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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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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부페간날


BY 꼭지 2003-08-21

  우리나라처럼 가지각색 먹을 것과 음식점들이 많은 곳도 아마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청소년들이 가기 좋은 떡복기집, 라면집, 튀김집에  가족단위로 가는 서양식 레스토랑, 중국집, 삼겹살집, 갈비집, 일식이며 한정식 등등.   이렇게 배 불리 먹으면 디저트로 커피, 과일전문점, 허브차, 아이스크림, 떡집, 베이커리 또 ...

  외국인들도 우리네의 눈부신 음식문화에 혀를 내둘른다.  그것도 밤늦게까지 불야성을 이루며 다리밑이고, 공원이고 고속도로며, 아파트 주변에 이르기까지  자리만 있으면 우린 어디서든 먹을수 있다. 

  내딴에는, 가장 가기 힘든 것이 부페다.  왜냐하면  길게 차려놓은 음식들중 도무지 어느것부터 먼저먹어야 하는지 구분하기 힘드니까.  음식점에 가면 알아서 순서를 챙겨 주는데. 그것도 물수건부터 시작해서.  요놈의 부페는 내겐 미로찾기이며 순간순간이 고뇌의 선택인 셈이다.

  무얼 먼저 먹을까가 고민인데다 또 나를 망설이게 하는 것은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돈을 낸만큼 과연 우리가 성실하게 먹었는지 쉽게 판단이 가지 않는다는것.  얘 좀더 먹어 돈아까와. 너 고기 안먹으면 앞으로 한달간 국물도 없어.  엄만 벌써 세바퀴 돌았는데 넌 아직도 그거냐?  자식들과 싸우기도 싫고 또 다 먹은후  등뒤로 아직도 색색의 아름다운 음식들이 남아있다는 사실도 나를 부페에 가기 쉽지 않게 만든다.

 내가 부페에 처음 간게 언젠지 정확히 기억은 안난다. 하지만 부모님 경제력을 생각해보건대 아마도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한번은 교수님이 부페를 산다기에 친구들과 함께 63빌딩 부페에 간적이 있다.  처음으로 그렇게 어마어마한 빌딩에 있는 부페에 간 나는 입구서부터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고민이었다.   평소 생크림이라면 정신이 없던 나,  저편에 마치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색색의 과자 집처럼 알록달록 오만가지 모양으로 차려져 있는 케익이 눈에 띄었다.

  내 친구들과 교수님은 우와하게 과일도 먹고 야채도 먹고 또 적당히 이야기도 하고.  하지만 내 머리속은 온통 케익을 언제쯤 먹어야 하나 생각뿐.  

 접시를 몇개 비우고, 써빙하는 사람이 몇번씩 물잔을 채운후 드뎌 우린 케익코너로 갔다.

와, 정말 끝내준다.  나는 넓직한 접시에 모카케익 한쪽, 딸기가 얹힌 케익한쪽, 호두케익 한쪽, 네모난 케익 한쪽, 동그란 케익 한쪽 하다보니 어느새 접시가 수북했다.

  자 이젠 천천히 내자리로 가서 요놈들을 먹어보자.  테이블에 앉는 순간 교수님의 눈이 내 접시에 와 꽂혔다.   내 과욕과  부페에 첨 온 내 이력이 탄로나는 순간.  아뿔사.  한두개만 골라올걸 이제 후회해도 내 상처난 자존심은 회복불능.  교수님은 아무 말씀도 않으셨지만 난 아직까지도 그 순간이 창피하다. 

  가끔씩 지인들이 아이들 돌잔치나 부모님 생신등으로 부페를 한다고 할때 난 여전히 못마땅하다.    난 갈비집에 가면 갈비를 먹으며 맛있는지 없는지 다시 올 만한지 아닌지 생각하고, 보리밥집에 가거나 하다못해 김밥집이나 커피를 마시러 가도 그 맛을 음미하고 생각한다.   다음엔 친구를 데려와야지.  아 이음식은 우리 엄니가 좋아하시겠구나.  여기 남편하고 오면 파이여!  하지만 부페는 내 생각을 멈추게 한다.  모양만 현란한 것이 생선맛도, 고기맛도 구분을 못하게 한다. 

  인간사에도 부페같은 인간이 있다.  차려놓은 것은 많은데 먹을게 없는 인간. 만나고 나면 후회스러운 인간.  알짜배기가 없는 인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부페같은 사람을 원한다.  운동도 잘하고 외모도 반반하고, 학식도 잘갖추고, 노래도 잘하고, 돈도 많고 등등.   아참! 그러고 보니 나도 내 자식에게 그런 모양새를 원하고 있구나.  나의 참을 수 없는 모순이여.  결국은 나의 헛소리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