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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에서(2) 겨울새벽의 회상(하나)


BY 영광댁 2001-01-12


겨울새벽의 회상(하나)

뻥새야
간밤에 또다시 내린 눈을 만나고서 엄마는 잠시 너만 했을때로
기억의 의자를 돌려앉았단다.
그래 너만 했을 때 혹은 누나만 했을 때,
자고나면 눈이 쌓이고 자고 나면 눈이 쌓이고 끝이 없었단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것 인줄 알았지. 겨울은 으레것 눈이였단다.
어른들은 이게 다 쌀이였으면 좋겠다고 한탄을 하셨단다.
우와 그게 다 쌀이였다면 양식이었다면...행복했을까?

눈 위를 타는 바람은 또 얼마나 앙칼지기도 했던지.
몇 개씩 껴입은 옷들. 두 켤레 혹은 세 켤레씩 끼워신은 양말들.
눈밭에서 놀다 와서 젖은 것들을 아랫목에 넣어서 말리기도 했단다.
맹렬한 불길이 먼저 닿은 아랫목은 으레껏 갈색으로 변색해 있었거나 눌어 있었단다.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 젖은 양말들을 대롱거리며 말리기도 했지 , 벌건 불길 앞에서
뽀얀 김을 모락모락 피워내며 마르기를 열중이던 양말들이 성한 것들이야 얼마나
있기나 했을라고.
젖은 양말이나 장갑을 말리기는 커다란 솥뚜껑 위도 한 몫을 하였더란다.
부뚜막 위에선 그렇게도 말안듣던 고양이도 있었더라니...

어머니의 아궁이는 한 부엌에서 세 개는 되었단다.
밥 솥 하나, 국솥 하나, 따뜻한 물 솥하나.
아랫집 미해네는 솥이 두 개에 엄마네보다 부엌이 하나 더 있었단다.부지런하기도 했지.
외할머니는 그 어린 게 그랬지만 어른들은 딸네들은 빠삭빠삭하게 키워놔야
시집가서 지살림 꽉 차고 잘산다고 그랬지만, 어른들 하라는데로 말없이 일을 하던
엄마친구 미해는 지금 참 잘 산대.
꾸정물을 붓고 새벽녘 작두로 잘라낸 지푸라기를 넣고 간혹 조금씩 썩은 고구마도 넣고 끓인 쇠여물을 아침일찍 눈길을 타고 걸어가, 눈이 큰 소에게 김이 모락모락나는 아침밥을 주고 쇠여물솥에 불을 때던 미해는..용감하게 잘 살대.
눈도 작고 키도 작고 목소리도 작았던 미해를 미해아빠는 중학교 졸업한 딸을 당연히
많이 가르쳤다고 생각했고, 중학교 까지 졸업했으니까 밥벌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겠지.
시간이 지나 미해네보다 살림이 훨씬 모자라는 엄마가 대학을 간다니까 동네 사람들이
다 욕을 했던 것 같다. 주제도 모른다고, 시기반 질투반 부러움반 , 반가움반이였을게야.
외할머니는 지금도 그러신단다.
중학교만 나왔어도 미해 잘 사는 거 봐라. 요번에 왔다가면서 차도 큰 차로 바꿨더라.
작년엔 집도 샀다더라. 딸만 둘이라더니 아들도 튼실하게 낳아서 보듬고 왔더라.
외할머니는 이따금 그렇게 엄마를 속태우고 주눅들게 만드셨단다
그러나 그 시골에서 끝까지 공부하겠다고 눈만 번쩍이며 왕고집을 부렸던 엄마를 보고
외할머니는 얼마나 더 속이 타셨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끝없이 미어진단다.
대신 대들지 못하고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 있지.
많이 배운 사람이 잘 산대요? 많이 배웠다고 다 잘 살으란 법 있다우?
할머니는 고생 많이 했으니 고생만큼 복이 와야된다고 복을 받아야 될거라고. 당신도
그렇게 살으셨으면서 억지를 부리시지. 딸 사랑이시겠지.

그때 그 시절
제조업으로 간신히 이 나라의 수출이 발을 성큼성큼 내 밀었을 때
잠못 자고 뜬 눈으로 실을 묶어대고, 옷을 짜내고
단순한 전자 부품들을 조립해냈던 그 아름다운 누이들이 얼마나 많은 눈물과 땀을
흘렸는지 지금 너무 잘사는 사람들은 모를걸 ,
배우고 싶은 열망을 단 산업체 특별학교가 전국에 걸쳐 우후죽순처럼 퍼졌던 그 때
그 친구들, 언니들. 다들 잘 사나 ....

중학교만 졸업한 미해는 서울로 가서 와이셔츠 만드는 회사에 들어갔다고 했어.
구로동 어디 쪽방이나 벌집에서 삶을 견뎠을까.
푸석한 먼지들이 나갈 자리를 못?고 그들의 코 안으로 다시 들어가고 폐 깊숙이 들어가고 기침을 하고 피를 토해내던 열악한 환경에서 산 그 어린 것들의 손끝에서 지금의 부흥은 시작됐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까. 알아도 모른체 할걸. 부러 모른체 덮고 싶은 것들 많을게야.
엄마는 마산 양덕동땅 , 핫도그나 튀김들이 즐비하던 포장마차 골목을 지나 있던
기숙사에서 한때 3년 살았으니까. 그때부터 였을까
雪에 대한 꿈을 잃어버렸고,
그 3년이 인생 10여년을 앞당겨 산 애늙이가 되었다는 걸 먼 후일에야 알았던 것을.

요즘 엄마는 엄마친구들과 만나면 우리들은 의지의 한국인이라고 말하며 눈물나게
웃는단다. 뻥새야 너는 의지의 한국인아들이니까. 이땅을 일군 건강한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은 자손이니까 진정한 힘을 아는 사람으로 자라거라,

외할머니는 엄마도 잘 살고 있는 걸 아시면서 이따금 그렇게 심술을 부리고 싶으신가봐.
지나온 날들 아무리 고생스러웠어도 가끔 생각하면 꿈결같은 것들도 많은데...

그전날 내렸다가 녹은 얼음판 위에 간밤에 내린 눈이 앉은 눈길을 외줄타는 광대처럼
걸어나갔단다. 끝없이 가파른 골목가장자리로 번쩍이는 차는 즐비한데도 어디 눈길하나
없는 동네 사람들은 다 방학인가.

눈길 위를 걷는 사람이 한 아저씨하고 엄마 하고 두명이였단다.
발바닥이 자꾸 미끄러져서 아고 겁나라 더 이상 못가겠네. 엄마가 주춤거리며 서 버렸지.
그 아저씨가 발이 타지 않은 눈길 위를 걸으라는데. 그래요 눈길 위를 밟으려고 생각하는데
발이 자꾸 딴데로 가네요. 이렇게 발바닥이 평평한 신발을 신었는데...
엄마랑 그 아저씨랑 웃고 말았지. 그 아저씨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아저씨 발도 가끔
옆으로 난 골목으로도 들어갔다 나오고 아무렇게나 열린 빌라 현관앞에 서 있다가 걷고는 하시더라.

이 새벽에 들어갔다 나온 엄마의 기억장치는 마치 렌즈 같구나.
그것들은 왜 잊혀지지 않을까?

어젯밤 버스에서 내려 20여분을 걸어서 검붉은 얼굴을 하고 들어왔던 네 아빠를 보고 그렇게 추워요?했더니 내일은 영하 13도란다.하고 엄마가 아빠 양볼 만져 보고 어디 지금 바깥은 몇도인가? 10도,아니지 손바닥 온기 갔으니까 8도, 했더니 누나가 아빠 볼 양손으로 감싸고 이젠 5도. 뻥새 네가 아빠 몰 만져보고 0도 하였다가. 누나가 깔아놓은 아빠 이부자리를 보고 이젠 영상 20도란다. 엄마가 그랬겠지.졸지에 굵은 주름이 있는 네 아빠 얼굴을
온 식구가 돌아가며 다 만져 보았구나 ... 그 곰같은 아빠는 귀찮다고 하더라니...

해질 무렵에야 보일러 온도를 20으로 올리는데도 나뭇단값이 만만찮구나.
유리창엔 성애꽃이 만발하였네.
불아궁이에 앉아 불이나 땠으면 좋겠다. 1/12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