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60

통일글쓰기


BY baada 2003-06-25

 일주일에 한 번 아이들의 글짓기 지도를 하러 간다.

 어제는 상민이와 지원이를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사학년생들인데 그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화요일은 늘 즐겁다. 아이들이 밝고 적극적이다. 아이들의 솔직한 생각들을 들으면서 많은 것을 배워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늘이 육이오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교에서 글짓기 숙제를 과제로 받아왔다.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은 한 목소리로

 ''선생님, 통일 글짓기 해야해요.'' 한다.

늘 육이오가 되면 어김없이 되풀이 되는 통일 글짓기 숙제. 나이 마흔이 다 되었지만  이 아이들과 다름없이 나는 숙제를 하기위해 끙끙되어야 했던 기억이 난다. 이 전쟁아닌 전쟁은 언제 끝이 날까? 통일이 된다면 이 영원히 되풀이 될 것 같은 숙제에서도 해방이 되겠지. 그렇다면 기필코 통일이 되어야 겠다.

 차라리 육이오 기념일에 통일에 대한 막연한 글짓기 숙제보다는 전쟁에 대한 참상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면서 왜 전쟁은 두 번 다시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우리 인간들의 숙제임을 상기시키는 게 어떨까.

 얼마 전 이라크에 다시 전쟁이 일어났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막연히 알고 있는 듯도 했다.  한컷 한 컷 신문스크렙을 할 때 아이들은 전쟁의 참담한 모습들을 담아와 나름대로 자기의 소견을 얘기하기도 했었다.

 아이들이 통일에 대해 생각할 여지도 마련해 주지 않고 날만되면 통일에 대한 글짓기를 해오라느니 그림을 그리라느니 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뭔 죄인가. 어른들이 저질러 놓고 아이들더러 너희들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식이 아닌가.

 통일에 대한 접근은 처음부터 차근차근 체계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왜 남북이 갈라져 살아야 하는지조차도 모른채 그리고 어떤 이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하고 어떤 이는 통일이 되면 우리가 엄청난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고 하고... 어른들에게  띄엄띄엄 줏어들은 얘기로 짜맞추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도데체 너무 헷갈린다. 그런데 이런 아무런 가치도 없는 통일글짓기로 우리 아이들이 끙끙 되어야 한단 말인가.

아이들은 도데체 왜 이런 글감앞에 시달려야 하는지 그 이유조차도 모른 채 원고지와 씨름하고 있다. 안스럽기 그지없다. 원고지를 앞에 놓고 막연해 하는 아이들에게 그 동안 텔레비젼이나 신문 혹은 책에서 보았던 통일이나 육이오에 관한 기사나 얘기들을 떠올려 보라고 했다. 아이들은 선생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난감해 한다.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것을 써보라고 했다. 잘 쓸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알고 있는 내용을 자신의 생각을 섞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말하듯이 써보라고 했더니 그래도 꽤 제법 열심인 아이들이라 나름껏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또 아이들은 다시 난감해 한다.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도저히 더이상 내용이 길어지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쉰다. 길이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더니 선생님께서 몇장이상 써오라고 하셨단다. 그래서 꼭 그 매수를 맞추어야 한다고. 그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이 땅에 아이들은 너무 많은 쓸데없는 것들때문에 힘들구나 생각했다. 그 아이들에게서 이 고통아닌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수 있다면 난 글쓰기 선생 안해도 좋겠다.  글은 자유로운 상상과 부담없이 쓰여져야 한다. 특히 확실하게 알지도 못하는 글감에 대해 끙끙 쥐어짜듯이 쓰여진 글이 도데체 누구한테 도움이 되겠는가.

 육이오는 이래저래 슬픈날이다.

 "얘들아, 그래도 너희들은 너무나 밝고 아름답구나. 어른들의 무책임속에서도 씩씩하게 자라나는 푸른 나무같은 너희들. 너희들이 있기에 세상은 반짝반짝 빛이 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