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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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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1)


BY 들꽃편지 2000-12-06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는 걸 알게된건 초등학교 3학년 때 쯤.
우리반에 낯선 선생님이 오시더니 친구들 스케이치북을
하나하나 들쳐 보시는거였습니다.
드디어 내 차례. 꼼꼼히 보시더니,
"이따가,남아 있어라."
그날부터 선배들과 미술공부를 했습니다.
내 또래는 없었고 고학년 언니들 뿐이였습니다.
풀밭에 앉아 농촌 풍경을 그리고,
나무 그늘에 앉아 산과 물과 나무를 그리고,
비오는 창밖을 보며 우산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림 그리는 공부는 재미 있었습니다.
그러나 걱정이 하나 있었습니다.
같이 집에 갈 친구가 없다는 것.
산을 넘어 외갓집으로 가야 하는데, 혼자서 너무 무서웠습니다.
산 중턱쯤 큰 무덤이 몇개 보이는데, 이곳이 제일 무서웠습니다.
산소가 있는 쪽은 외면을 하고 동요를 부르며
가슴이 터질듯이 뛰어 산은 넘었습니다.
산을 넘어 내려다 보이는 고향 마을은 그림 같았습니다.
후끈 달아 오른 얼굴이 시원한 바람결에 씻기고,
요동을 치던 심장이 차분하게 자리잡을 때까지
마을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멀리서도 파랗게 흐름이 보이느 냇물.
냇물로 둘러 싼 평평한 논의 싱그러움.
내리막길로 이어진 산길가에 하늘나리꽃.
산위의 바위틈에 소나무와 떡갈나무들...
산길 끄트머리밭엔 옥수수잎이 출렁거리고,
고구마 줄기가 왕성하게 자라던 머언 길을
아름답지만 혼자 걸어 다니기엔 무서웠습니다.
어느날은 운이 좋으면 어른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러면 어른들 뒤를 놓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아 갔습니다.
저만치 사람 뒷모습만 보고도 무섭지 않았던
순박했던 시절이였습니다.
지금은 으쓱한곳에서 사람 만나는게 제일 무서운데 말입니다.

크레파스로 그리는 그림.
노란색으로 밑그림을 그린 다음,
색색으로 흰도화지를 채울 때의 기쁨은
친한 친구가 없던 나에겐 친구만큼의 즐거움으로 내 곁에
있어 주었습니다.
열심히 한 결과.
전교 대표로 상도 많이 받고, 전국 대회도 나가고...
'난 그림을 그려야 되겠구나'이것이 초등학교 때의 막연한
꿈이 였습니다.
하지만 전학을 많이 다녔고,
한 곳에 정착 하지 못해
그림에 대한 꿈이 점점 사그러지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내 그림에 대해 관심도 없었던 힘겨운 시절이였으니까요.

하늘처럼 파아란 꿈이 있었더래요.
그 하늘엔 바다가 있고, 맑간 창도 있더래요.
밤 하늘에 별이고 싶던 어느 해.
내 꿈도 어둠에 속해 버렸더래요.
플라타나스 나무처럼 큰 꿈이 있었더래요.
그 나무엔 사계절이 있고,손짓하는 바람도 있더래요.
플라타나스 허리만큼 내 키가 크던 날.
내 꿈도 나무그늘아래 숨어 버렸더래요.

내 크래파스를 훔쳐 갔던 우체부아저씨 딸 선희도,
약간 모자르던 짝꿍이였던 옥분이도,
선생님 여동생이였던 혜숙이도,
내가 기억하듯 날 알고 있을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순간순간의 기억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