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때 시집이 아주 어려웠답니다.
친정 엄마는 그런 집으로 시집가는 제가 미워서
아무 것도 해주시질 않았지요.
웨딩드레스며 살림살이며, 모두 저혼자
준비를 했답니다.
남편이 바빠서...라는 공식적인 이유를 대긴 했지만
사실은 시집이 여유가 없어서 누구나 제주도로 가는
신혼여행도 가질 못했습니다.
그냥 가까운 경주에 가서 하룻밤 자고 왔습니다.
경주에 도착하고 보니 한겨울의 고도는 얼마나 쓸쓸하던지요.
여관방에 가방을 두고 우리는 여관 앞에 있는
게임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여관에서 저녁밥이
나올 때까지 백원짜리 동전을 넣어가며 오락을 했습니다.
여관 종업원이 이상한 신혼부부도 다봤다며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저녁밥 먹고 여관 종업원이 하도 채근을 하길래
어쩔 수 없이 여관밖에서 뻔한 포즈 잡아가면서
사진 몇 장 찍었습니다.
다음날 역시 여관에서 주는 아침밥 먹고
시내 버스를 타고 경주 터미널까지 나와서
시외버스 타고 부산으로 왔습니다.
하루 24시간도 걸리지 않은 신혼여행이었습니다.
결혼하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호주다 괌이다 하며
신혼여행 안다녀온 사람이 없더군요.
그래도 제 마음 속에는 제주도로 신혼여행 못간 것이
그렇게 아쉬움으로 남는 것입니다.
남편과 싸우더라도 제 입에선 그 말이 꼭 나왔습니다.
기세등등하던 남편도 신혼여행도 제주도로 못가고...
하는 소리를 들으면 기가 팍 죽어서는 아무 말도 못하구요.
아이 낳고 살다보니 시간 내서 신혼여행 다시 가는거...
생각보다 참 어렵더군요.
둘째 애 낳고 결혼 6년째가 되던 때 남편이 회사에서
무슨 큰 상을 받았어요. 그때 부상으로 나온 것이
부부동반 제주도 여행- 남편이 얼마나 으슥거리던지요.
그런데 아이를 데리고 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시집엘 전화를 하니 아이를 봐줄 수 없다고 하시네요.
친정 엄마는 그때 동생이 대학원 시험 준비 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라서 차마 부탁을 못하겠더군요.
어쩔 수 없이 포항에 사는 언니에게 아이들을 맡겼습니다.
먼저 서울에서 포항까지 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제가
내려갔지요. 그리고 차는 언니 집 앞에 세워두고
저는 고속버스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저희 부부는
김포공항에서 제주도로 출발...
도착은 부산 김해공항에서 내려 친정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포항으로 가서 아이들과 함께 언니집에 세워둔
차를 운전해서 올라오는...대장정 끝에 저도 드디어
제주도 신혼여행 다녀왔노라 말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제주도 여행가서 즐거웠냐구요?
언니가 아이들을 반딧돌처럼 반짝반짝 윤이 나게
잘 씻기고 잘 먹여서 단 4일 만에 터질듯이
볼에 살까지 올라 있었지만 저희 부부는 제주도에서
조금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여미지 식물원에 가면.
여보...우리 애들 데리고 다음에 여기 꼭 오자...
생선회를 먹을 때면,
여보...우리 큰애가 회를 좋아하는데....
어딜 가면,
여보...여기 작은 애가 봤으면 뭐라 그랬을까?
구경이고 뭣이고 다 팽개치고
공중전화만 보이면 저희 부부는 미친 듯이 달려가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댔습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면 울다가 웃다가...
나중에는 제주도 여행 하루가 지나면,
여보...이제 이틀만 있으면 애들 볼 수 있어...
또 하루가 가면,
여보...이제 하루만 더 있으면 애들 만나...
드디어 포항까지 가서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
저는 아연해지고 말았습니다.
파리도 미끄러질듯이 콧등에까지 기름이 잘잘 흐르는
말끔한 아이 둘이 현관을 들어서는 엄마 아빠를
물끄러미 보기만 할 뿐 달려와 안기지를 않는 것입니다.
단 4일간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고아원에 맡겨둔 것도 아닌데, 엄마가 저를 버리고
어딜 간 것도 아닌데 아이들이 멀뚱멀뚱 보기만
하는 것입니다.
가슴이 콱 막히더군요.
아이들은 얼이 빠진듯, 어깨를 흔들며 엄마야...엄마야...
하는 저의 일깨움 끝에 비로소 정신을 차린 듯
엄마...저희들 놔두고 어딜 다녀 오셨어요?...했습니다.
저도 울고 남편도 눈물이 글썽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아무리 좋은 곳이 있어도 아이들을
놔두고는 가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우리 가족 4명은 가면 모두 가고, 안가면 전부 다 안가고,
그렇게 한 덩어리가 되어 움직이기로 한 것입니다.
제주도에 아는 사람은 없지만
내년쯤에 아이들 데리고 갈 생각입니다.
아...이젠 호수님이 계시는군요.
정말 연락드리고 제주도에 발을 디뎌도 될까요?
남편과 재미도 없이 다녔던 제주도의 곳곳을
아이들 손을 잡고 그날 못 느꼈던 감흥까지
곱으로 느끼며 걸어보고 싶군요.
호수님의 밀감밭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가는 곳마다 인연이 있어 사람 사는 세상이란
참으로 오묘하군요. 내내 건필하시고
정성으로 키우신 밀감 수확으로 돈도 많이
버셨으면 합니다.
돈벼락이여, 호수님에게 쏟아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