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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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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나고 싶다 2


BY 카이 2003-09-09

남편은 어제 새벽 3시에 들어왔다. 자주 그런 것은 아니고 간혹 있는 일이지만 그가 음주운전을 하고 술을 마신 다음 날이면 츨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다.

새벽1시. 남편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망설이다가 동창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새벽 1시다. 전화를 걸만한 시간은 아닌데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친구는 반갑게 맞았다. 십 년만이고 또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으니 서로 존칭을 써가며 어색해 할 법도 한데 마치 십 년 전 그 때와 다름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나야, 문형이!"

"아아~, 야, 문형아, 잘 있었냐?"

"너, 공부하고 있었냐?"

"어, 나 내일 강의가 있어서 강의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허걱~ 맞혔다)

"너, 집이냐?"

"응, 나 귀국한지 얼마 안 되어 외삼촌 집에 있다. 너 서울 올 기회 있냐?" (---)

"나, 집순이야."

"거기 시흥이라며. 서울에 있는 시흥이냐, 경기도 시흥이냐? 시흥이 두 갠데--"

"난 그런 거 모른다. 아무튼 시흥이고 난 여기 지리 잘 몰라. 원래 집순이라....

모든 걸 다 인터넷으로 해결하지."

"그럼 이메일 주소 좀 알려다고."

"그래..    ****인데"

"꼭 스팸매일에서 쓰는 아이디 같네. 근데 야, 병*는 어찌 됐고 인*는 어찌 됐다.

석*은 아무도 어디 사는지 모른다."

"그래, 다들 성공했구만. 야. 너 계속 공부해라. 나중에 보자."

"그래, 공부할께. 나중에 또 연락하자."

십년 전 머리 맡대고 앉아 논어니 맹자를 읽을 때와 똑같이 부담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건 아마 그 친구가 아직까지도 순수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흔이 다 된 나이까지 공부만 하다가 이제야 시간 강사 자리를 얻은 사람을 상상해 보라.

그 친구와 통화를 끝내고 나니 암울하기 그지 없었던 나의 대학생활이 문득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까마득하게 먼 길이라 지레 겁 먹고 나 스스로 박차고 나온 길을 그 친구는 꾸준히 걸어왔다. 장장 십 년 간이나.  크게 축하해주어야 할 일인데 깜빡 잊었다.

나는 지금 그와는 아주 다른 세계에 있다. 그는 아직도 대학 캠퍼스에 있는데 나 있는 이 곳은 시화공단이다. 내가 몸 담고 있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와의 사람과 결혼하여 왜 이렇게 마음 고생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새벽에 들어온 남편에게 다시 한 번 경고하였다. 계속 이러면 나는 당신에게서 마음이 조금씩 멀어지는 수밖에 없다고. 그건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그 세계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