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뜨일때
영안이 뜨일때, 심안이 뜨일때
나에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때
빈가슴, 빈 주머니, 바닥난 쌀독 , 아무도 찾지않는 고독, 외로움
그때 ,
그 고비를 넘긴자만이 진정 인생의 왜? 라는 물음에 사물의 이치를 깨달을 수가 있다.
배움도 ,학식도, 배고픔의 고통앞에 주저앉아 버리는 나약한 인간이여
그 죽을것 같으 길에서 긍정적으로 이겨내야만 길이 보인다.
절망의 늪 에서도 옳곧게 싸워 이긴자만이 또 다른 세상의 강을 건널 수 있고 깨달음을 얻을 수 가 있다.
있는것도 한 기회요. 잃은것도 한 기회일 수도 있다. 불행도 또 다른 행복으로의 건너야할 한 강일 수도 있다.
행, 불행이 어느것이 라 말 할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불의 불식간에 닦치는 불행을 딛고서 행복을 알구는 사람도 있고
남보기에 복에겨운 사람도 그 복을 지키지 못하고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 자기 자신의 마음에 달린것,
잘 살때에도 너무 교만하지 말고 어려울 때를 생각하라는 성현의 말처럼 우리의 행위대로 천지가 변하듯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게 업일 수도 있고 섭리일 수도 있으나 업과 섭리는 엄연히 다르다. 업은 자기의 행실의 소산이여서 하늘에 호소 할 수 없지만 섭리는 운명같은 것이어서 하늘의 보살핌을 받을 수가 있다.
들에나는 들풀을 누가 키우고 거름 주더냐?
이렇듯, 자연발생적인 고난은 분명 그 사유가 있을 것이리라.
자신들이 그 이유를 깨닫지 못해서 불행이라는 말로 덮고 참된 심안이나 영안을 뜨지못해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주어진 일들 앞에 도전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스스로 노력 할 때에만 하늘도 도우시리라
깊이 생각하라. 보일 것이다. 하늘의 이치도 보이고 뜻도 보일것이다.
죽었다 깨어나도 깨치지 못하는 인간이여. 우매한 중생이여!!
오호라,가련한 인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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