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장례식 주문에 답례품을 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33

화천 순개비


BY 오솔길 2003-08-05

화천 순개비 !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그는 화천 순개비로 불렸는데, 고향 옆 마을 산동네에 화천이라는 마을이 있는 걸로 보아서 그 마을 사람이었던 것 같고, 그의 성격이 순하기에 순개비로 불렀으리라고 나름대로 짐작을 해 보았다.



화천 순개비!

우리 동네 아이들은 일년 내내 까만 오버(외투)에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다녔던 그가 나타나면 누군가가 그를 향해 ‘화천 순개비’라 놀리며 돌을 던졌고, 그는 늘상 같은 표정으로 (난 그가 웃는 모습도, 그렇다고 울거나 찡그린 표정도 본 적이 없다.)

아무 표정변화도 없이 돌을 맞아가며 자기가 가던 길을 걸어갈 뿐이었다.

뒤따라가며 돌팔매질 해대던 아이들이 제풀에 지칠 뿐~




그의 중심 지역은 우리 마을 솔밭 옆에 있던 닥나무를 삶던 흙 구덩이었고, 행동반경은 옆 동네의 서너개 마을이었다.




요즘 언어를 굳이 빌자면 노숙자였던 화천 순개비!

하지만 요즘 노숙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성격이었다.

마을 어른들이 일손이 필요하여 그의 손을 빌리는 경우는 거의 다 더럽고 힘든 일이었다.

재래식 변소를 퍼내거나 냄새나는 거름을 지게로 져 나르거나, 외양간 청소를 하거나 해서 댓가로 밥 한 그릇 얻어먹으면 그의 하루 일과는 끝이었고, 나머지 시간들은 이웃 동네를 구부정한 자세로 걸으며 유랑하는 것이 전부였다.

한 곳에 머물러 있질 못하는 그의 유랑벽 탓에 머슴으로 두려고도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애를 썼지만 번번이 실패했다고 들었다.



거지이면서도 거지로 불려지지는 않았고, 화천 순개비로 불렸던 것에는 그가 절대로 공짜 밥은 먹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그만의 삶의 철학이자 그를 고상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보아지기도 한다. 말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늘 무언가 깊은 생각 속에 갇혀 사는 모습이 철학자 같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화천 순개비는 그렇게 평생을 살다가 우리 마을에서 잠자듯이 조용히 자연사로 이 세상을 떠나갔고, 마을에서는 그를 화장하여 장례까지 치러 주며 고귀한 한 인간의 삶을 마무리해주었다.




요즘 자살이 유행병처럼 번지는 듯하여 화천 순개비의 삶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사회의 외톨이였을 그가 혼자 안았을 외로움과 괴로움의 무게는 어느 정도였을까?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자살충동을 느끼지 않았을까?

대부분의 자살은 사회의 타살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개인과 사회의 연결고리가 끊어

 

지지 않기를 화천 순개비를 통해 염원해 보게 됨은 무슨 연유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