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만 되면 시퍼런 불빛이 판을 치는 납량특집물들......
하지만 내가 겪은 그해 여름 그 이야기만 할까.
결혼식 날을 며칠 앞둔 어느날 시어머니 되실 분이 화단 턱에 걸려 넘어지셨단다.
암만 생각해도 재수 없는 며느리가 들어오는 징조인가보다고 어머닌 그날로 안방 껌딱지가 되어 시중을 들게 한다더니 끝내 결혼식장마저 나타나지 않은 채 벼르고 벼르던 시집살이를 시작 하셨다.
대수롭지 않은 타박상임에도 불구하고 두어달을 문밖 출입 마다하고 받아 잡수기만 하셨다.
유난히 큰 눈과 살집이 좋아 후덕스럽게만 보이던 얼굴이 종내는 비만으로 달덩이 그 자체였다.
햇빛을 보지 않아 창백해진 얼굴과 크나큰 눈으론 온갓 보양식만을 읊으며 대령하기만을 기다리는 황후의 모습,
그날도 마찬가지로 어지럼증이 있으니 소의 지라를 구해 달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난 어느새 생전 처음 늘어진 인절미 같은 지라를 눕혀 놓고 썰고 있었다.
아흔아홉번째 인간의 간을 먹거나 소의 간을 먹거나
아무튼 제 정신 아닌 구미호 처럼 시뻘건 지라를 썰고 있는 나는 더 이상 그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여름날의 지루한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이윽고 지라살점들이 담긴 접시를 들여보내고
안방은 조용하기만 했다.
"아-우~~~~!"
목을 길게뺀 늙은 여우가 행복에 겨운 소리라도 지를 것 같은 적막감이 오히려 내 발목을 잡았다.
안방에다 귀를 꽂고 나른 한 오후를 가시처럼 곧추 세우고 마루끝에 앉아 잠시 꾸뻑 졸음에 빠져들고 있을 때 아니나 다를까
"아-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비몽사몽 비틀거린 채 안방 문을 여는 순간
불쑥 내미는 피덩어리 같은 지라
어둑한 방안
부릅 뜬 커다란 두눈의 광채
청백한 얼굴을 더욱 창백하게 만드는
양 입가에 흘러내리는 시뻘건 생-피
"너도 한점 먹을래?"
역시 황후다운 인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