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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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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이야기[쫑 파티]


BY Suzy 2001-04-20

매달 월말쯤이면 내가 다니는 영어학원에서는 각반마다 "쫑 파티" 라는 걸 한다.

말이 좋아 "파티"지 사실은 수업 안 받고 수다떠는 날이다.
우리는 선생님과 함께 교실 밖으로 나가서 수업이외의 잡다한 얘기들을 하면서 한 달을 마감한다, 대부분 학원근처의 커피숍이 단골 파티 장? 이다.

아, 참 그리고 중요한 건 성적표를 받는다는 것이다.
한 달간의 수업결과물이다, 선생님에 따라서 그냥 지나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조목조목 지적한 성적표를 받는다.

거기에는 결석, 지각에서부터 발음, 억양, 구성, 표현력, 문법, 등등..... 수업참여도 까지 세세하게 지적한 다음, 다음단계로 올라갈 수 있는지의 여부를 담임의 권한으로 결정한다.
그리고 끝에다 한마디의 격려쯤은 손수 써주는 친절을 잊지 않는다.
"R과 L 발음이 많이 좋아졌군요, 계속 열심히 하세요" 하는 정도로...

나는 지금까지 딱 한번 낙제했으나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편이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오늘은 3월 쫑 파티 하는 날,
갈까말까 망설이다가 내 나름대로 John선생님께 꼭 하고싶은 말이 있어 참석했다.
그냥 넘어가려고도 했지만 나 아니면 누가 나서랴 싶어 총대를 메기로 했다.

이유는 교재였다, 3월 교재를 훑어본 후 나는 착잡함을 감출 수 없었다.
거기에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추한 모습들이 적나라한 표현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예를 들자면, 항상 술 취해 떠들어대는 한국인 룸메이트, 아마 난방비도 안 냈다지...
새벽까지 소란스런 거리소음, 거기에 가세해 거짓말과 협박으로 월급을 제때 안 주는 학원원장, 버벅대는 영어로 싸우자고 대드는 여직원, 외국인이 한국에서 직장을 옮길 때마다 일부러 외국을 경유해야하는 번거로움, 등등...John이 지방도시에서 겪은 일들이 장장 7 페이지에 걸쳐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코리안 오스트레일리언" 마크 강, 그가 호주에서 적응 못하고 여러 번 가출을 시도한 끝에 제대로 교육도 못 받고 한국에 와서도 직장을 못 구한 채 자아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얘기.... 우리 나라 실업계고등학교 학생들의 암담한 현실...그들은 수업에는 관심 없고 깡패처럼 싸움질이나 하고 군대 가는 날만 기다린다나...?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갔다와서도 취직을 못하는 지방대학 출신의 젊은이...등등...등등.

불과 일 이년 사이에 한국사회의 구석구석을 꿰뚫어본 죤의 통찰력에 우선 놀랐다.
그리고 그의 서술이 사실일지도 모르는 내 안타까운 조국 "코리아"가 가슴 아팠다.

우리는 한 달간 그의 교재로 공부했다, 그의 질문대로 우리들의 의견을 피력하고 주어진 문제에 대해서 토론했다, 자연히 기죽고 변명하기에 바쁘다.
그리고 그는 항상 묻는다, "이게 정말로 있을 수 있는 일일까요?"
결석하는 학생들이 다른때보다 유난히 많았다.


"선생님, 우리가 공부했던 교재에 대해서 나에게 물어봐 주시겠어요?"
나는 쫑파티장에서 죤에게 요구했다.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낼 수도 있지만 건방지게 선생님을 비판한다는 무례를 면하려고 그에게 먼저 물어볼 기회를 주었다.

"예? 뭐라고요?" 죤은 못 알아들은 척 되묻는다, 얘기하기 싫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내가 물러날소냐! 같은 말을 천천히 또박또박 반복했다,
그리고 한마디 못박는 일도 잊지 않았다. "지금 내가 틀린 영어를 하고 있나요?"
그는 "아니에요, 미안합니다" 를 연발하더니 마지못해 내 요구대로 물었다.
"이번 달 내 교재가 어땠습니까?"

이제 내가 하고싶은 말을 할 차례다, 한 달 내내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나는 선생님께서 내 말을 비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개인적인 의견으로 이해하리라 믿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겠습니다" 순서대로 깍듯이 인사 치레부터 했다.

"선생님이 겪으신 일에 대해서는 나도 유감입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나 선과 악은 항상 같은 비례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닐 것이라는 얘기죠"

나는 따듯한 우유를 마시며 조용한 목소리로 천천히 계속했다, 그에게 책잡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입장에서 내 나라를 보는 사람을 만나 좀 더 객관적인 안목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쓴 글은 당신의 안목일 뿐입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재로는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한 그루의 나무를 보고 숲 전체를 평가하는 우를 범하는것은 아닌지요?"

그의 얼굴 표정이 당황한다,
"학생들에게 토론주제를 제공하려는 소설일 뿐이라니 까요....."

"소설이라고 다 합리화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 글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가령, 한국을 모르는 사람들이 읽었을 경우, 그네들은 한국인 모두가 그런 사람들인 줄 알 테니까요, 그들의 편견을 어떻게 책임지겠습니까? 그리고 당신 글이 소설이 아닌 것은 당신도 나도 알지 않소?"

죤은 표정이 굳어 듣기만 했고 나는 얘기도중에 나도 모르게 흥분했다.

"누군가 당신에 대한 불평을 글로 써서 교재로 사용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러 학생들이 당신을 도마 위에 놓고 토론하며 난도질할 것이요.
당신은 억울해도 말할 기회가 없으니 꼼짝없이 나쁜 선생으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요.
그리고 글쓴이는 당신처럼 자신을 이렇게 표현하겠죠,
__John의 무례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까지 위엄을 잃지 않으려 침착했다--"
나는 그의 글 한문장을 그대로 인용했다.

John은 더 이상 태연함을 유지 못 하고 옆의 학생에게 구원을 청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그 학생은 난처한듯 웃으며 나만 쳐다 보았다.

나는 목소리의 톤을 약간 더 높였다.

"법정 재판에서도 원고와 피고가 같은 권리로 스스로를 진술하는데 이런 일방적인 글로 학생들을 가르치다니... 나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의 글도 함께 올리면 어떠하실 지...?
외국인 선생들에 대한 한국학생들의 불평도 적지는 않지만 그런 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거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요."

죤이 냉소적으로 비꼬았다,
"당신은 애국적인 주인이니 그런 요구를 할 권리가 있겠군요"

내가 상냥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은 손님이니 예의를 지키셔야죠!"

(나는 사실 그렇게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렇게 화가나면 생각도 못했던 어휘력으로 막히지도 않고 퍼 붇는다, 왼일이니.....???)

이제 그는 서둘러 일어나고 싶어한다, 시계를 보니 5분쯤 더 남았다.
"선생님, 5분 남았어요" 그는 할 수없이 다시 주저앉으며 변명했다.

"전에도 어떤 학생이 이런 항의를 했었는데 내가 소설이라고 했더니 이해했어요"

"그럼 나도 내가 만난 못된 외국인들 얘기를 당신 원고분량만큼 써 올 테니 선생님 교재에 공평하게 같이 실어 주시겠어요? 소설이라고 하면 되잖아요." 나도 지지 않았다.

"아, 또 있어요! 언젠가 당신이 다른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할때 "그 여자 몹시도 버벅대더니..." 하고 내 영어실력을 흉보시겠지요? 하지만 나의"마더 텅"은 선생님의 영어보다 더 잘 할수 있답니다. 그리고 내 영어실력도 선생님의 한국어 실력보다 월등하다고 믿어요."

그는 절대로 나를 흉보는일은 없을거라고 극구 손을 내 저었지만 나는 안 믿는다고 대답했다.

못된 수지 아줌마!
결국은 그가 교재를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참담한 표정으로 말했을 때 놓아줬다.

나는 친절한 미소로 양해를 구한 후 한마디 덧붙였다,
"우리는 누구도 절대 옳거나 그르지 않습니다, 다만 서로가 다를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평생 이 쫑 파티를 잊지 않으리라!
그러나 잊지말라, 어디든 사람사는 이치는 같은 법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