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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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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휴가기<친정 가는길>


BY 도영 2003-08-01

별로 친하지 않은 내 친정 아버지지만 자식에 의무로 휴가 마지막 날인 오늘 내고향 원주로 차머리를 돌렸다.

세 딸들이 이미 강원도 땅에서 하룻밤을 잔줄 모르는 아버지에게 여동생이 전화를 걸었다

집에 계시지 않으면  소초 농장에 계실거라며 아버지의 수양딸과 같이 하는 농장으로 전화를 돌리니 그럼 그렇지 거기 계시다네.

 

친정 아버지.

나는 언제부턴가 친정 아버지 한테 늘 도전장을 내민 딸이 였다.

아마도 내가 결혼 하고 내아이들이 훌쩍자라면서 내나이 삼십 고개를 넘을 즈음 부터

친정 아버지 속을 긁고 오곤 했다.

 

친정 아버지는 6년전쯤 돌아가신 엄마의 애간장을 녹이다 엄마는 오랜 병마에

세상을 접으시고 6년째 연세 70 중반인 나이에 홀로 끓여 잡수면서 친정에서 살고 계신다

부모 마음을 알려면 내가 부모 되어봐야 알거란 말이 내게는 적용 조차가 안되는 말이 였다

딸들에겐 별로 배려를 하지 않는 분이 셨기에

딸들에겐 별루 살갑지 않은 아버지 였기에

 

나는 내 자식이 커가면서 아버지를 더욱더  이해 할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훤칠한 키에 잘생긴 인물이 훤한 노인네다

게다가 50줄에 배운 아버지의 춤솜씨에 주위에는 여자들이 한 두명 씩은 서성 거렸다.

그런 이유로 여자인 엄마는 마음고생에 끙끙 앓다가 노년에 환갑을 조금 연세에 삶을 포기 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여자들을 알기까지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그런 이유로 마음의병을 앓았다는것을 알았을 정도로

내 엄마는 딸인 우리들에게도 내색을 안하셨다

 

늘 자신보다 월등한 어머니를 평생를 지지누르고 살다보니  어린 시절 엄마의 표정은 늘 어두운 그림자로 드리워진 기억 뿐이였다.

아버지는 아들 삼형제는 금쪽 같이 여기면서 도데체가 딸은 아들들의 발가락에 때택도 안치는 분이셨다.

나이들고 내 아이들을 키우고 보니 아버지의 심한 편견에 내가 반기도 들었지만

보다 중요 한것은 엄마의 죽음이 아버지 탓이라고 생각 했기에

엄마 세상 버리시고 삼년여를 친정에 발길을 끊어었다

삼년만에 옆지기에 중재로 남편에 손에 이끌려 친정 집앞에 들어 서니.

삼년만에 뵙는 아버지는 삼년의 세월 만큼 늙으신 모습으로

나..처녀적 심으놓은 집앞에 은행 나무 아래서 몆년만에 오는 딸을 낡은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계셨다.

3년만에 보는 뒤늦게 도전장을 내민 중간딸인 나와 아버지는 아버지의 막국수 대접으로

말문이 트였지만 내말 한마디한마디에 가시가 돋힌말들만 쏟아져 나왓었다.

엄마를 보낸 아버지는 그 펄펄 날던 성질은 어데 갔는지

가시돋힌 딸에 말에 그전 같음 어릴적 나같음 귀통배기 날아왓을텐데

아버지는 딸에게 이미 밀리고 계셨다.

그리고 작년에 잠간 뵙고 올해 뵙는 아버지를 휴가 마지막 날에 찾아 가는 거였으니..

원주로 향하는 차안에서 세딸은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시는 농장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세딸을 기다리건만  세딸은 여기저기 들려 된장을 사러 간다네 하며  여기저기 기웃 거리며 느긋하니 바쁜게 없었으니..

아버지가 세딸을 기다리는 모습이 웬지 나는 통쾌감 마져도 들었기에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길이 바쁘거나 서둘러 갈 이유를 못느꼈다.

 

그만큼 아버지는 아들딸 차별이 심하셨다.

아버지의 아들 딸 차별은 며느리를 보고 절정에 다다르고

급기야 친손주 외손주 차별은 나를 폭팔 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두 아들은 지금도 외할아버지를 외면 한다

어릴적 천대 받은 외가집에서의 차별 대우에 외할아버지에대한 궁금증도 관심도 없다고 잘라 말하곤 한다 우리 두 아들들이..

 

소초 농장 ..

개 60여마리 토종닭...옥수수밭 고추밭 고구마 밭 을 일구며 소일 하시는 아버지는

세딸들을 기다리고 계셨는지  언덕위에서 들어 서는 딸의 흰차를 내려다 보고 계신 거였다.

늘 나는 아버지와 첫인사는 생략 한다.

언니와 여동생은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인사를 하는데 나는 가자마자 아버지가 누워계신 자리에 벌렁 누워 선풍기를 틀어 제끼며 가만히 있는 여름 날씨만 탓을 했다.

 

그러다 나와 아버지는 눈이 마주치고 슬며시 그때서야 또 말문이 어렵게 트인다...ㅎㅎㅎㅎ

아버지의 희한 성격은은 늘 첫날에 불거져 나온다.

늘 상봉 첫째날에는 툴툴 거리며 딸들에게 면박을 주면서 딸들에 기분을 상하게 하면서

이튼날에는 나약한 모습에 하루 더 자고 가라며 붙드시니..

그 이상한 성격의 근원지를 모르겠다

 

이번에도 첫째날 나와 아버지는 한바탕 붙었다

원주 사는 막내 남동생이 집을 샀다 해서 누나들이 십시일반 돈봉투를 만들어 방문 하기로 했으니 아버지도 같이 가자 자고 했다

 

그럼 조용히 따라 오심 별 문제 될것 앖겟지만 아버지는 마음에도 없이 딸들을 나무라신다.

아버지 특유의말투 내가 늘 휙 돌아버리는 정내미 떨어지는 말투로

"흥!!돈은 왜 갓다조..!!!""

별거 아닌걸 트집이다...

꾹 참았다 월래 스타일이 저러시니 늙으마게 홀애비로 사시지..하면서 참았다.

 

남동생 집에서 차한잔 마시고 남동생이 보리밥 사준다 하니 저녁은 나가 먹자고 한게 화근이였다.

""돈도 썩었다 석었지!!뭬한다고 우르르 나가묵노??흥!!허참..'"

금쪽 같은 아들이 딸들에게 밥 산다고 하니 아들의 호주머니에서 돈나갈 생각 하니

존경 시련 아버지가 열이 쳇나보다..하긴 그래야 우리 아버지 답지만서도..

아까전부터..툴툴 거리는 아버지의 말투에 어지간 혀면 참아야지 참아야지 내 나름대로 주문을 외우면서 인내햇건만...보리밥 한그릇에 나도  한계가 온것 같다,,,캬캬캬~~~

 

휴...한템포 감정을 늧추고 심호흡을 하고 내가 그랬다.

"아버지..올케 날도 더운데 시누 셋 저녁 준비하려고 힘들까봐 백반도 아닌 제일싼 보리밥 먹고싶다햇어요.아니.아버지..친정온 누나에게 동생이 보리밥 한그릇 대접하는게 모가 그래 화가 치밉니까??그게 다 사는거 아녀요?우리가 빈손으로 가나요?그렇게 아들 호주머니에서 나가는건 아깝고 딸들 돈은 당연한 건가요!!/""

중간딸인 내가 다다다닥  말문을 열고 대드니 사태가 심상치 않은지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시면서도""흥..흥""하시며 투덜 대신다..

언니와 여동생은 중간딸인 나와 아버지의 새중간에서 눈치만 살피며 나를 꼬집는다.

 

서울 여동생도 돈만주고 우리끼리 저녁 사먹자며 차나한잔 마시고 나오자며 아버지의 행동에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한다.

잠시후 아버지는 밭을 바라보며 당신의 행동에 후회를 하셨는지 누그러진 얼굴로

다시 방으로 오셔서  새초롬한 눈싹 내리깐 나와 두딸들에 눈치를 살핀다.

 

남동생에 집에 가서 저녁은 됏다하니 아버지가 밥먹으러 가자고 나서신다...ㅎㅎㅎ

아버지는 왜 마음에도없는 말을 하셔서 늘 딸들의 심기를 건드리실까.

아마도 이런 심리는 아닐까??

친정 엄마가 계시지 않은 친정에 모처럼 딸들이 왔는데 집에서 만든 음식이 아닌 싸구려 보리밥을 나가서 사먹는다고 하니 가슴이 메이신걸까??

그럴리도 그럴수도 없을 아버지지만 나는 한가닥 그럴수도 있을거라고 기대는 하는 나도 아버지의 아들딸 차별의 대한 변화를 무지무지 열망하고 갈망 하는가 부다,,,후~~

딸들의 깔깔 거림과 오가는 우스개 말들을 아버지는 안듣척 하면서 창문으로 얼굴을 돌리고

웃음을 참지 못하신다..달들에 재치스런 말들에 솔직히 웃음 어때서

옆으로 얼굴 돌리고 웃음 우리가 모를까..허참...

이튼날 휴가를 마치고 포항으로 떠나는 딸에게 하루 더자고 가라면서 어제의 툴툴거림은 사라지고 막상 멀리 있어 자주 못오는 세딸중에 제일 승질이 개떡같은 내게만

옥시기<옥수수>며 된장이먀 고추장이며 막장이며 청국장등등 내앞에 내미신다.

아마 어제 저녁일로 미안함인지 아님 작은 부성인지..

아님 저 승질 더런 딸이 보리밥건으로 인해 또 삼년 발길을 끓을까봐서인지.

내게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신다.

나역시도 나한테만 내미는 된장이며 고추장이며 그런것들앞에서 마음이 흐믓해지니..

웬지 내가 세딸중에서 제일 사랑받는 딸인것 같아서..,<얼마나 정에 굶주렸음..>어깨가 으슥 해졌다

 

친정 에서 차로 5분쯤에 있는 엄마의 산소를 찾았다.

살아 생전 그리 정을 안준 아버지는 산소 만큼은 항상 보아도 옆에 다른집 산소보다

다듬어져 있다.가까히 있어서 시간 많아서 산소나 돌보고고 사시는지

아니면 뒤늦은 엄마의 빈자리의 서러움을 느끼셨는지

산소만큼은 잡초 하나없이 다듬어 놓으신다

 

아버지는""나 죽으면 니 에미랑 합장 하그라..'"

그러자 막내딸이 바로 아버지의 말문을 막아 버린다.

""아고 아버지 엄마가 듣고 일어 나신다 .나셔 ..귀신되서도 부부가 싸울일 있어요 합장이라뇨?그건 안돼죠.안돼.""

펄쩍 뛰는 여동생에 말에 엄마의 무덤앞에서 우하하...웃어 버렷다.

 

엄마의 산소에 포항 사위 어렵다는 승진시험에 떠억..붙게 해달라는 나의 주문에.

아버지..""니그엄마가 해줄거여...다 들었어..해줄거여...""

 

""엄마...살아생전 나 엄마 하고 친했제?사위한테 해준게 없제?아들들한테만 잘햇제?누워만 계시지말고 9월 첫째주 사위 시험보는날 도와조야해?날짜 기억 해레이.아참 그리고 우리 큰아들 군대 가는데 고생 안하게 도와주고 들째 아들 올해 수능 잘쳐서 원하는대학 보내조..기억해 엄마??꼭..꼭..""

 

2년전 큰넘 대학 갈무렵에 엄마 산소 찾은날 아들의 합격 통보 받은날이라

이번에도 엄마에게 절을하며 비는 딸에게

아버지는  틀림없이 해준다며 안심 하라 하신다..

 

먼저 엄마의 산소를 뒤로하고 논두렁을 헤쳐 나오면서  목에까지 치밀어오는 눈물를 꺽꺽 참으며..눈물을 꿀꺽 삼키니 눈물이 바닷물 보다는 덜짜단 생각이 들었다.먼저 가신 엄마의 자리를 엄마의 냄새가 날아갈 까바 엄마가 쓰던 그릇들이며 이불들이며

모든 살림살이들이 아직도 그대로 보관 하고 있는 친정 아버지의 모습이 딸들에 가슴을 아려오게 한다

아버지를 뒤로 하고 떠나는 세딸..

룸미러로 멀어져가는 늙은 아버지의 쓸쓸하고 안타까운 시선//

"내년 이맘때 올거여?까만콩 가을에 오면 줄텐데..""

차라리 콩을 미끼로 그러지말고 내년까진 넘 멀지않나 보고싶어 우야누 가을에 또온나..하면 얼마나 좋을까..

""치치....먼저 나 준다는 쌀도 아들들 몽땅 주시고선..이번엔 꼭 저주세??아들주면 안돼요??""

 

다짐하는 포항딸에게 아버지는 진짜로 이번에는 내몫을 보관 해놓을거라면서 안심을 시킨다..

 

멀어지는 딸들에 차와 아버지의 간격이 멀이지는 순간 나는 되돌아 가서 하루 더자고 오고픈 갈등을 뿌리 쳐야만 햇다.

 

세 자매의 세번째의 휴가는 초장부터 끝까지 의견일치로 인해  완벽하게 성공을 거두고

고향의 토산품들을 잔뜩 싣고 중앙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니 그제서야

남편과 두아들 들이 지지고 뽁고 햇을 집안 살림이 은근히 걱정반 미안한 반 고마움 반으로

마음이 급해져   시속.140을 밟으며 집으로 향했다.

 

 

 

 

2003년 8월1일

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