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이 둘과 함께 하루 여행 날이다. 2001년 11월 4일 아침 5시 30분에 기상했다. 6시에 관광버스에 올랐다. 일단 버스에 타기 전 목록을 점검했다. 인원 파악하고 회장님이 일정에 관하여 간단한 말이 있었다. 난 준비해온 김밥과 떡을 돌려줬다. 젤 앞좌석에 앉아서 메모장을 열었다. 들판을 보고 무엇인가 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경치를 보았다. 신탄진을 벗어나 증평으로 가는 길, 들판엔 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모두 무겁게 잠겨 있었다. 7시 33분 햇살이 내리자 경치가 포근하다.
좋은 계절은 짧기만 하다. 물안개 오르는 강가를 지나 산을 보면서 단풍이 물든 산이라 시선을 보냈더니 이건 고운 단풍이 아니라 건기 때문에 말라 떨어지는 것 아닌가 싶었다.
충주의 방곡사에 도착했다. 기도를 하고 후원에 나서 점심공양을 도우면서 묘허스님을 기다렸다. 설법이 시작되어 법당에 들어서 메모장을 열었다. 무정설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다. 단풍이 떨어지는 소리, 물이 흐르다 폭포를 만나 쏟아지는 소리, 바람에 낙엽이 구르는 소리, 시내 한복판에서 만나는 경적 소리, 모든 자연에 깨달음이 있고, 소리에 깨달음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시도 그렇지 않은가.
항상 하시는 말씀이지만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고, 좋은 친구 만나기 힘들고, 불법을 만나기 힘들다 하지 않던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좋은 친구 만나 삼매경에 빠져보는 것 행복이지 않을까 싶다. 그랬음 좋겠다.
종교는 공부하고 정진하려고 믿는 것이고, 기복이 아닌 나를 위한 진정한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후원에 점심공양을 위해 들어섰다. 다 준비가 되어있어 미역국을 떠주었다. 남편이 저녁을 위해 공양주에게 말한 밥도 챙겨주었고, 김치도 넉넉히 챙겨주었다.
젤 인상에 남는 것, 술꾼인지라 묘허스님이 공양주에게 부탁하여 주신 곡차(머루주)를 챙겨든 남편을 보니 뒤 여흥이 기다려졌다. 스님이 챙겨준 십이지신상이 담긴 악세사리를 받아들고 차에 올랐다.
이차로 계획된 곳은 운달산 김룡사다. 오르다보니 '소나무의 사랑'으로 기억에 남을 기대어 자란 소나무가 보였다. 시로 써보려 한다. 산문 홍화문에 적힌 글이다. 홍하문은 영조 3년(1727)에 건립했다 적혀있다. 주련(柱聯)이란 분이 말씀하신 글귀가 적혀있다.
'이 문안에 들어오거든 알음아리 피우지 말라 알음아리 없는 빈그릇이 대도를 원만 성취하리'라 적혀있었다.
대웅전에서 삼배를 올리고 나서니 좋아하는 소나무 숲에 마음까지 비워진 것 같았다. 오래된 고택의 기와 위에 소나무 이끼는 장관이었다. 주렁주렁 곶감이 매달려 솔바람과 햇볕에 마르고 있었다.
마지막은 문경의 용추계곡이었다. 바위들이 멋지다고 남편이 사전 조사를 하였고 대야산 청주 가든의 맘 좋은 주인의 배려로 계곡 바로 옆에서 대인원이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눴다. 미리 사전 조사를 위해 남편과 부회장이 미리 사전 답사도 했거니와 남편의 맥가이버란 별명답게 야외에 만반의 준비로 흡족했다. 어른은 걸어서 내려오고 아이들은 남편의 트럭 뒤에 태워 내려보내는데 꼬마대장의 지휘아래 노래가 울려 퍼졌다. 대전까진 한시간 반 거리 난 관광버스에서 남편은 뒤 트럭에서 따로 였지만 어두워진 거리를 내다보며 흡족했다. 이젠 정리를 해야 겠다 싶었다. 많은 사람이 집을 찾는 건 복이라 했다. 이건 친정엄마가 누누이 말했던 것이다. 좀 냉정하고 쌀쌀 맞은 나를 항상 그렇게 당부하곤 했다. 마지막 여흥은 술도 마시지 못한 남편을 위해 집 소나무 아래에 준비되었다. 일부는 집으로 가고 일부는 고생했다는 인사와 내년엔 더 노력하잔 당부와 함께 술에 익어갔다. 술이라 맥주 소주 머루주 포도주 나중에 참석못한 분의 손에 들려온 동동주 다섯 가지를 마신 속이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일한다고 뒷정리까지 해주신 성님들이 고맙다. 날 양 서방이라 부르며 놀리는 박 서방님 술 한잔 안하고 독하게 사시더니 병원에서 맥주를 마시라 권한단다. 많이 마셔 탈나는 거나 안 마셔 탈나는 거나 매 한가지라. 남편이 약술로 맥주 한 박스 가져다 준다니 정말 술 좋아하는 부부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