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
강아풀도 단풍이 들어.
얕은 갈색으로 말이야.
있잖아?
강아지풀도 가을을 타.
그래서 쓸쓸해 보여.
그래도...
강아지풀아?
슬퍼말어
너에겐 알알이 영근 씨가 있잖아.
웃어봐?
해맑게 말이야.
아무리 웃어도 해맑아 보이지 않는다구?
아니야,너에겐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있는 듯 없는 듯한 엷고 잔잔한 매력이 있어.
그걸 내가 알고 있잖아.
에헤헤헤...웃었다 너,강아지풀아.
거봐?
귀엽잖아....
넌 귀여워 그래서 강아지풀이라 한거야.알았지?
강아지풀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요?
강아지풀을 뽑아서 친구 목덜미에 간지럼 태웠던 추억도 하나씩 가지고 있지요?
털이 보승보승 달려 있고,
만져보면 까실까실 간지럽고,
꼭 강아지 같아요.그래서 강아지풀이라 이름 붙었겠지요.
길거리에 들녘에 제일 흔한풀이 이 풀일거에요.
강아지풀도 가을이면 가을에 젖어들지요,
그래서 갈색으로 물이 들어가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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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날......
개여뀌와 들국화와 함께 강아지풀을 섞어
소주병에 꽂아 마루 한 쪽에 놓아 둔 적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
마루에 홀로 둔 꽃들이 생각나 누렇게 변한 휘청이는 창호지 문을 열고,
소주화병을 찾으면 소주병밑에 들깨알처럼 떨어진 강아지풀 씨.
할머니는 이런 걸 왜 꺾어 와서 지져분을 떠냐며
뭉둥거려진 몽당 빗자루로 훽 쓸어 버리며
"얼렁 (얼른)일어나 갔다버려라" 하셨던 까랑까랑한 외할머니 목소리.
깡마른 맨 다리에 쥐가 밤새 잔치를 벌인 머리를 하고
마루에 나가 쪼그라들게 앉아서는 강아지 풀을 만지면,
차르르 떨어지던 날 속상하게 만들던 강아지풀 씨.
할머니한테 혼날까봐 맨발로 봉당에 내려가서 할머니가 잔소리 하며 쓸던
몽당 빗자루를 집어와 소주병을 들고 얼른 쓸어버렸다.
강아지풀은 병에 꽂으면 오래 살지 못했다.
들국화도 며칠은 샛노랗게 고개를 들고
개여뀌도 갈 수록 단풍잎처럼 빨갛게 피어 나는데
강아지풀은 하루만 지나도 잘디 잔 씨가 토로록 떨어졌다.
맨드라미 씨도 손톱으로 긁기만 해도 쌔까만 씨가 손바닥에 서케알처럼 떨어지고
봉숭아 씨는 슬쩍 건들기만 해도 놀래 잡빠져서 휠딱 뒤집어졌다.
아침부터 강아지풀 씨를 핑계로 할머니의 잔소리가 시작되면
잠 잘때까지 잔소리가 이어졌고,
강아지풀이 빈대궁을 남길때까지,
뒷마당에서 뜸이 잘 들고 있는 뒤엄에 버리질때까지......그래야 조용해 지셨다.
그리도 할머닌 아빠없는 외손녀딸 먹으라고 텃밭 가지나무 옆에 토마토를 매년마다 심으셨다.
토마토 볼가에 발그레하게 햇볕이 스며들면 제일 맛있게 생긴 토마토를 따서
냇가가는 옥수수 밭두렁에서 반의반 먹고,
참붕어가 많이 잡히는 또랑에서 또 반의 반 먹고,
메뚜기와 함께 논두렁을 뛰어가며 먹고, 나머지는 냇가 잔디밭에 앉아서 먹었다.
강아지풀을 보면 할머니가 보고 싶어진다.
까랑한 목소리가 세월앞에 쇠잔해 지셨지만 "오야,너냐? 애기들은 잘 크고?"하신다.
올 해 구십이 넘으셨지만 눈도 밝고 귀도 창창하게 열리신 외할머니는 춘천에 살고 계신다.
주일이면 예배당에서 대표기도도 하시는 영리하신 우리 외할머니.
여든을 넘기시면서 자신의 생일이 돌아오면
"올 해가 마지막 내 생일지 모르니까 꼭 와라"해서 가기 시작한 것이 10년이 넘었다.
앞으로 10년은 더 찾아 뵈어야 할 것 같은 좋은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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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매장가는 길에 강아지풀을 뽑아다가 유리컵에 꽂아 창가에 놓아야 겠어요.
그리고 손님 때문에 화딱지 나거나 장사가 잘 안되서 심심할 때 잠깐씩 바라볼거에요.
그러면,화딱지도 떨어져 나가고,장사가 안돼도 내일은 잘 될거야 하고 비울 수 있거든요.
여름 내내 매장앞 플라타너스 밑둥 작은 화단엔 강아지풀이 잘 살고 있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도 같이 일하는 직원도 강아지풀이 저리 이쁜줄 예전에 몰랐다고 했는데
구청인지 시청인지 환경 미화를 한다면서
나무 밑둥에 있는 풀들을 한 달에 한 두번씩 뽑으러 다녔거든요.
삐쩍마른 강아지 풀을 삐적마른 이 몸으로 막아내며 제가 기르는 거니까 뽑지마세요 하며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강아지풀 목숨을 여름이 다 가도록 지켜주고 있었는데,
초가을 플라타너스 잎이 강아지풀 머리위로 하나 둘 떨어지던 어느날
나무 밑 화단이 시원하고 허전한거예요.
강아지풀을 몽창 뽑아서 뭐에 쓰려는지 가지고 가버린 거 있죠?
강아지풀이 살고 있던 빈터가 보기싫어 그 주변에 있던 잡초들을 다 뽑어 내고
매장 앞에 놓아 두었던 작은 국화 화분을 나무 밑둥에 세 개를 심었지요.
원색인 국화꽃을 보며 풀꽃의 잔잔한 정신을 국화꽃에게 돌려버리려구요.
강아지 풀을 보고 있자면? 어쩌면 외할머니의 잔소리가 들리겠지요.
듣고 싶어요.
어릴적엔 화딱지나게 싫었지만 말이에요.
그리고 할머니께 전화도 넣어야겠어요.
다음날이면 강아지풀씨가 매장바닥에 짜르르 떨어져 있겠지만
그러면 날 도와주시는 아줌마가 속으로 화딱지 나겠지만......히~~~
강아지풀 씨의 가벼움과 외할머니의 잔소리와 발그레한 완숙 토마토.
강아지풀은 내일 장사하러 가면서 보면되고,
외할머니도 보고싶고,토마토도 먹고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