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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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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킬로 마라톤을 하면서~


BY 남풍 2003-09-30

흔히들 삶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나는 지금도 살아가고 있지만, 일찌기 나는 마라톤이라는 걸 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막연히  그 어려움을 두고 하는 말이려니, 쉼없이 가야함을 두고 하는 말이려니 했다.

 

아이의 초등학교 운동회에  8킬로미터 단축 마라톤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늘 그게 궁금했다.

과연 삶은 마라톤이라는데, 마라톤은 내 삶의 어떤 부분을 닮았을까.

혹 마라톤에 도전하여 끝까지 달려내면, 내 삶에서도 그러할까하고.

 

그래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운동으로 단련되지 않은 몸이 견뎌 줄 지 걱정이 되었지만, 어차피  견디지 못해도

삶은  계속 되는 것이기에.

 

운동장을 한바퀴 돌아 출발하는데, 벌써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친구를 젖히고 앞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빨리 달려도 동요되지 말고, 우리 페이스대로 달리자고 약속하며

꼴찌로 힘에 부치지 않게 달렸다.

 

얼굴에 가을 햇볕 실린 바람이 훅~- 스쳐가고, 길 옆에 태풍 '매미'를 견뎌낸 감자 싹들이

띄엄띄엄 자라고 있었다.

그 사나운 바람 견뎌낸 저 감자들처럼 8킬로미터의 장정을 견뎌내야지하며 무거워지는 발을

힘차게 굴렀다.

 

거의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다보니, 너무 힘을 내 달리던 사람들이 하나 둘   지쳐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옆에서 거의 일정하게 고른 친구의 숨과 거친 내 숨이 달구워진  아스팔트 더운김을 밀어내고 있었다.

 

3킬로쯤 달렸을 때, 반환점을 돌아오는 무리를 보는 순간 다리에 힘이 축 빠져버렸다.

500미터쯤 걸으며 친구가  그렇게 힘드냐고 물었다.

"아니, 그보다 저 사람들을 보니 갑자기 힘들어 지네."

어쩌면 이게 내가 아닐까.

어려움을 참다 서서히 힘이 빠져 어떤 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앞서 가는 다른 사람을 보며 나도 얼른 가서 저 길을 가야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언제 저기까지 갈까 고민하다 지쳐버리는 것, 그게 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게 쉽게 포기하는 것도 나지만, 다시 시작하는 것도 나여야한다고 생각하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내 앞을 달리는 이들도 많고, 내 뒤에 달리는 이도 더러있었다.

앞뒤에 상관 없이 모두 힘이 들고, 내가 그러하듯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능력껏 아니, 그 이상 달리고 있었다.

 

가다가 힘들면 다시 조금 걷고, 다시 달리기를 반복하며 기어이 8킬로미터를 완주했다.

교문 안으로 친구와 나란히 들어서자 사방에서 환호하는 소리가 울렸다.

내 아이들도 보고 있었을 것이고, 남편도 보고 있을 것이고

많은 사람이 박수를 보내고 있지만, 무엇보다 내 자신이 가장 크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8킬로미터의 거리는 차를 타고 달리면 10분도 안되는 거리다.

그러나 내 체력으로 달리면 거의 한시간을 달려야 하는 거리다.

그러나 보통 사람이 달리기에 불가능한 거리도 아니다.

힘들게 그 거리를 달려, 막상 도착해 생각하니 띄엄띄엄 걸었던 게 아쉬웠다.

같은 속도로 꾸준히 달렸으면 좋았을 걸

그리고 기왕이면 1등상 자전거도 받으면 좋았을 걸....

그러나 아쉬움보다는 완주의 기쁨이 컸다.

 

또한 막상 도착해 놓고 생각하니 쉬엄쉬엄 가도 끝까지 가야 좋고,

기왕이면 친구랑 더불어 가야 좋고,

내 능력내에서 열심히 달려야야 좋은 것이구나하고

구경만한 사람들에게 부러운 눈빛을 받으며 생각했다.

 

8킬로를 달리며 생각한 결과,

마라톤을 삶에 비유하든, 혹은 삶을 마라톤에 비유하든

두가지를 견줄 수 있는 것,

그것은 바로 뛰는 자에게 ,살아가는 자에게

멈추든  계속하든 빨리 뛰든 천천히 걷든 모든 선택권은 주어진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