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하세요 두분…^^*
저가 누구 에게 인사 드리는 줄은 말씀 안 드려도 잘 알겠지요..
저가 이렇게 지면을 통해 두 분을 살며시 잡아 흔드는 것은
저 마누라의 강요 반, 협박 반, 저의 맘 천분의 일이 작용하여 이렇게
용기를 내어 글월을 드려 봅니다.
아 참!!
위의 인사는 담당 피디 분하고 책임 프로듀서 두 분에게 드리는 인사였습니다.
각설하고…
그러니까 그게 …지금 저 나이가…마흔을 쬐끔 넘었으니…
한 23~4~5 년 전 이었나 봅니다.
그때 전 전라남도 순천이라는 곳에서 주변 인근 위성 시 및 군 에 산재 한
고등학교를 무려 여섯 군데나 전학 이라는 미명 아래
짧고 단호하게 두루 섭렵하고(그때 그 당시 저의 스승님들이 저에게 너는 더 이상 배울게 없다며, 다른 학교 다른 스승님을 소개 하여주시고,
다른 학교를 추천해 가며, 교우 관계의 폭을 넓히시라는 스승님들의 따가운…
시선 속에……저의 향학열에 불꽃을 댕기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방년 19세에 고등학교 2학년 이라는 자랑스럽지 못한 타이틀을 주머니 속에 구겨 넣은 채 순천에 있는 남녀 공학의 고등학교로 전학을 와 있던 시절….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조금 흘릴까 합니다.
그때는 자취라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저희같이 힘과 우정이 넘치는 학우 파 친구들이 모이는 자취방이 몇 군데 있었는데
우리가 모이는 장소는 장학금 조달과 물자 공급이 제법 풍족한 자취방에서
그것도 토요일 오후부터 공부를 핑계로 집에 간 학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그런 곳이 있었습니다.
아!!!
오해가 있을까 두려워 해명해 드리는 것인데…
저가 유급 상태로 전학을 많이 다닌 것은 공부를 못해서도 아니고
지금 이 시대가 말하는 문제 학생이라서 그런 것은 더 더욱이 아닙니다 …절대로
다만 교우들과 우정을 나누던 운신의 폭이 조금 넓고
타 학우들보다 과감한 의리의 시대적 표상이 있었다고 가감 히 말하고 싶습니다.
또한 유교적인 엄정한 잣대 질에 희생된 시대보다 앞서가는
선구자적인 학생의 마음을 대변한 그런 학생 이었습니다……
휴…
이렇게 변명해도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애써 변명하고 싶네요…^^*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볼까요?
그때 그 시절의 계절은 복숭아가 주먹만치 커져 있을 때 입니다.
아마 이때쯤 되었나 봅니다.
그날도 우린 장학금과 보급품을 수령 하러 간 친구를 기다리는데
친구는 밤 늦게 까지 오질 않은 겁니다.
다른 때 같으면 오후 4시쯤 나타나서 우리의 마음을 풍족해 해주던
그 천사 같은 친구는 6시를 넘기고 9시를 넘기고 …….
자정 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여운을 남기고 사라진 후에도 오지 않은 겁니다.
그때 그 시절에는 정부에서 시계가 없는 각 가정을 위하여
자정을 알려 주고 다시금 새벽을 알려주는 자상한 정치를 했던…
그런 아름 다운 정부가 존재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암 튼 우리는 오지않은 친구를 원망도 하고 걱정도 하며
그날 밤을 친구를 걱정하는 심정으로 코골며 세상 모르게 잠을 잤습니다.
거기서 밤을 보낸지라.
책 한 권 들어있지 않은 빈 가방을 옆구리에 낀 채 모자를 눌러 쓰고 거기서
그냥 학교로 갈수 밖에 없었지요.
아침도 굶은 채로…..
문제는 학교에서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우리에게 생각하는 철학을 남긴 채
점심시간이 다되도록 오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 입니까?
의리로 점철되고 그때 나이는 궁금 하면 못 참는 나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점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하나,둘
이 핑계 저 핑계로 조퇴를 하고 친구 자취방 으로 찾아갔습니다.
이런….
저가 젤루 늦었대요….
지금 같으면 헨 폰 으로 열락 을 때렸음 됐을 텐데…(울 딸이 그리 말하데요…^^*)
다들 모여 있는데 ,
정작 우리의 마스코트 그 천사 같은 울 친구는 친구들 가운데 끼여
눈팅이가 밤팅이가 된 채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데요….
일단 말없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어찌 된 것이냐고 묻기도 전에 친구 하나가 사건의 전말을 말하데요
황당한 사건의 전말을…..
토요일 쌀자루를 가방에 쑤셔 넣어 두시차를 타고 집에 도착 했다 네요..
이 친구 동생이 있었는데 그때 국민학교(지금은 초등 학교지만)
2학년 다니는 어린동생이 있었는데.
근데 이 동생이 세 퍼 트라는 개에게 물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가 한마디 했죠…
개에게 물린 건 네 동생인데 어찌 너 눈이 개 발에 맞은 꼴이 되었냐고.
참고로 이 친구 사는 동네를 설명하자면…
나의 살던 고향 이란 노래를 연상 시키면 대충 그림이 그려 집니다.
상상력이 부족 한 분은 걍 대충 생각 하십시오 세포 죽습니다.
이 친구 집에서 버스 타는 곳 까지 갈려면
집에서 출발하면 좌측에 복숭아밭 우측은 넓은 논을 한 오백 미터
빙 돌아 반 호를 그리며 가야 하는 그림 같은 풍광이 자리한 동네 입니다.
물론 국민학교 또는 통학하는 학생 마을 사람들도 그 길을 따라
가야 하는 동구 밖 길인 거죠.
근데 문제는 그 복숭아 밭이 문제 였습니다.
아니 정확 하게 말하면
이제 갓 군에서 제대한 그 집 아들이며 동네 선배가 문제인 거죠
그 선배가 군에 근무 당시엔 맘 좋은 과수원 집 아저씨는
동네 아이들의 서리를 해도 애들이 따먹으면 얼마나 따먹겠냐고
너그럽게 웃으시며 다만 나무를 상하게 하지 말고 따먹으라고
지나가던 우리에게도 너그러운 웃음을 보여주고 손을 흔들어 주시던
그런 키다리 아저씨였습니다.
전 친구의 눈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 집에 군대간 아들이 있다는 말은
첨 듣는 말이라 차분해 지데요.
그 선배가 군에 제대를 하면서 군에서 자기가 훈련 시켰던 세퍼트를 데리고
제대를 했다나봐요.
개를 제대 시킨 게 문제가 된 겁니다.
우리는 그때 그 시절 우린 덩 개(방송용이니 이리 적습니다)만 보았지
세퍼트를 보는 게 그리 쉽지가 않했는데 그 과수원에 세퍼트가 묶기 고
철조망이 보강되고 마을 사람이 동구밖길을 갈 때는 그 눔의 개가 컹 하며
나타나는 바람에 혼비백산 안 해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는지라
그 눔의 개 때문에 말이 많았다 하네요.
동네 어른들이 좋은 말로 개를 묶어두라 종용도 해 보았지만 훈련된 개라 괞찬다며
그 선배가 방종하는 사이 그만 친구 동생을 무는 사고가 생긴 것이죠.
그 친구가 분개 하며 선배를 찾아가 항의를 했는데…..
그때그시절에는 후배가 선배에게 말 대구나 반항은 꿈도 못 꾸는 시절인지라.
감히 항의를 했으니….
집에서 향토 장학금 및 보급을 수령해오다 선배 칭구들무리에 붙들려
지도곤 을 당하고 억울한 심정으로 30리 길이 넘는 이곳으로 걸어 왔다네 요.
이 말을 들은 우리는 힘의 역부족을 느끼고 마음속에 분개함과 울분을 담은 채
묵묵히 저녁을 해서 먹으며 아무 말들이 없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저의 바른 이력을 소개 올려야 할 것 같네요.
저의 6개 고등학교 이동전력은 크고 작은 모든 사건에 주동자요
지략과 계략으로 이룩해낸 제갈량 같은 용병술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그 시절 저는 바둑 실력이 기원 가도 대접 받는
3급 수준 이었으니까요
아마 모든 일에 맥가이버 수준이었고 대단한 리더쉽과
카리스마의 원조 였습니다.(넘 과장 됐나?)
이런 나의 전력을 알고 있는 저의 친구 들은
저의 얼굴만 말없이 바라 보며 무수히 많은 말들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전 그날부터 조용히 일을 착수 했습니다.
수의사를 하고 있는 저의 매형 친구분 을 찾아가 그분에게 바둑을
기분 좋게 져드리길 3일 동안 이나 했으며 친구 동네를 두 번이나
혼자 방문을 했습니다.
그때 매형 친구는 바둑실력이 아마 한 10급 수준이었을 겁니다.
바둑을 두실 줄 아는 분은 이것이 얼마나 고역인줄 잘아실거라 믿고…
드디어 친구 자취방에 6일만에 나타 났습니다.
친구들은 벌써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각자 할일 을 말해주고 1차 모일 장소와 퇴로를 일러주고 암호도 정했습니다.
그날 밤 암호는 뻐꾸기였습니다.
우리는 현지에 도착하여
3일 동안 수백 차레 져주고 구해온
입으로 부는 마취 총으로 사납게 짖어대는 세퍼트를 잠재우고
벤치로 세퍼트의 송곳니를 잘라버리고
복숭아나무에 열 십자로 세퍼트를 묶어두고서
5자루가 넘은 복숭아 자루를 낑낑대며 메고 오는데 성공 했습니다
흥분에 들든 개선 장군처럼 최종 집결지로 신속하게 이동 했습니다.
그날 밤 달빛이 너무나 아름답고 우리의 눈은 초롱거리기만 할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뭔가가 서운했습니다.
우린 최종집결지에 모여 숫자를 세었습니다.
하나,둘.셋,넷…………..
한명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우린 바꾸어진 최종 집결 지 분지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아~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인간이 일을 계획하고 신이 이를 이룬다 했듯이
몇 일전에 보아둔 분지에 엊그제 내린 비로 물이차있으니
최종 퇴로를 수정해야 한다는
그 마을 지리정보를 잘 아는 친구의 첩보가 늦은 거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첩보를 다에게 알리지 못했습니다.
어머님의 심부름으로 늦게 도착했던 한 친구는 그 수정된 작전을 숙지도 못하고
그 임무에 뛰어 들어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믿으며 서로가 그 친구에게 얘기 했을 줄 알았습니다.
우린 그 친구가 올 것이라 믿고 숨죽이며 기다려야 했습니다.
십분이 천년 같이 흐르고 이러길 수 차례….
멀리서 인기적이 났습니다. 친구였습니다.
우린 안도 했습니다.
우린 놀려줄 심정으로 서로에게 입에 손가락을 대며 나지막이 쉬~잇
하는 사인을 보냈습니다.
한참을 이렇게 있었습니다.
일어 서려다 무언가 이상해서 가만 쳐다만 보고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분위기를 감지 했는듯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조금 후 뒤에서 굴직한소리가 여럿 들렸습니다.
뭐야! 없잔 아..
그 목소리는 군대에서 제대한 선배와 그 친구들이었습니다.
우리는 40 이 넘은 이 나이에도 그 날밤 달빛아래서
그 선배의 거의 울부 짖듯 한 절규에 가까운 소리와
저의 친구의 뻐꾹 뻐꾹 나와라 뻐꾹…….
밤에 우는 가련한 뻐꾸기 우는 소리를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용서해라 친구야
이 방송을 듣고 내게 달려올 줄 알지만 울 마누라 협박이
그 날밤 널 협박했던 그 소리보다 크게 들리는걸 어찌하란 말이냐…
용서해라 친구야…
위의 내용은 사실과 무근 하니 따라 하지 마시길….
위의 출연 인의 이름 및 지명을 못 밝힘을 용서 하시길….
충남 서산에서 세 아이 의 아빠가…^^*
끝까정 일어 줘서 고마버용.....ㅡ.ㅡ
엠비씨...방송에 보냈던 내용....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