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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85

두칠이 각시


BY 27kaksi 2003-08-30

나는 나이먹은 각시이다.

이 나이에 각시라니......

언젠가 따르는 후배에게 메일 주소를 적어주는데, 27kaksi랬더니

나를 빤히 바라보며,

너무 나답다고 웃던 기억이 난다.

나 답다........

우리 신랑의-이렇게 불러도 될려나, 어쨌든 나이먹은 신랑이라도 신랑은

신랑이니까...- 사이버 이름이 Akim27 이다..

핸섬한 그에게 어울리진 않지만 그는 두칠이이고, 그래서 나는 두칠이

각시가 되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두칠이 각시! 완전 머슴각시 이름 같다. 그래서 영어를 좋아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멋을 낸다고 kaksi 라고 하기로 했다.

몇년을 그렇게 쓰다보니 나름대로 정도 들고, 좌판을 치기도 좋아서

계속 쓰고 있다.

주위에는 예쁜 아이디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아컴에도 보면,

손풍금, 골무, 바다새, 등등.... 나의 가장 친한애는 보리물결이고, 우리

늘씬한 둘째딸은 큰 따옴표이다.

난 어렸을때부터 신랑 각시라는 말을 좋아했다.

오빠언니는 터울이 커서 같이 놀아줄 상대가 아니었고 옆집에 연지라는

이름을 가진 언니가 유일한 친구였는데, 우리의 놀이라는게 공기받기

아니면 줄넘기 같은것이어서, 난 남자애랑 신랑 각시 하면서 소꼽놀이

를 하는게 소원이었다. 그때가 다섯살에서 여섯살이 되어가던

봄쯤이었다.

옆집 연지 언니는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난 혼자

놀면서 늘 예쁜 신랑을 꿈을 꾸었다. 어른들이 보는 잡지에서 하얀

드레스를 입은 사진을 보고는 며칠을 그 모습이 잊혀지지않았던 기억이

난다. 언제나 난 처녀가 되어서 그렇게 예쁜 드레스를 입고 시집을

갈까? 그생각을 많이했었다.

요즘처럼 TV도 오락도 없던 유년시절의 나의 사고의 폭은 내안에 있는

모든것들이 상상의 세계였고, 꼬맹이 계집애의 삶은 꿈을 꾸는게

하는일이었다. 내가 여섯살때,

우리 큰오빠가 결혼을 했다. 새언니는 빨간 양단에 초록색을 위에댄

하얀 홋이불을 쒸운 이불을 혼수로 해와서 덮고 자는데 어찌나 그게

부럽던지 밤마다 큰오빠랑 자겠다고 울었던 생각이 난다.

새각시인 올케는 철부지 늦둥이 막내 시누이가 얼마나 미웠을까!

잠깐 집에서 살고는 오빠의 직장을 따라 새언니가 이사를 가던날,

새색시인 올케언니가 부러워서 눈물이 났었다.

무조건 신랑 각시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ㅎㅎㅎ

학교를 마친 24살에 그를 만났다. 난 그의 각시가 되는게 바램의 전부

였고,두 가정에서 모두 반대를 한탓에 힘들게 그의 각시가 되었다.

나는 그때 명동에서도 가장 좋은집에서 지금 봐도 멋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어렸을때 꿈꾸던 그꿈을 이룬것이다.

아름다운 신부였다. 그날은 누구나 아름답지만.....

그렇지만 난 행운의 각시였다.

그는 내게 빈틈없는 신랑으로 우리집은 행복지수가 아주 높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지만, 직장도 내꿈도 모두 접고는,

예쁜 첫딸을 낳고 , 둘째와 막내 아들을 낳고는 세상이 다 내것인양

각시로만 살았다.

어제 만난친구가, 휴일에 집을 몇채씩 가지고 있는 부자를 만났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직장에 있는 분에게 말했더니,

자기는 어려웠을때 행복지수가 높았었기 때문에 부자가 부럽지 않다고

말을 하더란다. 난 그얘길 듣고 오래 잊고 있던' 행복지수' 라는 단어를

만나고는 갑자기 너무 반가웠다.

늘 행복지수가 높음을 감사하던 날 되돌리고 싶었다.

요즘 너무 욕심에 찬 내모습이 누더기 같아졌다.

예쁘고 착하던 각시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세상의 때가 끼인 중년의

아줌마로 변해있다.

내가 좋아하던 몸도 마음도 풍성한 신앙의 선배가 있었다.

좁은 서민 아파트에서 세아들을 잘길러서 번듯한 어른으로 만들었고,

어려운 살림이지만 서방님도 깎듯하게 모시며 열심히 사셨다.

그리고 넓은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를 갔다길래 축하 인사를 했더니

그분이 그렇게 말했다.

" 좁은 집에 살때는 아들들이 방이 따로 없어서 마루에서 막내가 자고,

아버지가 안계실때는 엄마하고도 자고, 추운 겨울에는 모두 방에 모여서

자고 했을때, 우린 정말 행복 했었다우, 서로의 몸을 부비며 얘기도 하고

서로 간지럼을 태우며 깔깔거리기도 했지.....

서로 밤을 지새며 대화를 하곤 했는데.....

그런데 집이 커지면서 모두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서 우리집은 대화가

줄었다우, 서로 자기의 성에서 살고 밖으로 눈을 돌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집은 행복지수가 내려 갔지.... 요즘 사는 재미가 없어요"

그때 들었던 행복지수라는 단어는 오래 내 머리에 남아 있었는데, 어제

친구의 입에서 그런말을 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는 것에 아직도

우리네 세상은 바른생각의 사람이 많이 있는것 같아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래,

내주위에는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다..

나때문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살아보자.

그사람들을 모아모아 사랑의 마을에서 살게 해야지,.....

그리고,

우리집의 행복지수를 몇눈금이라도 더올릴 수 있도록 해보자.

난 우리집에 행운을 가져오는 우렁각시 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