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혼자 영화를 보았어요.
오랫만에 만난 스페인 영화였지만, 전혀 낯설지가 않았던건
그래요,,, 그 영화가 주는 풍부한 느낌과 더불어 베를린 영화제였죠?
최고상인 황금곰상(황금사자상이었던가요?, 그게 사실 뭐 그리 중요하겠어요)
인가를 받았던 탓에 벌써 여러번 신문지상에 소개가 되었던 탓이 클거예요.
그대,내가 좀더 부지런 했더라면 커다란 스크린에 압도 당하면서 어디
영화관을 찾아 들었을 테지만 문화적 수혜가 훨씬 쉬울수도 있었던 서울서도
그러지 못했는데 영화관이라고 찾을수도 없는 이곳에선 더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비디오로 나오기만을 학수고대 했었지요.
그러다가 만났으니, 내가 얼마나 기쁨에 들떴을지 짐작이나 할수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결론부터 말할께요. 너무 좋았어요. 그렇게 행복하게 울어본적이 아마
없었지 싶은, 영화가 슬픔의 미학을 표현하는 방식이 서럽도록 아름다운 영화''그녀에게''를
보고는 당장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베스트를 수정해야 했을 정도니까요.
그대, 내가 영화가 끝나도록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눈물이 나오는걸
애써 감추지도 않고 앉아 있을때 물었지요?''슬픈영화야?''라고요..
영화''그녀에게''는 슬픈영화가 아닌 사랑영화였지요.
알리샤가 있어요. 그녀는 미래가 촉망되는 발레리나 였구요.그녀가 발레를 배우는 학원
건너편엔 베니그로라는 남자가 있어요.
손뜨게를 잘하는 남자, 한여자만을 사랑할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태어난 남자는
알리샤가 우아한 동작으로 발레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게 행복했지요.
어느날, 하나의 계기로 둘은 만나요. 알리샤가 지갑을 떨어뜨렸고,
그걸 주어서 베니그로가 그녀에게 전하면서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 주지요..
어떻게든 알리샤를 만나고 싶었던 베니그로는 정신과 전문의인 그녀의 아버지병원엘 찾아갑니다. 환자를 자청했지만 그는 그냥 알리샤를 한번만 더 보고 싶었던 거예요.
그날 알리샤의 머리핀을 하나 훔쳐오는데 그후로 베니그로는 항상 그녀의
머리핀을 가지고 다니게 되지요. 그렇게 사랑이 시작되려는 찰나, 그만 알리샤가 교통사고를 당해요. 비가 오는데 그녀는 병원에 실려가고 그만 식물인간이 되고 말지요.
그때부터 베니그로의 사랑의 진가가 발휘되어요. 알리샤를 간호하기 위해
간호사가 되어 알리샤를 돌보는데 그건 그냥 돌보는게 아니었지요.
베니그로의 손길을 받은 알리샤의 얼굴은 언제나 고운화장을 한채였고,
머리는 잘 빗겨져서 리본으로 묶여 있지요. 정성스럽게 그녀의 몸을 씻기고
온몸을 골고루 맛사지 하고... 하지만 무엇보다 베니그로의 진심이 엿보인건
그녀에게 쉼없이 대화를 하는 모습이었지요.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알리샤에게
사사건건 자신의 주변이야기를 해주지요. 마치 알리샤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이야기를 세세하게 전해 주어요.
그러다가, 어느 늦은밤 알리샤의 몸을 맛사지 하다가 그녀가 좋아했던 무성영화를
이야기해주다가 영화속 연인들처럼 사랑을 나누고 싶었던가요,,,,
베니그로는 말이 없는데 알리샤의 생리가 멈추고 그녀의 몸속에 생명이 잉태되는 거예요.
베니그로는 죽어서도 곁을 떠날수 없었던 알리샤를 두고 ''성폭행 죄''로
교도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지요.
베니그로는 알리샤와 아기의 안부가 정말로 궁금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합니다. 어느 비오는날, 견딜수 없었던 베니그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지요.
자신의 유일한 친구였던 ''마르코''에게 유서를 남기고 말입니다.
이젠 그의 친구인 마르코 얘기를 할 차례군요.
사실은 알리샤에게 지극했던 베니그로 보다 나에게 더 감정적으로 가깝게 다가왔던 사람은
''마르코''였답니다. 우락부락한 외모 대머리의 전조가 보이는 바싹깍은 머리,그리고 사십에
가까운 사내.. 눈물과는 영 어울리지 않을것 같은 마르코가 가장 잘하는 일이 글쎄
무언줄 아시나요? 춤(무용)을 감상하면서 또는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일이랍니다.
아, 그녀에게의 사운트랙인 ''라팔로마''를 들으며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던
마르코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의 여인 투우사인 리디아는 그런 마르코를
사랑하지 않을수 없었지요.
우연히 가까워지게 된 리디아와 마르코는 각각 옛애인을 잊지 못하고 있는
연인입니다. ''감동의 순간에 그녀와 함께 있지 못해 괴로웠지,,''라고 리디아가 안젤라(마르코의 옛애인) 에 대해 묻자 마르코가 그렇게 대답합니다.
그대는 ''감동의 순간에 나와 함께 있지 못해 괴로웠던 적이 있었는지''문득, 묻고 싶어
지네요.
리디아는 어쩐지 그날따라 불안한 느낌이 드는 투우경기를 위해
다시 복장을 하나씩 챙깁니다. 붉은 스타킹을 두겹, 그위에 마치 두꺼운 자루와도 같은
바지를 입고 꼼꼼히 단추를 채우고 금박장식이 유난히 도드라진 저고리를 입고
숨을 가다듬습니다. 옛애인이 청혼을 했는데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말은
경기가 끝나고 할 참이었지요.
그녀가 투우사로서 소와 상대한 것중 가장 큰 소가 그날
성난입김을 마구 품으며 경기장에 돌진해 올때도 그렇게 허무하게
쓰러지지라 아무도 생각지 못했을 테지요. 그녀가 소에 받히는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 베니그로의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어요.
같은 처지가 된 마르코와 베니그로가 그곳에서 만나게 되리란걸 그대도 짐작 했겠지요?
하지만, 알리샤가 다시 일어나리라는 기적을 믿고 있었던 베니그로와는 반대로
마르코는 과학적으로 실험가능한 일만을 믿을수 있다며 베니그로의 생각을 비웃습니다.
그러다가, 베니그로의 그 정성들인 손길과 마음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며
마르코는 어쩌면 베니그로의 정성스런 손길과 마음을 받은 알리샤가 살아 날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지극한 베니그로의 정성이 알리샤를 살려 냅니다.
이미 베니그로는 이세상에 없는데, 그리고 리디아 마저 그만 죽고 말았는데
알리샤가 살아나서 다시 무용학원에 나타납니다.
베니그로로부터 집을 물려 받은 마르코가 다시 나타난 알리샤를 발견하고는
숨을 들이켭니다.
영화를 봐야 그 상황이 이해가 갈테지만,
어느결엔가 마르코의 마음이 알리샤에게 향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 영화의 처음과 끝부분에 ''피나 바우쉬''라는 독일무용수의 춤이 오래 비춰져요.
어쩌면 처음 화면이 열리자 마자 무대가 펼쳐지고 영혼의 몸짓으로 춤을 추는
그녀의 춤이 그대를 전율케 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녀의 춤은 아주 특별했지요. 오랫동안 남성의 주변부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여인의 고뇌를 표현한 그 춤을 보면서 마르코가 눈물을 흘릴만도 했어요.
영화가 주는 감동의 한자락엔 피나바우쉬의 춤이 아마도 커다란 역활을
했던듯 싶어요. 비록 두명의 주인공은 사라졌지만 남은 두명의 주인공이
피나바우쉬의 공연장에서 다시 만나던 날, 피나 바우쉬는 여자와 남자가 아름답게 어울리는
춤을 선보입니다.
피나바우쉬의 춤처럼 영화는 헤피엔딩으로 끝나고 영화를 보면서 내내 슬픈 느낌에 젖었던
관객들도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영화관을 나왔을것 같단 생각을 했어요.
영화가 감동스러울때는 스텝들을 소개하는 자막이 다 올라갈때까지
어쩐지 가만히 그대로 있고 싶지요. 그 영화가 그랬어요. 영화가 끝나고
다시 ''라팔로마가'' 불리워 질때까지 그대로 가만히 있고 싶었던 영화였지요.
그대,
사랑을 받는 일은 행복합니다.
하지만 사랑을 주는 일 또한 얼마나 가치있고 아름다운 일인지
영화를 보면서 새삼스런 진리를 확인하게 되었지요.
지금 사랑하는 그대들, 그리고 그녀들모두 행복하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