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생수등 무거운 물건을 반품할 때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주장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94

"지리산 산수유 마을"


BY 리아(swan) 2000-09-14

"지리산 산수유 마을"

4월이 되면 지리산 산동마을은
온통 산수유로 치자색을 이룬다.

구례지리산 온천을 지나 조금 오르다 보면 빨갛고 파란
농가의 지붕이 조가비처럼 엎드려있고 구경나온
바람에 간지럼 타며 간들대는 보리 이랑이며
지리산의 풀과 나무에서 스며 나온 물이 돌을 굴리고
바위를 휘감아 돌아 재잘되며 개울을 이루고 개천이 되어
김 용택 시인의 누이 같은 강 섬진강을 만난다.

하얀 헝겊으로 금방이라도 찍어내면
초록이며 노랑이며 하늘빛까지 묻어 날것만 같은
산수유 마을 산동.......

산수유 꽃 축제가 열리는 4월이면 산동마을은
그림쟁이 사진쟁이들의 예술의 혼을 불태우느라
모락 모락 연기가 피어 오른다.

딴짓 꺼리에 바쁜 나는 캔버스와 오일칼러가 주인을
애타게 찾지만 주인은 스케치
할 생각은 접어둔체 알코올의 냄새도 맡지
않았건만 아름다운 자연에 취하고 노천 전시장의
미완성 작품 눈도장 찍기에 취해서 바쁘게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닌다.
항시 야외스케치를 나가면 스케치할 생각은 뒷전이고
그곳의 풍광이며 분위기를 살피느라
정작 스케치는 대충하고 올 경우가 많다

여기저기 사진가들도 엉덩이를 빼고 폼만 잡고 필림은
꼭곡 숨긴 체 절대 보여주지 않는 욕심쟁이들.........

저만치 논에서 쟁기질을 하는 농부는 구성진 소몰이로
논을 갈고 찰지고 윤기나는 흙덩이가 풍년을 약속하며
모로 눕는다.

아마도 첫 외출인 듯한 송아지는 뜻밖의 많은 시선
집중으로 호기심만은 큰 눈을 두리번거리며 어미소의
발자국을 따라 붙는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름 모를 화가는 바쁜 손놀림으로
크로키를 한다
정지용 님의 향수 만큼이나 정겨운 물소리 바람소리
녹색 일렁이는 들판 농부의 소몰이소리 장끼의 구애소리가
앞산뒷산을 울리고 이 모두가 자연의 조화롭고
경이로운 작품들이다.

나는 그런 분주함 속에서 빠져나와 천천히 차를 몰아
마을을 더 거슬러 올라갔다
개천을 중앙으로 산동마을은 꽤나 깊고 기다란 동네였다.
돌담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마을에서 나는 차를 멈추고
마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돌담사이로 산수유의 늙은 등걸이 속을 헤집어 보이고
낮은 담장 너머로 엿보이는 농가며 폐가의 을시년스런
모습과 동네를 다 돌아갈 동안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볼수 없던것도 아랫 동네와는 너무 대조적이라 조금
의아 했지만 이 마을의 퇴락함과 적막함을 말해주는
것같아 안타깝고 쓸쓸했다.


여러 골목을 돌아 한집 앞을 지나쳐오는데 산신령 같은
분이 마루에 걸터앉아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손짓을 한다.
나는 다시 한번 돌아보며 내가 잘못보지 않음을 확인하고
손짓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당에 들어서자 할머니는 멍석에 보리 싹을 틔운
곡식을 말리고 계셨다.
"할아버지 절 오라 하셨어요?"
"사람이 그리운 게여! 며칠만에 하는 사람 구갱이랑께"
대신 대답하는 할머님의 말씀에서 진한 외로움과 서글픔
같은게 묻어났다.
"예! 그러셨군요 저기 아랫마을엔 외지 사람들이 많이
북적 돼던데요?"
"여기 까정은 안 와여!"
할아버지는 말씀하시는 할머니를 향해 지팡이로 꾹꾹
찌르는 시늉을 하신다.
그러자 할머님은 대번에 알아차리시고
"왜여!.....손님왔은께 대접하라고?" 하신다.
할아버님은 몇 년째 중풍을 앓으셔서 겨우 마당을 몇 발짝
거닐 뿐 수년동안 대문 밖을 나가신 것이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하셨다.
할머님이 정갈하시고 깔끔하신 탓인지 할아버님은 환자답지
않게 말끔하셨다.

할머님이 내온 곶감을 할아버님은 먹어보라고 또 손짓을 하신다.
내가 곶감은 한 입 배어 물자 할아버님은 그제야 미소를
지으시는 인정 많으신 할아버지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생면부지의 지나가는 여자를 부르셨을까?
그분도 한때는 활발한 삶이 계셨을 터인데 인생무상 슬픈
회한이 서려있음을 .......
두 분을 나란히 마루 끝에 앉히시고 한 컷을 해드리며
들리는 길에 전해 드리마고 약속했으나 아직도 내 책상
서랍 속에 잠자고 있으니 주소라도 알아올걸.........
내년 봄 산수유가 또 다시 나를 부를 때 그때나 전해드려야
할까보다.

요즘 들어 자주 컴이 말썽을 부린다.
서비스에 맡기고 컴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
지루하고 답답하다.
나의 명령대로 클릭만 하면 움직여 주는 문명의 이기인 컴도
잠시 내 곁을 떠나도 외로움을 느끼고 보고싶어 지는데
산동마을의 노부부는 며칠을 가도 사람을 만날 수 없다니
얼마나 적막하고 외로울까
내년 봄 두 분이 산수유가 필 때까지 잘 계시기를 나의
신에게 부탁해 봐야겠다.

~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