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떠 현관밖을 나가보니 온 세상이 하이얗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이는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밥한술뜨고는
" 내가 이따가 와서 확인할꺼야 엄마 밥 먹었나 안먹었나 꼭 먹어야돼 "
그리곤... 나가버린다.
엊저녁.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우린 조촐한 파티를 했다.
딸아이와 나.
당그마니 둘이 앉아 짬봉과 우동으로 저녁을 먹고
오징어 한마리, 과자 몇봉지 도시락김 하나
그리고 맥주두병.
비록 케?葯?촛불도 없는 상이지만.. 그런대로 푸짐함을 느낀다.
아이는...
벌컥벌컥 따라준 맥주잔을 시원스레 비워낸다.
이제 열네살.
친구들과 호기심으로 숨어 마시는거 보단 어른앞에서 마셔보는게 좋을듯싶어
얼마전 생맥주를 사주었더니 그리도 맛잇다고 하여
오늘도 철없는 딸아이와 난 술친구로 마주한다.
남편과 아빠에게 서로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본다.
크리스마스 이브...잘 지내라고
그리고 우린 지금 파티중이라고.
답신없는 서로의 핸드폰을 아무말 하지않은채 한쪽으로 밀어놓는다.
한모금 두모금.. 맥주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고
아이와 난 서로의 깊은 상처들을 꺼내 놓았다.
이런저런 서로의 대화중에 난 아주 조심스레 아이에게 말을 꺼낸다.
" 엄마말... 잘 새겨듣거라 "
" 응. 해봐 "
" 네 아빠 눈밖에 나지않게 잘하거라. 언젠가는 네 아빠와 함께 살게될텐데
서로 미움이 크면 살아가는데 힘들지 않겠니? "
" 그럼 엄마는? "
" 엄마는... 지금은 네 아빠를 기다린단다.
하지만... 언제까지나는 아니란다.
조금더 기다려보고 영영 안돌아올 사람이라면 난 포기하련다. "
" 그리고? "
" 나도 내 인생 찾아가야지. 얼마나 산다고 돌아선 사람을 막무가내로 기다리겠니?
한살씩 나이는 먹어가는데 엄마도 여자란다.
누군가인지는 모르지만 사랑받고 사랑하며 살고싶단다. "
" 그럼 나 데려가면 되잔아 "
" 아니, 그럴수는 없단다. 넌... 유씨잔니. 유씨가 네 뿌리가 된단다. "
" 엄마도 내 엄마잔아 "
" ...... "
" 응? "
" 이화야! 네가 아직은 어려서 모르지만... 이다음 아주많이 크면 알게될꺼란다.
왜 엄마가 널 네아빠에게 보내려 했는지. 그리고 왜 뿌리운운했는지... "
" 지금 말 해주면 안돼? "
" 아직은 안 ?쨈幷? 나중에... 알고싶지 않아도 알게될꺼란다.
그리고 그 이유라는걸... 네아빠에게서 들었으면 좋겠구나.
엄마가 아빠에게 버림받은 이유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테니까 "
차마 사실을 말 할수 없는 나는 그냥 속으로만 오열할밖에.
아이는 제 아빠라면 머리를 흔들며 아빠라는 단어조차 입 밖으로 내길 싫어했다.
남편도.. 애는 네가 저지른 일이니 네가 알아서 하라하고.
내 발등 내가찍었다고 이제와서 후회한들...
어차피 나는 아이에게 엄마라는 이름만을 잠시 빌려주었고
아이는 내게 자식이라는 이름을 준것일텐데...
" 아빠를 너무많이 미워하지 말거라.
부부는 헤어지면 남이되지만 부모자식은 절대로 남이될수 없으니
아빠를 이해하고 네 마음에서 받아들이거라.
그리고 만약에 끝내 엄마랑 아빠 남이된다면 새 엄마에게 잘 하거라.
싫고 미워도 아빠하고 살면 네겐 엄마가 되는것을
네가 어?M나면 널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르니 사랑받는 사람이 되게끔
올곧게 클수있게 노력하거라.
하지만...
가능하다면 엄마를 도와서 아빠가 엄마에게 돌아올수 있도록
네가 중간에서 다리역할을 해 주면 좋겠구나.
미워도 밉다는 내색하지말고 아빠에게 곰살맞게 굴거라.
보고싶다고도 하고 아빠랑 전처럼 한잡에서 살고싶다고도 하고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고도 하거라.
문자도 자주보내고 멜도 자주쓰고 전화도 자주하거라.
지금 네아빠와 엄마의 연결고리는 오로지 네게 달려있으니
엄마를 도와주면 좋겠구나. "
많은 말을 하도록 아이는 말이없다.
저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
" 딸! 유이화 "
아이는... 울고있었다.
툼벙툼벙 눈물방울을 떨어뜨리던 아이는
" 엄마, 아빠없이 그냥 나하고 둘이만 살면안돼?
남자가 꼭 그렇게 필요한거야? "
가시처럼 내게 그렇게 쏘아붙인다.
벌컥벌컥 또한잔의 맥주를 제잔에 따라서는 단숨에 마셔버린다.
그리곤...
거칠게 날 밀어붙이고 이불을 뒤집어 쓴다.
혼자남아 남아있는 맥주를 마시고...
난 다시 멍청이가 되어 오두마니 그렇게 앉아있다.
파티는 그렇게 우울하게 끝나가고 서로의 가슴엔 또다른 상처만을 남긴듯 싶다.
커피한잔으로 아침을 때워 그런가?
배가 고파온다.
한술 먹어야지. 먹어야 살고 또한 난 살아야 하니까.
어차피 부여받은 내 생인데...
사는날까진 살아봐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