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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못 말리는 이 남자


BY 융화 2003-10-19

거실장 옆 하얀 백자 항아리의 한 가득 담겨있는

노란 산국과 드믄드믄 연보라빛의 쑥부쟁이 꽃이

눈과 코를 즐겁게 한다.

 

어제도 어김없이 시부모님과 시동생과 형님이 계시는

산에 다녀왔다.

 

봄에는 고사리, 산나물 뜯으러 가자고

초가을에는 으름 따러 가자고

어제는 고들빼기 캐러 가자고

산나물과 들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를 꼬시는

우리 남편의 핑게거리 들이다.

 

 그말에 솔깃해서 봄에는 따라 나섰다가 고사리는 커녕

산나물은 구경도 못해보고

으름은 높은 나무에 매달려 있어 구경만 하였지만

그래도 어제는야생고들빼기를 한아름에 캐고

내려오며 덤으로 들국화를 꺽어다

거실가득 가을을 들여 놓고 가을향기까지 채워놓는

오랬만에 소득아닌 소득이 있던 날이었다.

 

이 모든것은 이남자가 부모님 누워계신 산소에 가고자

하는 이유인데 막내는 차에다 놓고 나를 데리고 가서

산소를 이곳 저곳 만지고 다듬으며 한나절을 보내고 온다.

 

우리집 이 남자는 부모님에 관하여는 정말 못 말리는 남자다.

지금은 결혼생활이 근 삼십년이 되어가니 이리저리 깍이고

채워지고 해서 옛말하듯 하지만 한때는 남편과 부모님때문에

가슴이 울렁거리는 병을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앓았었다.

 

모든 생활의 촛점이 부모님께 맞추어야 했고

아이들 마저도 부모님 일이라면 뒷전이였다.

그래서 부부싸움도 우리 둘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님 문제로 싸웠고

심지어 내가 장가는 왜 갔느냐 부모님 모시고 평생살지 하면서

정말 왜 사나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중매로 만나 두번째 만났을때 이 남자 하는말이

자기는 둘째지만 형수가 마음에 안들어 부모님을

자기가 책임 져야 한다고 하였지만

나는 심각하게 생각도 안하고 어린마음에 참 심성이 반듯하다 하면서

괜찮은 사람이라고 높은 점수를 주었었는데

살아보니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아무리 애써서 해본들 남편의 수위에 못 미치니

나는 부족하고, 자기는 뒤로 물러나 있으면 내가 할텐데

못 미더워 맡기지도 못하고 먼저 나서서 설치니

 자기만 효자요 나는 늘 훼방꾼이였다.

 

그간의 삼십여년의 사연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을까

그래도 우리 부부가 돌봐온 부모님은

칠팔년 치매를 앓다 재작년에 어머니는 가시고

오년동안 관절염으로 바깥출입 못하신 아버님은 이번 추석 다음날 가셨다.

 

그래서 거기서 끝난줄 알았는데 이제는 토요일 마다

차로 거의 한시간 거리인 산소로 달려간다

그것도 나를 대동하고....

 

우리 아들은 즈아빠에게는 아무 말 못하고

나에게만 그런다

" 나는 아빠같이 못해요 기대도 하지 마세요" 하면서

미리미리 못을 박는다.

 

나는 예전에 포기하고 따라 갔기에 지금까지 별 문제없이

살고 있지만 이남자는 정말 못 말리는 쳔연은 아니래도

기념물이 될만한 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