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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는 시간


BY 土心 2003-10-15

오늘도 일기 쓰는 맘으로 이 방문을 열고 들어 온다.

들어 올 땐 뭘 어떻게 써야 겠다는 작정이나 작심은 없다.

그냥 내 앞에 펼쳐진 하얀 공간만 무심히 바라 보며 몇 십분을 흘려 보낸다.

그냥 그렇게 한참을 넋놓고 있다 보면 

내 안의 내가  나를 나무라는 소리도 들리고

내 안의 진실이 나를 부르는 소리도 들리고

내 안의 내가 나를 향해 求愛하는 소리도 들리고

그러니 뭐랄까...

저 머리 꼭대기 부터 발끝에 다다르는 세포 하나 하나가

청정하게 살아 숨쉬는 소리라고 하면 맞을라나.

실핏줄 하나 하나가 꿈틀대며 기지개 켜는 소리라 하면 맞을라나

가슴 한 가운데서 품어 대는 열정의 박동 소리라 하면 맞을라나...

어쨌든 움직이며, 일하며 분주하게 동선을 그리고 다닐 땐

내가 나를 아마도 눈여겨 보지 않는다는 얘기가 될 거다.

내 맘 깊은 곳에서 속삭이는 속엣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는 얘기 일 거다.

그런데 이렇게 나를 위한 나만의 공간에서 나를 위한 시간을 내어

나 자신과 만날 수 있다는게  이런 깊은 의미를 갖다 줄 지 전엔 미처 몰랐다.

내가 내 말에 귀 기울여 주고,

내가 내 심장의 박동 소리를 헤아려 주고,

내가 나를 연민 하는 방법을 터득해 가고.

그러니 이 여유와 한가로움은 그 자체로 감사와 감동일 뿐

더 이상의 부언도 사족도 필요치 않다.

 

돌이켜 보면, 아니 지금도 다를 바는 없지만

참으로 만만찮은 세월을 숨가쁘게도 살아 왔다.

엄한 부모 밑에서 숨 한 번 크게 고르지도 못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강하고 서늘한 남편 밑에서 늘 낮은 포복으로 주변만 맴돌았었다.

큰 아이 낳고는 잠시 사는 맛의 달콤함을 느끼는가 했는데

둘째 녀석 낳고는 아예 내 모든 것을 그 녀석에게 저당 잡혀 버렸다.

나는 없어지고 아들의 엄마만으로 존재 했다.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녀석이 내게서 태어났으니 내가 책임 질 일이었다.

모성이 초능력으로 발동하기 시작 하는데

본능이든, 이성이든  모성의 능력이라면 티끌 하나 안 남기고 다 쓰고 싶었다.

내게는 이제 이 아이만이 나의 사는 의미며 이유가 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쏟아 부우니 결과가 보였다.

아이는 일반 초등 학교에 통합 되었고

1학년 일년 내 받아쓰기를 100점 받았고,

2학년 때는 친구들의 몰표를 얻어 반장을 해냈다.

......아들 얘기만 나오면 또 이렇게 정신을 못차리니...

그 아들이 커서 벌써(?) 중학교 2학년이다.

우리 아들 덕에 이 엄만 동네에서 유명인 아닌 유명인이 되어

너도 나도 아이들을 갔다 맡긴다.

공부좀 갈키고 사람 좀 만들어 달라고...

그래서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그야 말로 아이들 공부 봐 주는 일이 되었다.

그러니 자청해서 또 바쁘다.

허나 내가 받은 것이 너무 크고 감사 하기에

내 방법으로 보답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하겠다 맘 먹었고,

그래서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살다\'의 어원이 \'사르다\'라 했던가.

그랬다. 그리고 그러 하다.

난 내 시간과 에너지와 머리와 맘을 그렇게 사르며 산다.

싸늘하기도..뜨겁기도 한 내 삶의 조각들이

때론 아픔이 되고, 때론 눈물이 되고, 때론 기쁨이 되고,

행복도 되고, 희망도 되고, 절망도 되고, 보람도 되면서

버릴 수 없는 마흔 일곱의 내  모습이 되어 있다.

머리에도 얼굴에도 몸에도 세월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뽀얀 먼지 쌓이고, 굵은 골이 패이고,군더더기는 넘실 되나  

그래도 그것이  내 인생 훈장인걸 ....

내가 스스로 장해서  나를 칭찬하고 격려 해 주고 보듬어 주는 거다.

세월이 모든 걸 말해 주고 있다.

서늘하던 남편도 지금은 팔불출이 되어 온 몸으로 아양을 떨고.

동생한테 모든 걸 다 빼기고 사춘기마저 혼자 묻어야 했던 딸은

자기 처럼 받은 게 많은 사람도 드물거라며 오히려 엄아를 위로 한다.

우리 아들은 말 할 것도 없다.

하도 말이 많아져 왕수다라 별명 붙였다.

그 자체로 효자임에도 불구하고 \"엄마 사랑해\"를 입에 달고 사는 아들이다.

곁눈 질 할 시간이 없었기에 앞만 보고 달렸다.

그랬더니 인내 속에 세월이 녹아 이렇게 과분한 가피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내 앞에 놓인 삶의 무게는 녹녹치 않음을 안다.

또 어떤 예기치 못 한 삶이 나를 기절 시키게 될 지도 모른다.

허나  연륜과 경험은 말한다.

두려워 말라고...

*

*

*

쓰다 보니 또 말이 길어 졌습니다.

맘은 깔끔하고 쿨 하고 싶은데, 자꾸 군더더기가 붙습니다.

이 방에 첨 와서 몇 분의 글을 보다 보니

저처럼 쬐금 불편한 아들을 두신 분들이 있더군요.

서로 나누고 공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러고 싶어 

우리 아들을 여기 살짝 내 보였답니다.

제가 앞으로도 망설임 없이 이렇게 벗어 가겠습니다.

흉하더라도 그냥  저런 사람도 있으려니 하고 봐 주시길 바랍니다.

님들이여 날마다 행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