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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어머님이 계셨다........


BY 야다 2002-04-12

저녁을 먹었다.
몇 안되는 설겆이를 하고는 물기 뺀 쓰레기를 
가지고 마당으로 나섰다.
10시를 향해 시계초침이 움직이고 있었음으로
밖은 짙은 어둠으로 감싸여 있었다.
육중한 대문 틈으로 시꺼먼 그리자가 아른 거렸다.
누굴까? 살며시 문을 열었다.
그곳에 누가 있었던가....

어머님이 대문앞 차(車)사이에 주저앉아 계셨다.
땅바닥엔 흙장미 두다발이 그냥 그대로 벌거벗긴체
그렇게 덩그마니....

"어머니?...어머니...무슨 일이예요. 일어나셔요...."
난 어머니를 부축해 일으키고는 땅바닥에 그렇게
나뒹굴고 있는 장미다발을 한손에 쥐었다.
가시가 매섭게 살을 빠고 들었다.
어머님은 이걸 어찌 들고 오셨지?....

"엉? 너구나.. 아무일도 아니다....
 야~ 너 이거 장미 한다발 가져라... 근데 나는 왜
 이렇게 갈때가 한군데도 없는 거냐?....야~ 장미
 이쁘지? 너 가져 한다발!....."

술냄새가 많이 났다.
어머닌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며느리앞에서 눈물이라니...맘이 아팠다.

어머니는 내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오르면서까지도
계속 "나는 왜 갈때가 없을까? 인생이 허무하구나..."
그리고는 옥상으로 올라 가신다.
한강이 바라다보이는 옥상에 어머님을 홀로 두고
불이나케 내려와 맥주2병과 땅콩이며 마른안주를
준비하여 애비더러 옥상으로의 발길을 재촉했다.
아무래도 며느리는 어렵지 않겠는가....
이럴때 출가한 시누이라도 있었담 어머님은 휠씬
위안이 되련만......아가씨가 생각 났다...
.
.
.
우리 어머님은 아버님과 몸만 달랑 상경하시어 지금의
여유란걸 축척하셨다.
안해본일 없이 고생하시어 3남매 키우고 그 가난이
몸에 습관처럼 베어버려 사치란건 모르고 사시는 분이다.

새벽이면 남들이 내놓은 헐거운 쓰레기봉투에 우리 쓰레기
넣기 바쁘고, 공병 하나하나 모아 매주 수요일이면 딸따리
에 바리바리 실어 몇푼 건지고, 명절때면 경동시장 마다않고
다리품 팔아 몇푼 건지고, 세든 사람들 이사가고 나면 도배
비 아까와 손수 풀칠하여 도배까지 하시는 분이다.
어디한번 외출하여 3,000짜리 밥한끼 먹을라치면 자식얼굴
아른거려 그저 빈속으로 달려 집으로 돌아오시는 어머님.
그런것들이 다 무엇이겠는가....자식위함임을 우리 자식
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런지.....

첨엔 나또한 어머님의 그런 바지런함이 짜증이 나 싫었다.
지금은 그저 나또한 어머님의 근검절약에 동참중이다.

이제 환갑을 넘으신 감수성 예민한 어머님이시다.
결혼 몇년동안은 서로의 성격을 몰라 무지도 힘들었던
어머님!
가끔은 시할아버님에 작은아들네 아이들이며 살림까지
도맞아주시면서도 그들에게 고맙단 말 한마디 듣지도
못한체 헌신만을 강요 당하시는 우리 어머님!
너무 자식밖에 모른다며 아버님으로 부터 핀잔을 늘상
받으시는 어머님!

어머님의 눈물이 오늘뿐만은 아니지만 결혼 10차의
지금의 나로서는 그저 같은 여자로서 가슴이 아려온다.

무엇이 강하게만 살아온 당신의 얼굴에 눈물이 되어 
흐르게 할였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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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모쪼록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그저 아버님과 건강히 회로하시는 것이 저희 소망이며
그리 사시여 맏자식 어엿하게 사는 것도 보시고,
아버님과 함께 여행 또한 즐기실수 있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