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에서 온 언니가 산행을 하면서 주워만든 도토리라고 가루를 가져왔을때 난 너무 행복했다. 조금씩 꺼내어 쑤어 먹을때마다 진짜 도토리 묵에 대해서 얼마나 남편과 조카에게 강의를 했던가..
그런데 새로 이사온 집에 도토리 나무가 몇그루 앞 마당과 뒷 마당에 서 있었다. 유심히 쳐다 보지는 않았지만 아름드리 나무가 있는 정취있는 집에 잠시 세들어 살수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도토리가 안겨주는 추억에 잠시 잠기기도 했는데, 멀지 않아서 도심에서 자라는 아니 정원에서 자라는 도토리(상수리)나무는 얼마나 많은 피해를 가져다 주는지 깨달았다.
잔디 곳곳에 박혀있는 도토리는 잔디를 자라지 못하게 하고 잔디에 많은 피해를 주었고 가을이면 아침 저녁으로 떨어져 있는 도토리 덕분에 앞마당은 항상 지져분하고..자동차에도 도토리가 그득하고..어휴..
작은 아이는 도토리를 주워다가 소꼽놀이도하고 좋은 놀이 도구를 찾은듯 밖에 나가기가 무섭게 한 줌씩 도토리를 들고 들어오곤 한다. 몰래 버려야하는 것은 나의 일이 되었다.
잔디에 박혀있는 알이 실한 도토리를 끌어내어 쓰레기 봉투에 담으며 가슴이 아팠다. 이런 실한 것들을 버려야 하다니. 나의 어머니가 계신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활용방법을 찾을실 터였다. 하지만 방아간은 고사하고 나는 도토리가루를 어떻게 만드는지도 모르는 무지한이다. 게다가 한인들도 별로없는 이곳에서 방앗간을 찾기란 얼마나 먼길을 가야하는지..
결국에는 도토리를 버리지 못하고 한구석으로 몰아다 쌓아놓고 이쁜 것을 골라 현관문 앞에 장식해둔 늙은 호박옆에 예쁘게 놓아 두었다. 가을 향이 물씬나는 것으로. 그리고 천덕꾸러기 노릇을 하는 마른 낙엽들도 주워다가 입구에 쌓아두었다. 어자피 버려야 할것이라면 싫껏 즐기리라. 한때 서울에서 살때는 낙엽을 밟고 싶어하지 않았던가.
아이들에게 낙엽에서 딩굴 수 있도록 낙엽도 끌어 한쪽에 쌓아두었다. 높이 쌓아서 햇볕이 좋은 날 함께 줄거운 시간을 보내리라.
그리고는 오랫동안 하지않았던 낙엽 수집에 들어갔다. 예쁘게 생긴 잘 물든 낙엽을 아이와 함께 정성스레 골라서 커다란 책갈피에 끼워 두었다. 아이에게 마음에 드는 것으로 액자를 만들어 방에 걸어둘 요량으로 미소를 지으며 나의 어린 시절을 얘기해 주었다. 엄마가 어렸을 때는 이렇게 예쁜 낙엽을 만들기 위해서 커다란 책 사이에 끼워 두었다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잔디위에서 자라면서 천덕꾸러기처럼 잘리우고 버려지는 나무들.. 하지만 깊은 산속에서 자랐다면 아니 예전에는 산이었을 이 곳을 인간들이 계발하지 않았다면 행복했을 나무들..
어떤 곳에서의 상수리 나무는 툭툭 떨어지는 도토리만으로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데.
잠시나마 천덕꾸러기 취급을 한 나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한알씩 도초리를 주웠던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저 모아 버렸을 것에서 나는 아무 감사함도 즐거음도 느끼지 못하고 무감각한 사람으로 변해버렸을 것을. 이제나마 아이들에게 나무가 왜 아름다운 것인지 소중한 것인지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할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