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토요일까지 포함하여 9일간의 긴 휴가를 얻었다.
가족끼리 오븟하게 내가 그토록 그리던 섬에 가려고
한달전에 숙소예악까지 마쳤는데
뜻밖에 남편에게 바쁜 일이 생겨서 어쩔수 없이 예약을 취소하면서도
나는 내내 마음속에 아쉬움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오랜만에 여동생네를 가기로 마음먹고는
편안한 차림으로 기차에 올랐다.
자랄때 그렇게도 다투곤 했었던 그 아이는
이젠 어엿한 아이의 엄마, 그리고 주부로, 아내로서의 삶의 모양새는
어느새 나와 많이도 닮아 있었다.
변한게 있다면 그렇게도 욕심이 많던 아이에서
주변의 다른 이들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씀씀이가 고와 보이는
생활인으로 살아가고 있음과
조금씩 나이가 느껴지는 살아온 만큼의 세월의 흔적들이
우리 자매를 더욱 더 가깝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4살 박이 조카는 이제 겨우 배우기 시작한 말솜씨로
우리의 아이들을 누나라 부르며
알아듣기도 힘든 말들을 하느라 무척이나 달떠 보였다.
서로 다른 도시로 시집을 가
이제는 저마다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살기에 바쁜 우리는
일년에 한 두번 많으면 서너번을 그렇게 아쉬운 이별을 해 가며 만나곤 한다.
난 제일 맏딸이기에 언니가 없어서
늘 언니가 있는 친구가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동생은 말로는 다 하지 않아도 언니가 한없이 편안하고, 반갑고 그런지
기분이 다분히 좋아 보여 나 역시도 덩달아 밝은 기분으로
며칠을 보낼수가 있었다.
푸르른 숲속의 초록잎사귀를 이불삼아 한가로운 오후나절을
숲속에 누워 도란도란 거리던 꿈결같은 시간의 조각들도
내겐 그저 소중하기만 했다.
시리고 맑은 계곡물은 아이들의 눈망울을 반짝이게 만들며
살아가는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그 순간 만큼은
잠시 모든 걸 잊어 볼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다.
가을이 오면 그 아이는 알뜰 살뜰 살아온 덕택인지
아담한 새 아파트를 장만하여 이사를 한다고 했다.
언니인 나도 이렇게 기쁜데 동생의 마음은 얼마나 설레일까 ...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흐믓하다.
예정대로라면
그 시간 우리 가족은 아름다운 섬에서 오븟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테지만,
동생과 이렇게 마주 앉아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여름밤도
나름대로는 더위를 잊기에 충분한 것 같았다.
어린 조카들에게 뭐 하나라도 더 해 먹이고 싶어서
구슬땀을 흘리는 이모의 모습을 보이는 동생이 왜 그렇게도 이뻐 보이던지 ...
혈육의 정이란 게 이런 것인가 새삼 느껴지는 시간들이었다.
휴가에서 돌아오는 길
마침 동생의 시댁이 우리집과 같은 도시에 있는지라 함께 올라오게 되었는데,
내려갈 때 동생에게 줄 김치를 넉넉히 담가볼 수 있는 여유로움에
그래도 행복한 휴가였던 것 같다.
이제 내일이면 동생은 다시 좁은 집에서 밖에 나가 놀자며 손을 잡아 끄는
네살박이 조카와의 힘겨운 시름하는 하루로 돌아갈 것이며,
나는 또 20년을 함께 한 나의 일터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아쉬운 이별을 하며 나도 모르게 눈가에 고여오는 물기같은 걸 느끼며
지금 이 자리에서 누리는 이만큼의 행복에 감사해야 할 꺼라며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듯 우리는 헤어졌다.
동생과 난 우리의 아이들이 커가는 걸 바라보며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가 있어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 마저 비슷한 듯 하다.
처음 계획대로 진행된 휴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는 보람 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수가 있었으니
새롭게 힘을 내어 다시 일터로 돌아 가야 하리.
출근하기 이틀전에 돌아온 나의 보금자리에서 지친 화분에 물을 뿌려 주고,
어지러운 냉동실 정리를 말끔히 해 두고 나니
이제서야 나의 자리로 돌아온 듯 산뜻한 기분이 된다.
내일이면 아마도 난 새벽잠을 설친채
평소보다 일찍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가 있겠지...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나의 일터로 힘차게 달려가고 있을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