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매우 바쁜 하루였습니다.
갑자기 생긴 은행일 때문에 바삐 집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은행은 월말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번호표를 뽑은 제게 보인 대기자수는
68이라는 남감한 숫자였습니다.
집에는 다른 날과 달리 어머님도 안계시고 아이들만 있는지라 바로 전날 아파트 앞동에서 도둑도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저로서는 왜 그런지 자꾸 맘이 불안해졌습니다.
다 큰 아이들인데도 늘 어머님께서 집을 지키셨던 것이 일상이었던 까닭인지 제겐 그런 호들갑스런 불안감이 생겼습니다.
더구나 집에 꼬마 손님이 오겠다고 한 약속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서 마음은 자꾸만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은 그리도 빨리 흐르는데 대기자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드디어 그 때부터 제게는 미워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인지 자리를 뜨지 않고 한참을 창구앞에 서서 일을 보고 계시는 한 아주머니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저는 순간적으로 그 아주머니가 이렇게 바쁠 때 하필이면 시간을 많이 소요하는 볼일을 보시는지 자꾸 속상한 맘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맘으로 애를 태우며 기다리고 있는데 작은 아이로부터 핸드폰이 걸려 왔습니다.
아이는 자꾸 울먹이는 목소리로 잠을 잘못 잤는지 목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며 엄마가 빨리 오기를 호소합니다.
저는 금방 갈거라고 안심시켰지만 스스로는 급한 맘에 그 전화 이후로는 맘이 점점 더 좁아지게 되었습니다.
가까스로 제 차례가 되어 창구앞에 갔더니 은행직원은 뭔가가 문제가 생겼다며 제게 다시 은행을 찾으라고 말해줍니다.
그순간 저는 갑자기 일을 만들어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남편이 순식간에 미워졌습니다.
물론 좀 더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면 결코 남편에 대한 미움을 가질 턱이 없는 사소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가지 일을 마무리 못한 제겐 이제 카드로 돈을 입금시키는 일만 남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제일 적게 서 있는 곳으로 가서 빨리 일을 마무리할 요량으로 구겨진 현금부터 잘 펴서 한번에 일을 마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다른 기기앞에 서 있던 사람들의 줄은 줄고 제 줄만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앞쪽을 보니 어떤 젊은 여자가 수표를 잔뜩 가지고 와서 그것을 한 장 한 장 수표입금부로 넣고 있었습니다.
얼핏 보아 수십장은 될듯한데 저말고도 기다리던 다른 분들의 짜증스런 표정에서 한결같이 그 여자에 대한 미움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의 목의 통증을 호소하는 두 번의 전화가 더 왔었고 저또한 한 치의 덜함도 없이 아니,그 이상의 미움으로 앞에 서서 시간을 지체하고 있는 한 여자를 원망스럽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제가 한마디를 하고 말았습니다.
\"저기,아직 시간이 많이 걸리세요? 궁금해서요.\"
비록 미안해하는듯한 말씨로 물어 보았지만 그 여자는 저의 원망을 담은 마음을 충분히 눈치챘는지,
아주 딱딱한 목소리로 \"다 되어가요!\"라며 냉정하게 잘라 말했습니다.
저도 언젠가 급한 일로 돈을 송금하고 있는데 뒤에서 자꾸 다그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에게 하기 싫은 양보를 하며 미워한 경험이 있었는데 이제 꼭 그 반대의 입장에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겨우 할 수 있는 일을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이는 텔레비젼을 보며 누워 있었고 더운 물로 찜질을 해주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렇게까지 저를 걱정시킬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 괜히 안절부절 못하게 만든 아이도 또 못마땅해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참으로 하찮은 일로 제가 사람을 미워한 적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피곤한 몸으로 버스를 탔을 때 저는 용감한 아줌마가 되어 곧 내릴 기색을 보이던 사람 앞에 종종걸음으로 가서 빈자리를 기다리는데
정작 제 앞에 앉은 사람은 내리지 않고 다른 자리의 사람들만 내리는 경우를 당하면 전 앞자리에 앉은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힘들게 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었을 때 저쪽 경로석의 빈자리는 그냥 지나치고 제 앞쪽으로 오신 노인분께 자리를 내어드리게 되었는데 그 분은 저에게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시면서 가벼운 눈인사조차 건네지 않으시니 전 자꾸 속상한 맘 생기면서 미운 맘을 갖게 됩니다.
물론 당연한 자리 내어드림이지만 옹졸한 저로서는 그렇게 참으로 쉽게 서운한 맘을 갖고 맙니다.
그런 가벼운 일상에서의 미움은 돌이켜 보면 참으로 많아 보입니다.
공중전화 앞에서 기다릴 때나,대형할인마트의 계산대 앞에서도 전 사람을 미워할 때가 많습니다.
엘리베이터 높은 층에 사시는 분들도 제게 별 이유도 없이 미움 받을 때가 많습니다.급하게 엘리베이터 기다릴 때 한없이 높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절 애태우기 때문입니다.
그렇듯이 마음이 바빠지면 전 그렇게 사람들을 미워하게 됩니다.느림의 미덕이 왜 필요한지도 알 것 같습니다.
다른 때는 느려터진 사람인 저는 막상 제가 바쁘거나 애가 타면 꼭 저같은 사람을 미워하게 되니 스스로에게 비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사실 제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은 자기 편의대로 아주 가볍게 사람을 미워하는 바로 저같은 사람이고 가장 미운 것 또한 저의 참을 수 없는 가벼운 미움들입니다.
타인을 배려한다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오고 있었고 또 그렇게 타인과 물처럼 섞여서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의외로 바쁜 하루를 겪으면서 절대 그렇지 못한 저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큰 미움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렇게 작게 작게 갖게 된 미움도 어떤 기운이 되어 세상을 떠돌아서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부메랑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그런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