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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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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발자국


BY 아리 2003-09-16

 

 신랑이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람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니 ..늘 말하지만

나이 마흔이 넘고 오십이 내일 모레여도 별로 변함이 없다

혹자는 나이가 들면 줄어든다는데 ...

 이래 저래 집에서조차 술을 즐기니 가히 알콜중독을 넘어선 느낌에 위험수위를 느낀지

오래다 ..허나 다들 말하듯이 안 살것 아닌 이상에 어찌할 것인가 ...

술에 안 취해 있을때야 ..우리 형님 말씀맞다나 이서방네 사람 입댈 것 있나

구석 구석 깨끗이 청소하고 생선 내장 다 따주고

국수까지 삶아주고 ..'마님 무얼 할깝쇼?' 하는 자세지 ..

술에 만취가 되어도 새벽이면 어김 없이 일어나서 출근을 서두른 사람이

오늘 도무지 일어나려하지 않길래 내버려두었다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학교 반 대표를 하는 학부모가 전화를 해서

이번 모의고사 끝나고 들어갈 간식을 의논하고 .

 내친 김에 이번주 19일에 가질 반모임 안내차

반친구들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다들 인정하시다시피

요즘의 엄마들은 얼마나 바쁜지 10시가 넘으면 전화통화하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왜 흔한 말들이 있지 않은가 ~~~

10시에 전화 걸어서 전화를 받는 사람은 인간성이 나쁘거나 몹시 아프거나

 돈이 없거나 하는 세가지 중의 하나라고 ~~

그 와중에 신랑이 일어나서 냉수를 달라고 하길래 냉수를 한잔 가져다 주고

속이 더부룩하다고 활명수를 찾아서 건네주었다 ..

 

학교일로 전화통화가 계속되자 신랑이 짜증이 났는지 ..조금 삐진듯 싶었다

허나 어린 아이도 아니고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서둘러 돌아다니는데

--다른때 같으면 종알 종알 졸졸 따라다니던 병아리가 ..아니나서서인지 ..

 

그 와중에

2년만에 대전에 사는 친구가 전화를 했다

아침 시간치고는 제법 된 시간이라 여겨서인지 친구도 신랑이 출근 했냐 어쨌냐

묻지 않고 제 얘기를 하고 나도 모처럼 전화를 건 친구에게 부담이 될까하여 신랑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그 정도는 이해도 될 것 같기에 ~~~~

 

쇼파 끝에 앉아서 전화를 하고 있는데

전화선을 타고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 미영아 너 강아지 기르니 ~?"

"그럼 얘 ..윤정이 대학가고 내가 무슨 낙으로 사니 ..강아지 눈들여보는 재미로 산다 ..~~"

신랑이 현관을 나서는데 앉아서 손을 흔드는데 쳐다도 보지 않는것이 삐진 것이 분명하다

이쯤에서 분위기 파악을 했어야했는데

나는 전화를 편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현관문을 잠그러 나갔다 ...

현관문을 잠그고 잠시후 천둥치는 바람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서 ~~`문이 설 닫혀서 바람에 부딪치는 소린줄 알았다

나가는데

쾅 ~쾅 ~~

영락 없이 신랑의 구두소리였다 ..

 

"야 야 미영아 비상 우리 신랑 화 났나봐 ~전화 끊어 ~"

문을 열어 놓고 멍청히 쇼파에 앉아 있는데 신랑이 들어서서

"그래 이제 내가 강아지만도 못하다 이거지 ~~"

하고 화가 나서 씩씩 거린다

 

내가 늘 그러는 것도 아니고 본인도 잘 알다시피

그동안 우여곡절을 겪은 친구가 2년만에 전화를 했는데 ...아뿔사

이 막내 아들의 심중을 더듬어 보지도 못하고 내 전화로 수다하고 있었으니 ~~

옆으로 비스듬히 서서 날 노려보고 있는데

"서로 다 이해하고 넘어갈 줄 알고 그랬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

마음 누그러뜨리고 출근해요 ~"

"전혀 미안한 기색이 아니네 뭘~"

 

(솔직히 난 그렇게 미안하고 잘못했다고까지 여기지는 않았다 )

자기는 술마시고 싶으면 술마시고 골프 가고 싶으면 골프가고 자고 싶으면 자고

고스톱 치고 싶으면 고스톱치고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주문해서 꼭 자기 먹고 싶은 걸 먹는 사람 아닌가 ..

물론 늘 강조하는 처자식 벌어 먹어 살리기 위해 불철주야 뛰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만 ..

 

신랑친구의 아내나 심지어 내친구들까지 네가 버릇을 잘못들여놓아서 그렇다고들한다

아직도 신혼이니 아직까지 그렇게 젊으니 하고 웃어재끼지만

나로서는 약오르고 얄밉고 .......

도체 싸울래도 싸울시간이 있는가

 

나는 아침에 세차례에 걸려 등교하고 출근하는 사람 배웅하고

비상시에 차를 놓치거나 큰짐이 있을때 길을 가다가 설지도 모르는

고물똥차의 대기 기사 노릇까지 해야하는데 ~~~더구나 그 흔한 핸펀도 없이

그리고 밤 열한시에 아들을 다시 데리러가고

졸음에 쫒기듯 그 밤에 야식을 만들어주어야하고

어제 가을님이 올리신 글이 내내 눈에 밟히고

그 늙으신 노모는 갓 시집온 나에게 맡겨놓고

당신들은 쌀독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 본다고 하소연하는 형님 밑에서

끝도 없는 요구와 불평 속에서 멋적게 입막음을 해온 시간들이

나를 우울하게 했는데 ~~~

 

양저울에 다 달수가 없어서

언제나 시댁의 도리를 우선으로 하고

친정에서 작은 거라도 하나 가져와 그 빈독을 채워놓던 나의 잃어버린 시간들이

정말로 싫었는데  모든 것이 의미가 없는 일이다

잘해줄 때 그때 뿐이다

늘 내게 있는 물건들은 신기하고 좋아서 낡은 손수건 한장까지 가지고 가고 싶어했던

시누이들은 조금만 서운하게 하면 어쩌구 저쩌구 ...

 

 

 

그래 그것들은 바람처럼 씻겨 보내겠지만

신랑은 또 뭔 투정을 하는건가

그렇겠지 밖에서는 다 자기를 존경하다하고 사람 좋다하고

-늘 관대하고 웃어주고 아량있고 돈 내주고 양보하고 --

밖에서야 자기 위치도 있고 자기 관리도 되는지 모르지만 아내에게는

가끔씩 이렇게 밴댕이 속을 여지없이 드러내곤 한다

고3아이의 엄마로 학급임원을 맡아서

아이들 간식 스케줄이며 학부모와 미팅 주선 까지 모두 맡아 골 아프게 뛰어야 하는데

한번쯤 걸러준 배웅에 있어서 신랑의 한없는 투정까지 받아내야 하느냐 말이다 ~~~

 

잘해주면 그걸 고마워 한다는 걸 잊어버린다

아니 당연히 해야하는 일은 안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너 왜 안하니 하고 추궁을 받는다

나도 멀리 멀리 떠나서 홀연히 친구를 만나고 싶고 바다를 만나고 싶고

여유있는 차를 마시고 싶다

그래 미워도 내 신랑이라는데 ~~~~

친구는 자기의 전화로 그렇게 되었다면서

얼른 사과 전화하고 애교작전을 피라는데 ...

 

나야말로 속이 안풀린다

때마침 조카의 결혼문제로 큰언니가 집에와서

다 들통이 났다

현관문을 가리키며

 

"나 이거 안 지울거야 ..창피해서 밖에는 어떻게 나가

통로가 떠나가게 구두로 현관문을 두들겼으니 "

 

언니가 깜짝 놀라면서

"아니 건이 아빠가 그러니? 나는 상상도 못했다 ~~"

 

반은 웃으면서

요즘 하는 말로

"그년이 그년이고 고놈이 고놈이 어떤 놈이 더 나아.."

 

언젠가 방송국에 그 누군가가 자기가 진급했을때 아내가 별로 달가와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요즘은 가끔 이해가 된다

자기는 부이사관이라하여 목에 기브스하고 다닐지 몰라도

 아내인 나는 여지껏 사모님이라는 소리에 닭살이 돋고

궁상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빌빌거린다 ..

 

 

그래 이걸 글로 수다로 풀어야 옳아 남편을 패주어야 옳아 이깟일로 이혼을 운운해야 옳아

서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이해하고 살았으니 여태같이 살아온 거 아닌가

 

아이고 알다가도 모를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