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장마로 습기가 많은 일요일이다.
일요일이면 온가족은 늦잠을 잔다.
주부인 나마저도 늦게 일어나 늦은 아침을 준비한다.
남편을 불러내는 휴대폰이 울렸다.
일요일인데 산악회모임에서 술자리에 불러낸다.
어린 딸아이 둘과 아내를 놔두고 가는 남편이 좀 샘이났다.
나가는 것 좋아하는 거라면 둘째가라고 서러워하는 나였다.
하지만 그런 역마살을 억누르고 산지 6년째이다.
눈치주는 시댁과 어린아이들 때문이다.
평일엔 아이들이 오후 2시 반쯤에 어린이집에서 돌아온다.
그러면 아침일찍 일어나서 아이들 보내놓고 외출준비를 한다.
하지만 어느새 시간은 흐르고 결국 가지 못하고 망설이다 그만둔다.
오늘만은 나가고 싶었는데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가고 싶었는데 남편은 혼자 나가버렸다. 같이 가고 싶었는데 그럴 자리도 아니었고 불러내는 그들이 야속했다.
일찍 오겠노라고 했건만 휴대폰을 여러번 해도 받지않고 12시가 넘어서 귀가했다.
술을 많이 마셨는지 풀린눈으로 "나 잔다" 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작은방 침대로 직행이다.
오전에 나갈때 일찍 오겠다더니 기대도 안했지만 남편은 분명 나에게 한말이 있었다.
이제 나이가 드니까 술도 많이 못먹겠고 늦게까지 못놀겠다며 힘에 붙인다며 무슨말인지 알겠냐면서 은근히 보약이라도 해주기를 바란다.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서 인터넷 홈쇼핑에서 아주 싼 가시오가피 4박스를 주문했다고 그랬다. 믿을 수 있는 거냐며 남편은 그랬지만 티비홈쇼핑에서 팔던거라고 괜찮을거라고 말해줬다. 그랬던 남편이 12시가 넘어서 들어왔다.
평소에 그다지 남편의 귀가시간은 탓치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왠지 화가났다.
남편은 가족들과 외출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할인마트에 가서도 나보다 더 쇼핑을 즐긴다. 남편과 나이차가 9년이나 나지만 갑자기 남편의 나이가 40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건강에 걱정이 든다.
화가 극도로 났을때 숨이 막히는 흉부압박증세가 있어서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도 받아야 하는데 늘 경제적인 탓으로 가지못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카드값도 많이 나왔다. 이번달에는 정말 할인마트를 자주 안가야지 하면서 돈걱정을 한다. 하지만 집에 먹을 것이 없으면 허전하고 불안해진다.
사치를 전혀 하지 않는 나지만 먹는 것에는 돈을 좀 많이 쓰는 편이다.
공업용미싱으로 한복을 만들기 시작한지 1년이 넘었다.
그때문에 고운색깔의 한복천조각이 많이 나온다.
지금은 명절한달전까지 일이 없어서 그동안 한참을 컴앞에서만 시간을 보내다가 어제부터 한복천으로 상보를 만들었다.
샘플을 만들어서 이웃에 사는 언니한테 천원을 주고 팔았다.
그냥 줄려고 했는데 수공비라며 언니는 천원을 주겠단다.
오늘은 좀 긴 조각보와 정사각에 자수가 놓아진 딱지까지 달아서 이중테이프로 바이어스를 치고 다림질까지한 상보를 아이들의 손에 하나씩 들려서 시어머니께 보내드렸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칭찬을 기대한것이 아니라 걱정부터 앞섰다.
어제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산모기에게 물렸는지 작은딸아이의 이마에 커다랗게 혹같은 물린자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간밤에 작은딸아이가 귓병이 나서 응급실에 가는 상황이 발생했었기 때문에 시부모님들은 굉장히 걱정을 한 상태였다.
미리 전화를 해서 집에서 물린것 아니니 오해하시지 말라고 시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다.
늘 그런식이다. 아이들이 상처가 나거나 아프거나 하면 원망은 항상 나에게로 오기 때문이다. 그냥보내기 뭐해서 상보라도 만들어 나의 불안한 마음을 무마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보낸것이다.
내일도 미리 재단해놓은 한복천으로 상보를 많이 만들어서 이웃에게 나눠줄 생각이다.
처음엔 팔아볼까 생각했지만 친정엄마는 뭘 그런걸 돈을 받냐고 이웃한테 나눠주고 그래야 인심을 안잃는다며 충고를 하신다.
사실 이웃에 사는 택시운전기사아저씨가 사는데 미싱소리때문에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였다.
처음 미싱을 배울때는 이웃에 얼마나 피해가 가는지 조차 상상도 못하고 밤이고 낮이고 그 시끄러운 공업용 미싱을 밟아댔다.
하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조금 생긴지금 그 아저씨와 다퉜던 일들을 돌이켜 보게 되었다.
앞전에도 어떤식으로든 사과를 해야한다는 맘은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앞으로 계속 한복만드는 일을 할려면 이웃을 살폈어야 했는데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그러지 못했다.
시간있을때 상보라도 만들어서 사과편지와 함께 화해를 청해야 하는데 망설이고 있는 중이다. 아저씨가 좀 두렵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참 좋으신 분인것 같은데 인사조차도 꺼려지는 사이가 돼버렸다.
또 아이들 키우느라 스트레스를 어찌하지 못해 히스테리를 많이 부린 탓에 카랑카랑한 내목소리에도 아저씨는 감정이 많이 안좋은 상태이다.
아저씨도 그리 나쁜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막말이 오가다 보니 악화가 돼버렸다.
남편은 이일을 모른다. 그 얘기를 하면 더 시끄러워지기 때문이다.
남편목소리도 굵고 큰편이라서 방음이 안되는 복도식아파트 1층에 사는 우리는 시끄러운 가족이라고 1층 라인에서 원성을 좀 듣는 편이었다.
한복만드는 일은 시간을 다투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잠자는 시간도 거의 허락되지 않았고 시도때도 없이 미싱앞에 앉아 일만해야 했다.
너무 힘들어서 남을 돌아볼 틈이 없었다. 근데 시간여유가 생기니 그런생각이 든다.
많은 돈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져 빚안지고 살만큼의 여유를 바랄뿐이다.
사치스럽지도 않고 멋부릴만한 외모도 아니다.
이웃과도 얼굴 붉히지 않고 진실되게 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