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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추억


BY 미역취 2003-09-05

나의 여름은 모시 옷에 풀을 먹이는 일로 시작된다
모시 옷에 고운 쌀풀을 먹여서 손질 하노라면
모시 올 올사이로 친가 아버님의 모습이 떠올라 그리워진다
성품이 유난 하시던 아버님은 어머닐 많이 힘들게 하셨다
의복이면 음식이 당신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몇 번이고
다시 해드려야 했다 모시 옷은 보리짚 재을 시루에 담아서 물을
부어서 내리면 노란 잿물이 나오고 그 물에 모시 옷을 빨아야 재격이다
풀을 먹일 때는  바느질 한 솔기을 다 뜯어서 풀을 먹여
손질한 모시 옷은 홍두깨에 말아서 다듬질을 한다
어쩌다 실수로 모시 옷에 얼이라도 치게되면 어머닌 속상해 하시지만
바느질 하실 때 그 자리을 깜쪽같이 기우시는 솜씨도 있어시다
잔손이 많이 가는 한복 바느질로  어머니는 늘 분주 하셨다
바느질 하신 옷은 새벽 이슬에 녹였다가  아침밥 짖고난 숯불을
후라이팬 같은 무쇠 다리미에 담아서 둘이서 마주잡고 다린다
다림질 하는 날이면 어머님은 꼭 나을 깨우신다
달디단 아침 잠에서 떠지지 않은 눈을 비비고 앉아서 붙잡고 있지만
몰려오는 잠에 못 이겨서 깜빡 졸다가 손이라도 놓치면 마루에는
불덩이가  딩굴고 모시 옷은 재가 묻어서 검정 옷이 되어버리면
어머니 불호령이 떨어진다 더 혼날까  지레 겁을 먹고서 아침밥도
못 먹고선 학교로 달려가지만  배가 고파서 공부는 뒷전이고
눈 앞에는 밥그릇만 아른 거렸다 점심시간에 동무들 밥을 두어 술씩
얻어먹고선 수도가에서  물로 배을 채우다  집에와 밥을 먹으면
밥맛이 아니라 꿀맛 같았다
여름날 동무들과 냇가에서 종일토록 멱을 감다가 신발을  잃어버리고 
야단 맞던일도 정신없이 놀다가 소낙비에 옷이 다 젖어 생쥐꼴로
집에와  종아리 맞던일며 먹을게 귀하던 시절 새벽에 풋감을 주어다
소금물에 삭여서 먹어면  왜 그리도 맛이 있던지 .......
하교길에  배도 고프고 장난끼도 발동해 남의집 무우밭에 들어가
무우를 서리하다   이 놈들 하는 쥔 아저씨 고함소리에 놀라서
걸음아 날 살려라  달아나다가 허리에 둘러멘 책보가 풀어져서
책이며  공책이 없어서 울면서 오던길을 되돌아 가보면 무우밭 아저씨가
흩어져 있는 책을 주어모아서 밭둑에 두고 가셔서  고마움에 더 소리내
울었던 기억 저녁이면 마당가에 모깃불을 피어놓고  평상에
동생하고 나란히 누워서 밥 하늘에 별을  헤이다 잠들던 어린날에
추억들이 여름철이 되면 영상처럼  떠 오른다
젊은날에 어머님은  정말 선녀처럼 고우셨다
가끔 외출 하실 때면 동백기름 바르시고 자주댕기 물려서 곱게 빗어
쪽진머리 햐안 모시치마 옥색 저고리 외씨 버선에 흰 고무신 신어시고
나는듯이 걸어시는 모습은 내 어머니 아니신듯 고우셧는데
그 곱던 모습 간곳없고 세월에 그림자만 남아있서
내가  불효을 많이 해서 더 늙어신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
나는 올해도 모시 옷에 풀을 해야겠다
어머님처럼 한복은 아니지만 모시 올 올사이에 어리는 옛 추억을
더듬어 보며 잠자리 나래처럼 손질한 모시 옷을 입고서
하늘을 날으면 하늘 저편 어디에 행복이 숨었는지 찾아가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