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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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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여기 고추가 있었네


BY 바다 2003-08-30

 

말복이 지났네 그것도 보름이나

감나무밑에서 맴맴거리는 매미의 울음이 탄력을
잃어 가고 아직도 민소매 옷을 입고 있던 나의
팔엔 까슬한 털이 솟았다.

계절이 가고 있었구나. 늘 한박자 늦게 우물거리다
바빠서 허둥거리며 대충 아귀 맞춰 사는 삶.

사회생활이 시작되던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수업을
받는 것 보다 등교시간을 맞춰야 하는 부담감으로
시작된 허둥거림은  중고교 시절 어머니의 갈래머리
따아 주기와 통학버스 잡아 주기의 도움받기로 이어지고
결혼하여 직장생활을 하던 몇 달 전까지도 주위 사람들의
참여로 출퇴근 시간을 맞춴던 나.

말복쯤에  김장용 무우 배추를 심어야 할 때라고 어설픈
농부(?)에게 옆집 할머니가 일러 주셨던 말씀이
이제사 생각 난다.

시골로 이사오게 된 몇달 전 마을 이장님께 인사갔다가
농사라곤 고추 모종 백포기를 심어 놓은 내가 마치 농민이 된 양
농민 달력 남은것 있으면 저도 하나만...해서 얻어온
그 달력에다 말복이라고 표기된 한자에다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까지 쳐 놓고선.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허둥허둥 쪽문으로 연결된 돌담 아래
뒷마당에 있는 채마밭으로 갔다.

그동안 비옴 해남 비옴 비 비 비옴의 날씨속에 200여 평 남짖
한 밭은 가라지 천지였다.

허리춤까지 차오른 가라지. 먼저 낫으로 윗동을 베어 내려는데
뿌리 째 한웅쿰 딸려 나온다.

비가 온 후여설까?술술 빠져 나오는 풀들을 잡아 당기고 있는데
빨간 물체 하나가 딸려 나왔다.
고추였다.
어머 고추가 여기 있었네

지난봄 백주심은 고추모 중 70여개는 앞 마당에 나머지 30여개는
뒷마당에 심었었다.
병이 잘들어 고추 농사가 초보자에겐 정말 힘들다는 이웃들의
얘기에 풋고추라도 몇 개 따먹어 보고 그것도 안돼면 연습한번
해봤다 생각하며 가볍게 시작한 고추심기. 앞마당에서 수확한
것으로 솔솔히 된장찌게에도 넣어 먹고 부침게도 부쳐 먹고 했었다.
뒷마당에 심은 고추는 까마득히 잊어버린 체.

우거진 풀을 헤집자 여기저기서 길쭉길쭉한 빨간 고추들이
모습을 드러 내고 있었다. 내가 잊고 있는 동안 여린 생명은
끊임없이 삶을 향해 내닫고 있었나 보다.

 

아 생명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니 이곳에서

하늘을 온통 덮어 버린 잡초더미에서 헐떡이며 가파른
호흡을 했을 녀석들을 생각하며 부지런히 낫질을 하여
늦게나마 숨통을 열어 줬다.
빨간 고추를 딸까 생각하다 이틀 더 두었다 땄다.
땅에서 맘껏 숨 한번 쉬어 보라는 게으름뱅이 주인 아줌마의
배려(?)다.

멍석에 누운 빨간 고추를 한가롭게 이리저리 뒤집다 아차 싶어
뒷곁으로 달려가 채마밭의 흙을 골랐다.

씨앗은 늦었지만 모종은 이제라도 가능하다고 한다.
내일 모종 사갈께 하는 친구의전화를 받으며 열심히
열심히 땅을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