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의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이번에도 찬웅이 얘길 올립니다.
(저의 독자는 거의 가족입니다. 워낙 대식구라서... 아는 사람 다 안답니다 *^^*)
오늘 아침, 찬웅이가 밥을 먹으며 "엄마, 왜 자꾸 된장국만 줘요? 냉장고에 두부가 너무 많아요?"라며 오리처럼 입을 쭉 내밀고는 새벽별처럼 초롱초롱한 눈을 살짝 흘깁니다 .
며칠 전부터 상헌(3살짜리 둘째아이)이의 아토피가 심해져서 과자나 인스턴트 음식을 자제시키느라 한 동안 된장국과 뿌리 채소로 반찬을 만들어 먹였더니... 쬐끄만 자기도 입이라고 똑같은 음식 먹기가 지겨웠나 봅니다.
'짜슥...주는 대로 묵지.. 쫄쫄 굼기뿌까' 하고 중얼대고 있자니.... 찬웅이가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찬웅이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겠지요.
"우리 엄마 맞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두 놈을 데리고 슈퍼에 갔습니다.
"찬웅이가 먹고 싶은 것 골라 가지고 와라"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와, 신난다!"하며 달려 가더니 잠시 후 짧은 양팔 가득히 '햄, 쵸콜릿, 카라멜, 쁘띠첼, 아이스크림'을 안고 낑낑대며 오더라구요. 제 딴엔 동생에게도 나눠줘야겠다고 생각을 했는지 뒤 따라 오는 상헌이의 양손에는 막대 사탕 두 개가 들려 있었고 두 놈의 얼굴에는 아침햇살처럼 환한 웃음이 번져 났습니다.
'저 많은 것들을 어떻게 다 챙겼을까?' 싶어 잠시 의아했지만 두 놈이서 뒤뚱거리며 걸어오는 모습이 마치 귀여운 아기오리 형제 같아서 웃음이 먼저 나오고 말았어요. 그래서 우리 母子는 슈퍼 한 구석 빈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얼굴 마주보며 키득키득 대었답니다.
그 때의 우리는, 물가에 소풍 나온 오리가족이었다는 걸 남들은 몰랐겠죠?
슈퍼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이웃 아주머니가 찬웅이를 보고 한 마디 하셨어요.
"야, 찬웅이 오늘 멋쟁이네?"
찬웅이는 기분이 좋은지 씩 웃습니다. 곁에 있던 제가 한 마디 거듭니다.
"찬웅아, 어른이 말씀하실 땐 대답해야지?"
이웃 아주머니는 웃으며 또 말씀하십니다.
"찬웅아, 예쁜 잠바 입었구나. 좋겠네..."
찬웅이가 이번에는 예의바르게 큰 소리로 대답합니다.
"예. 엄마가 사 주셨어요. 이거 억수로 비싼거에요"
^^; '에고. 무안해라'
참고로, 우리 가족은 마음이 급하거나 성질이 날 때나 기분이 아주 좋을 때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사투리가 불쑥 혹은 마구잡이로 튀어 나온답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항상 사투리를 쓰는 거지요...
근래, 찬웅이가 '비싸다'는 말을 문맥에 상관없이 마구 쓰긴 했지만 이렇게 결정타를 날릴 줄은 몰랐습니다. 며칠 전에 "엄마, 찬웅이가 비싸요? 상헌이가 비싸요?"하고 물을 때만 해도 그저 재미있고 귀엽기만 했는데...
저녁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로 상을 차렸어요.
콩밥대신 쌀밥을, 된장국 대신 무국을, 호박대신 햄을...
이 녀석들 오랫만에 입이 함박만큼 벌어지더군요. 그리고 찬웅이는 형이라고 동생에게 한 마디 덧붙입니다.
"상헌아! 단디 무라이" (탈나지 않게 잘 먹으라는 뜻- 찬웅이 할머니께 배웠음)
저에게도 잊지 않고 인사합니다.
"비싼 반찬이니까 엄마도 단디 무라이!"
찬웅이 말에 난 바로 체할 뻔 했습니다.^^
200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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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가고 싶다
안도현
해 뜨는 아침에는
나도 맑은 사람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밤새 퍼부어대던 눈발이 그치고
오늘은 하늘도 맨 처음인 듯 열리는 날
나도 금방 헹구어낸 햇살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창가게 오랜만에 볕이 들거든
긴 밤 어둠 속에서 캄캄하게 띄워 보낸
내 그리움으로 여겨다오
사랑에 빠진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그리움 하나로 무장무장
가슴이 타는 사람 아니냐
진정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만큼
새날이 밝아오고
진정 내가 그대 가까이 다가가는 만큼
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마침내 그대와 내가
하나되어 우리라고 이름 부를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봄이 올 때까지는 저 들에 쌓인 눈이
우리를 덮어줄 따뜻한 이불이라는 것도
나는 잊지 않으리
사랑이란
또 다른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지 않고
그리고 혼자서는 가지 않는 것
지치고 상처입고 구멍난 삶을 데리고
그대에게 가고 싶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할 신천지
우리가 더불어 세워야 할 나라
사시사철 푸른 풀밭으로 불러다오
나도 한마리 튼튼하고 착한 양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