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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루사"


BY 수재민 2003-08-31

    어제밤에도 밤새 비가 주룩주룩 내리더니.. 오늘 아침에도 여전히 추적추적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요즘들어 왜 이렇게 비가 자주 오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집앞 텃밭에서 딴 빨간 고추가 오늘로 10일째인데 그 고추가 햇볕을 본것은 몇일전에 약  한시간 정도 본거 밖에 없다 그러니 그 고추는 '태양초'가 아니라 전기장판에서 말린 '전기장판초'라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밭에는 또 빨간 고추들이 주렁주렁 한데 말릴걸 생각하니 딸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 제발  이제 비는 그만 오고 높고 푸른 가을하늘을 볼수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라는 마음이다.

 

   작년에도 비가 이렇게 많이 왔었다 작년에도 고추를 따고난 그 다음날  말 그대로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강릉 기상청에 기록된 대로  시간당 100미리라는  사상 최대의 비가 내리던그날.. 2002년 8월 31일 태풍'루사'가 몰아치던 바로 그 날이다.

그 루사로 인하여 이곳에 사시는 100살 된 노인이 이런 난리는  평생에 처음 본다는 난리중 에서도 난리인 천재지변이 내가 살고 있는 강릉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강릉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장현 저수지가 인접한곳에 살고있는데 그 날 남편과 나는 불어나는 물살을 피해 정신없이 자식같은 "개' 6마리만 차에 싣고  시뻘건 흙탕물이 파도치고 있는 다리를 아슬아슬하게 건너서  산으로 피신을 했었다 그때 시간이 오전 9시경인데 정말 하늘에 커다란 구멍이라도 뚫인듯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쏟아지는 비는 그칠줄 모르고 종일토록 내렸다

 

  그날밤 차속에서 들은 9시 뉴스에서는 강릉시내에 있는  남대천이 넘쳤다는 소식과 여기저기 저수지가 터지고..기어코 우리동래 장현 저수지마저도 터졌다고 했다. 그런데다가 전기마저 들어오지 않으니 온 천지가 암흑처럼 깜깜했다 주위에 불빛이라고는 눈을씻고 찾아봐도 보이지않고 하늘에서 번개불만 칳흑같이 어두운 허공을 가른다 남편과 나 그리고 개 6마리는 공포에 떨면서  어둡고 지루한 밤을  보내야만했다 그런데도 비는 여전히 그칠줄 모르고 다음날 새벽까지 마구 퍼 부어댔다 새벽4시쯤 되어서야 빗줄기가 가느러진다 싶더니 점차 비가 그치는 것 같았다

 

  아침이 밝아왔다. 그리고 찬란한 태양이 떠 올랐다. 마치 땅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엄청난 일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환하게 웃음 지으며 동쪽 하늘에 눈부시게 떠 오르고 있었다.


  날이 밝아 마을을 내려다보니 집이고 밭이고 논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빨간 흙탕물이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키가 큰 전봇대도 하나도 보이지가않아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느라 이틀을 산에서 차안에서 지내야만 했다 그 이틀동안 먹을 것이있나.. 갈아입을 옷이 있나.. 흠뻑 젖은 옷을 그대로입고 개들과 같이 좁은 차 안 에서 이틀을 지내는데 불편한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오직 우리집이 어찌되었을까..?하는 그 생각 때문에 가슴이 답답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제일 불편한 것은 먹을 물이 없다는 것이다 주위에 온통 물 때문에 난리가 났지만 정작 먹을 수 있는 물은 단 한 방울도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산에서 이틀 밤을 보내고 그 다음날 마을로 내려왔다 마을에 있는 길이란 길은 모두 유실되고 붕괴되어서 차는 고사하고 사람도 다닐 수 있는 길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차는 산에 둔 체로 걸어서 가까스로 마을로 오니 장현 저수지 밑에 있던 집들이 모두 쓸려가 버려 형체도 찾아 볼수가 없었다. 지난밤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한눈에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그런데다가 사람의 시체가 몇 구가 떠내려 왔다는 등등 상상 할 수 없는 참혹한 일들이 벌어진 현장 속에서  나는 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같이 동참하고 있었다.

 

   아수라장이 된 마을을 뒤로하고 다리를 건너 우리 집으로 향했다 멀리 우리 집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지붕을 보니 반가웠다 집으로 가 보니 집 절반이 토사에 묻혀있고 마당 한가운데로는 커다란 냇가가 생겨 물이 흐르고 있었다. 집안을 보니 이불장이 넘어져서 이불이 뻘 속에 잠겨있고 냉장고도 세탁기도 컴퓨터도 모든 가구와 물건들이 뒤범벅이 되어서 뻘 속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우리 집은 옛날의 목조 건물로 단층 짜리 집인데 아래채는 지붕까지 물에 잠겼고 위채는 약 삼분의이 정도가  물에 잠겼으니 싱크대고 침대고 그 무엇 하나 건질게   하나도 없었다 커다란 창고도 무너져 내려앉았지만 그래도 우리 집이 건재하게 버티어 준 것이 고마웠다.

 

   나는 허물어진 창고 속에서 텐트를 찾아내어 감나무 밑에다 치고 그 속에서 20일을 살았다. 마을회관 앞에는 콘테이너박스 21개가 들어섰다 그러니까 저수지가 터지면서 21채의 집을 휩쓸어 버린 것이다 그 밖에 반파된 집이 몇 십채에다 수확기에 접어든 농경지들의 피해는 말 할 것도 없고 도로가 전부 유실되고 산이 무너져서 집과 사람들이 흙 속에 매몰되고 등등 정말 지옥에서나 있음직한 일들이 이곳 강원 영동지방에서 일어났다 한바탕 수마가 할퀴고 간 그 자리는 페허 그 자체였다.

 

   우리는 20일만에 급하게 아래채 방 두개를 수리하고 도배해서 들어갔다 그곳에서 살면서 안채를 수리했다 약 석달만에 안채로 입주를 했다 지금은 그 새 집에서 감사하는 마음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 마을에도 하나둘 새 집들이 들어서고 농지도 복구되어 농사도 다시 짓을 수 있게 되었다 도로와 하천은 지금도 복구 중에 있으나 곧 수해복구가 완공이 되면 다시 살기좋은 마을, 새마을 '모산'이 될 것이다.

 

   나는 남편의 사업관계로 8년전에 강릉으로 이사와서 53살의 나이로  남의 일로만 여겨왔던 수재를 당해 수재민이 되었었다 '루사'가 몰아치던 그 날 아침까지도 별일이 있으랴 싶어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보던 책도 덮지 못하고 정신없이 산으로 피신하여 산에서 이틀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보니 30년도 넘게 내 손때가 묻은 물건들은 모두 물에 잠겨  아무 쓸모가 없이 되어 버렸다 하나같이 내가 아끼고 아끼던 것들이지만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다 버렸다 그러자니 너무 마음이 아프고 허망했다. 어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런 엄청난 일이 단 하룻만에 일어났다는 사실도 믿을 수가 없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듯 했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나는 이일로 자연의 위력과 위대함을 보았고 그 자연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무력한 인간의 존재를 보았다.정말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간사라는 것을 뼈가 저리도록 느끼게 하는 일이었다.

 

  오늘이 태풍'루사'가 지나간지 꼭 일년이 되는 날이다  나는 내가 살아있는 그 날까지 작년의 오늘을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 이 글은 간추려서 간단하게 쓴 것이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쓴다면 단편소설 한편 정도는 족히 되리라 생각한다.

 

   끝으로 작년에 '루사'로인해 절망에 빠져있던 우리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신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싶다. 제일먼저 많은 성금을 모아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 드리고싶고... 수재민들을 위해 여러가지로 신경 써준 정부에도 감사 드리고싶고... 수해복구를 위해 열심히 일해준 대한민국 국군 아저씨들께도 감사 드리고싶고... 침수된 각종 물건들을  고쳐 주기 위해서 서울서 득달같이 달려와 친절하게 봉사해준 여러 기업체들에도 감사 드리고싶고(빨래까지 해 주었음)... 그밖에 식수,라면,쌀,전기장판,이불,등등 여러가지 생필품들을 보내주신 많은 분들께도 감사드리고싶고... 토사를 한 삽이라도 더 퍼내어 수재민을 돕겠다고 도시락까지 싸와서 먹어가며 말없이 일하다 간 많은 자원 봉사자들께도 감사 드리고싶고..  형제,친구 이웃들에게도 감사를 드리고싶다 .


  이렇게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우리는 절망에서 일어 설 수가 있었고 오늘을 다시 맞이 할 수가 있었다  항상 그 고마움을 가슴속에 새기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살아 가리라... 진정으로 여러분들에게 깊숙히 머리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싶다.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