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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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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슬픔도 언젠가 힘이 되려나요?


BY 산마루 2000-10-04

이번에 저희 아버지는 평양엘 다녀오셨습니다. 50년전 헤어졌던 부인과 아들을 만나기 위해서이지요.

저희 아버지는 6.25때 포로가 되어 돌아가지 못하시고 남에 남게 되셨습니다. 그러다가 중매로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하고 일가를 이루어 슬하에 저를 포함한 다섯 자식을 두셨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북에 아내와 아들 하나를 두고 있는 처지였지만 이곳에서 결혼을 못하게 될까 봐 그 이야기를 못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그 가슴 속 묻어두었던 아들과 그쪽 부인을 만나러 평양엘 가신 거죠.

8월 15일 티비는 온통 이산 가족이 만나는 일로 들썩들썩했습니다. 저는 그 하루 내내 울고 지냈어요. 아버지의 한, 아픔 그런 것도 물밀 듯이 밀려와서 그렇기도 했지만 그 뒤에 숨겨진 여인네들의 아픔과 한숨에 또 가슴이 미어져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스물 둘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전쟁터에 보낸 후 생사도 모르는 채 청상을 살아왔을 한 여인. 핏덩이 아들 하나를 키워내면서 그 세월의 질곡을 어떻게 지내왔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떨려옵니다.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여자 혼자 몸으로 아이 키우면 살아왔을 그 세월이 결코 녹녹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날 밤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어느 낯모를 부인을 끌어안고 통곡하는 꿈이었습니다. 아마 그 분이 그분이었지 싶어요. 저는 그분을 위해서 금반지 하나를 마련해서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그냥 무심히
"아버지, 이거 금반진데요 여자 꺼에요. 가서 필요하시면 쓰세요." 라고 했습니다.

그 시대 '남진'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안해'에게 무심한 남편을 참고 견디어 오면서 그저 자식들 공부시키는 일만이 인생의 과제라 생각하고 손이 갈퀴가 되어 살아온 또 한 여인. 바로 저의 어머니십니다. 신혼 시절 아버지가 말씀하셔서 알고는 있었다고 하시지만 지아비가 또 다른 지어미를 찾아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즐겁고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요?

주체할 수 없는 억울함과 원통함에 몸을 떨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이 일을 '시대의 아픔'이라고 읽어낼 만큼의 교육을 받지 못하신 분입니다. 공무원 박봉에 그저 하루하루 자식들 굶기지는 말아야 했고, 어디 가서 사람 노릇이나 제대로 하려면 가르쳐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온갖 고생을 묵묵히 견디어 오신 분이니까요. 그런 어머니의 아픔을 생각하며 저는 또 한참을 울었습니다. 핏줄이 만나는 이 엄숙한 순간에 여인네들의 그러한 아픔쯤이야 작은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손톱 밑에 가시가 들어가도 아픈 것은 아픈 것이지요. 오히려 남의 갈비 밑에 박힌 들보보다 내 손가락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픈 것이 사람이잖아요.

남쪽의 남편들이 이제 늙어 꼬부라진 북의 아내들을 만나며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티비를 통해 나올 때 나는 제발 아버지 그림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랬습니다. 물론 그 분이 어떻게 생기셨을까. 나에게 오빠가 되는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어머니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아버지의 상봉 장면은 비쳐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오셨을 때 저는 꼬치꼬치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말씀해 주시면 들어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어요. 아마 저희들 눈치를 보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도 못할 일이더군요, 그래서 신문에서 읽은 기사를 말미로 말을 꺼냈습니다.
"아버지 신문에서 읽었는데요. 훈장을 많이 달고 나타나서 놀라셨다구요?"
그 쪽의 아들은 인민군에서 제법 높은 계급을 달고 있었고 뛰어난 능력으로 훈장도 많이 받았다고 하시더군요.

허참, 저희 아버지는 이곳에서 경찰로 평생을 보내셨지요. 이런 역사의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싶어 저는 또 깊은 나락으로 뚝 떨어져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만약 그 안에 전쟁이라도 났다면 아들은 아버지의 가슴팍을 향해, 아버지는 아들의 정수리를 향해 총를 쏘았을지도 모르는 일, 하 모골이 송연해졌습니다. 엉엉 통곡하고 싶었습니다. 오 하느님! 이 가여운 백성들을 굽어 살펴주소서.

평양에서 돌아오신 아버지는 한동안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양쪽에 다 미안해서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시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모습에 또 다시 마음이 저며왔습니다. 그게 아버지의 잘못이었나요? 아버지의 나쁜 뜻으로 두 마나님을 두게 된 것일까요? 그리고 한쪽에는 한없는 기다림만을 한쪽에는 끝없는 절망을 주게 된 것이 아버지 당신의 잘못인가요?

자식된 처지라서 크게 아는 척 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바라보고 이 일로 연로하신 아버지가 몸져 눕지나 않으시기를 바랄 뿐. 그러자니 이미 마음 속은 타고타서 슬픔만이 넘쳐 흐릅니다.

슬픔도 힘이 된다고 그랬나요. 그러면 이 슬픔은 언제쯤 힘이 될까요. 나는 그 언제가 오기 전에 그만 죽어버릴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