가 책을 내어보라는 말을 한다고 하니까,

언젠가 큰 딸아이가 그런말을 한적이 있다.

"엄마는 너무 행복하게 살아서, 글이 평범해!. 좀 색다르고 치열하던가,

굴곡이있던가, 아님 엽기적이던가, 뭔가 특이 해야지, 엄마처럼 잔잔

하면 책 안팔려!"

난  나의유치함을  알기 때문에 꼬리를 내릴 수밖에.......

오늘 날씨도 흐리고 예전의 노트 때문에 추억에  젖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오래전에 쓴 시이지만 내가 나름대로

좋아하는 시를  이곳에  옮기며  글을 마친다.

-코스모스-

밀물져 꿈이 간후
한 잎파리 꼭 맺어논
잎잎마다 붉은 줄 하나

맺은 맘인가
맺힌 맘인가

여름내 태양보고 기른 아가를
하나 또 하나
낳는 산모는

아직도 쪽빛비녀
고운 살결의
사십 안길
젊디 젊은 아낙 일레라.



- 여심-

섬돌가 오솔길을
소녀사 내음하는 자세

동공은 기다림에 목이메는데
하늘만 바램은
한치는 커갔을
너의 언어

라일락 송이에 물든
여심이 고웁다.


- 코스모스-

웃음밭이다

빙그르르
햇살머금은
이슬로 터진 웃음밭이다

한아름 웃음으로 강물은 흘러
사랑도 흘러간 가을 언저리
닿을듯 손 흔들던 웃음밭이다

시세워 빙그러질
내마음은
이만치나 비어 서있다

아 아
가늘한 웃음밭이다
웃음밭이다.


-연가-

당신에게 꼭 보여드릴게 있어요

꽃물 들이듯 산이 타는 불바다에서
지혜로 열리는 꽃들의 수선거림과
산이 품고 앉은 은빛 메아리를

그러나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엔
빨간 귀를 가진 시를 드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