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백년을 세상이 알아 주지 않는 산골마을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여 본 적도 없는 세상이 알아 주는 나무.
나는 느티나무입니다.
너도나도 부럽게 처다보는 깔끔한 공원은 아니지만
유명한 어느 사찰에 멋들어지게 그늘을 드리운 나무가
되지는 못했지만,
난 공기 맑고 순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산골마을이
아주 맘에 들었습니다.
나는 이 마을 사람들에게 넓다란 공원도 되었고,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쉼터도 되었고,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도 되었고,
밤이면 처녀 총각이 모여드는 연애터도 되었습니다.
아침이면 아이들이 책보자기를 허리에 차고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한 낮엔 무거운 지게를 내려놓고 땀을 식히는 남장네를
볼 수 있었고,
저녁엔 푸성귀며 빨래거리를 머리에 이고 실룩실룩 걷는
아낙네들을 볼 수 있었고,
밤엔 긴 담배대로 담배를 피우며 기침을 쿨럭거리는
노인네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온 마을 사람들은 나를 알고 있었고나도 그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난 이쁘장한 여자아이 하나가 지금도 생각납니다.
그 아이를 처음 본 건 30년전.
그 아이는 아마 초등학교 일학년이였을겁니다.
태어나긴 그 아이의 외갓집인 여기서 태어 났지만
부모님이 도시에서 살고 있어서 애기때는 도시에서 살다가
아버지가 몹쓸병에 걸려 이 곳으로 아주 이사를 오게 되었답니다.
이름이 경은이라고 부르는 걸 난 금방 외워버렸답니다.
경은이는 내가 서있는 왼쪽 길에서 혼자서 오거나
남동생과 같이 오거나 했습니다.
아이들이 내 그늘밑에서 공기놀이,소꼽놀이,사방치기,땅따먹기를
하고 있었지만 경은이는 아이들 틈에 끼지도 못하고
노는 모습만 한참 보다가 내 곁으로 살살살 다가와
내 몸둥이를 뺑뺑 돌아가며 두 팔로 안아 주다가 고개를 들어
날 져다보곤 했는데 그 모습이 안스럽고 귀여워서 꼬옥 안아 주고
싶었지만 워낙 뻣뻣하게 생겨 먹은 난 안아 줄 수가 없어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얼마 후 마을에 상여 나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경은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며칠뒤에 알았습니다.
그 뒤 경은이는 힘이 하나도 없이 나한테로 와서 자주 울었습니다.
경은이 어머니가 아이들만 놔 두고 서울로 돈 벌러 가셨다는 걸
동네 아줌마들에게 들었습니다.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슬프긴 처음이였습니다.
가을이 되어 내 잎들이 남김없이 떨어져도 이토록 슬프지는 않았는데
나야 봄이 되면 싱싱한 잎이 다시 살아나지만, 경은이 아버지는
두 번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너무나 슬펐습니다.
경은이는 그림을 잘 그린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전교에서 제일 잘 그려 상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던 날
내 마음은 하늘로 솟아 오를 것 같아 온몸이 흔들렸습니다.
경은이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인사도없이
5학년쯤엔가 서울로 엄마와 함께 이사를 가버렸습니다.
난 경은이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잊으려고 애쓰지 않았지만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리워서 잠 못 이루는 밤도 더러더러 있었고
찔끔 눈물이 나기도 했고
어느날은 하늘만 쳐다 보다가 어지럽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