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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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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모피코트


BY 고구마74 2003-07-29

십여년전 일이다. 마흔을 훌쩍 넘겨 맞이하는 엄마의 생일날 아빠와 생일 선물을 사러 간다며 나갔던 엄마는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한손에는 큼지막한 쇼핑백을 들고 들어오셨다.

곧이어 꺼내놓은건 놀랍게도 엄마에게 전혀 어울릴것 같지않은 모피코트였다. 그것을 입어보시며 거울앞에서 좋아 어쩔줄 몰라하는 엄마 모습이 어린 마음에 왜그리 실망스럽던지...

그 시절 내게 모피코트는 사치와 허영의 상징처럼 느껴졌었다. 더구나 집에서 살림만 하는 전업 주부인 엄마가 과연 그 코트를 얼마나 입겠다고... 또 평소 검소하시던 아빠가 엄마에게 모피 코트를 사주셨다는것도 이해가 안가긴 마찬가지였다.

딸에게 기분 좋은 한마디 들을려는듯 어떠냐고 묻는 엄마에게 따뜻한 말한마디커녕 우리나라같이 춥지도 않은 나라에서 굳이 불쌍한 동물 죽여가며 그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다닐 필요가 있냐며 입바른 소리로 엄마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긴 그때당시 자칭 동물 애호가였던 난 그 흔한 가죽 재킷하나 입지 않았다.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었단 이유로...

엄만 딸의 너무나도 차가운 이 말 한마디에 상처를 입은듯 볼멘 소리를 하셨다. 난 충분히 이 옷을 입을 자격이 있고 그래서 니 아빠가 사주신거다.

첨엔 그 말뜻이 뭔지 몰랐다. 도대체 비싼 모피코트를 입을 자격이란게 뭔지 말이다. 그후로 역시나 엄만 내 생각대로 그 옷을 몇번 입지 못하셨다. 엄마에게 외출할 일이란 주말마다 교회가는 거랑 시장 가는거 어쩌다 시골 외갓집에 갔다오시는게 전부였다. 근대 교회에 모피코트를 걸치고 간다는건 그때당시만 해도 지방도시인 이곳에선 조금은 낮부끄러운 일이였다.

경건하게 예배를 드리려 오는 교회에 모피코트를 걸치고 온다는건 마치 돈자랑 하는것처럼 너무나 속물스런 행동이였기 때문이다. 그타고 백화점도 아닌 시장에 가면서 모피코트를 입었다간 좁은 시장길에 금새 옷이 더러워져 세탁비가 만만치않게 드니 그것도 힘들었다.

시골 외가집에 갈때도 힘들게 농사짓는 외삼촌 내외와 근처에 살고 있는 이모들앞에 그나마 도시 사는 동생이 모피 코트를 걸치고 나타난다는건 그들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졌었기에 그나마도 엄마는 입지 못하셨다.

결국 모피코트는 안방벽에 고이 걸린체 몇번 엄마에게 입힌걸 끝으로 본연의 임무를 다해야했다.

그렇게 몇년이 흘렀다. 마침 IMF로 온 나라가 힘들때에 둘째 이모의 환갑이 돌아왔다. 엄마는 그전부터 이모에게 신세를 많이 지고 있었다. 엄마가 아파서 힘들때 온갖 좋다는 약 구해서 먹여가며 엄마의 병을 고쳐주셨던 분이였다. 그외에도 정 많은 이모는 우리가족에겐 정말 은인과도 같은 분이셨다. 엄마는 언젠가 이모에게 언니 환갑때 꼭 모피코트를 사주겠다고 말한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IMF로 힘들때 몇백만원 하는 코트의 값은 정말 만만한게 아니였다.

엄만 결국 약속을 못지키게 되었다며 무척이나 가슴 아파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모가 모처럼만에 우리집에 다녀가신뒤 몇년을 안방 벽에 걸려 엄마로 하여금 뿌듯함을 느끼게했던 그 모피코트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히 여겨 엄마에게 물었더니 이모의 환갑 선물로 줬다는거다.

새로 사드리진 못하고 아무리해도 그냥 지나기 너무 마음아팠는데 마침 이모가 집에 온다는 말을 듣고 깨끗히 세탁해 두었다가 자초지종 말하고 선물로 드렸다는 거다. 물론 이모는 농사짓는 사람이 이런걸 입을 일이 뭐가 있냐고 하면서 극구 사양했지만 끈질긴 엄마의 설득에 결국 받아가셨구.

그뒤로도 엄마는 어려워진 가정 살림에 조금씩 엄마가 보물처럼 여기던것들을 처분하기 시작했다. 그나마도 얼마 갖고 있지도 않던 엄마의 폐물들이 하나둘 보이지 않더니 어느새 조그만 실반지 하나도 엄마손엔 껴있지 않게 되었다. 엄마는 그렇게 당신이 보물처럼 여겨지던 것들을 하나씩 처분하면서 아빠에게 언젠간 꼭 더 좋은거 사줘야한다며 투정아닌 투정으로 당신의 서운한 마음을 달래셨다.

그뒤 몇년이 흘러 이제 나도 결혼을 하고 아줌마가 되면서 조금씩 엄마의 마음을 알게되었다. 사치라고만 생각되었던 모피코트를 입을 자격이 있다던 엄마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주름살 늘어가는 중년의 여자에게 손가락에 끼워진 큼지막한 루비 반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십년이 넘게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던 엄마에게 모피코트를 입을 자격은 얼마든지 있었다. 아빠또한 엄마의 그런 헌신과 희생을 아셨기에 적지 않은 돈을 주고라도 엄마에게 당신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거고. 그런 엄마의 노고를 몰라준 사람은 나뿐이였다.

그렇게 이십년 고생의 댓가로 선물 받은 모피코트를 입지 못하고 걸어만 두었을때 엄마마음이 어떠했는지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엄만 모피코트조차 맘대로 입고 나설때가 없는, 당신이 입고 계신 모피코트가 딸의 말처럼 남의 눈엔 사치와 허영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무척 마음 아프셨을 것이다.

결국 그 모피코트를 이모에게 주었을땐 새것을 사주지 못하는 마음이 또 얼마나 아프셨을까? 나이 들어 사람들과 모인 자리에서 아무것도 끼지 않은 쭈글한 주름잡힌 맨손을 내밀기 싫어 과일조차 집어 먹지 않았다던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서글펐을까?

나도 결혼을 하고 이제야 보석이 여자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알게되었다. 변변한 결혼반지 하나 없이 결혼했다가 어느날 친구들이 너도 나도 끼고 나온 다이아 반지에 14K 결혼반지 하나 달랑 끼고 있던 내 손이 어찌나 초라해 보이던지. 남편에게 나중에 돈벌면 다이아반지 왕따시 만한 걸루 사줘야한다며 엄마가 아빠에게 했을 투정을 하게 되는 내모습을 보며 약간의 사치와 허영이 여자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건 단순하게 남앞에서 자길 자랑하고 싶은 마음만이 아니란걸. 큼지막한 보석과 비싸보이는 모피코트가 주는 의미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걸 알게 되면서 그때 엄마의 모피코트를 보며 비아냥거렸던 내 철없음에 뒤늦게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