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인 청년이 군대를 갔다.
군에서 겨우겨우 한글을 깨우친 그 청년 엄마한테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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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무이.보소...
엄마 보지도 까마코.
형수 보지는 더더욱 까마코..
암튼 보고싶단 편지 내용이겟죠..뭐..
편지를 읽은 엄마..
\"마한넘의 소상 지 에미건 지가 나올때 봣다 카지만..지 형순건 은제봣누...\'\'\"
겨우 한글개우친 그청년이 ㄴ은 철자를 빠진 편지엿답니다`~푸힛~~~
내친김에 참나리 닮은 세째 이모의 미모랑 쌍벽?을 이룬
네째 이모의 글을 써봅니다..
얼마전 친정 엄마의 제사가 있어 친정을 갔던날
아버지의 세딸들 보자마자 분통을 터트렷다
\"아니..느이 네째 이모가 이모부를 도봉산 입구 지하 단칸방으로 내쫓았단다.성한 사람도 아니고 눈이 안보이는 소경을 말이야 재산을 딱 반으로 가르고 이혼을 당했다는데 인천 월미도 부근 상가에서 나오는 월세 60만원이 전부란다..세째 이모를 빼고는 느이 엄마를 닮아 냉정하다니까..여자들이 좀 빈틈 있어야지.남자들이 숨을 쉬지..허`~참`~\"
아버지나 네째이모부는 똑뿌러지고 빈틈없는 부인들과 사는거에
애로사항부분에서 동질감을 느끼기에 아버지에 입장에서
분통은 당연한거였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깍쟁이이라는 명성?답게 네째 이모의 황혼 이혼 소식에
인간미 있던 이모부를 동정하기에 이르렀다
아버지의 일방적인 말을 전해들었을때 우리도 이모가 너무 한거 아니냐.
네째 이모부가 비록 젊을적에 바람을 피었기로서니
지금은 앞도 보이지 않은 이모부를 내치다니..
그래도 이모는 경제적으로 고생은 안했는데
그리고 재산문제도 그렇다 달랑 월미도 상가 한개뿐이냐.
야무진 이모가 젊을때부터 많은 돈을 모아놓았을텐데..
이모가 황혼이혼을 준비하려고 등기 되어있는 부동산보다 현금으로 모아놓았나보다.
이모가 너무 냉정하고 이모부가 너무 불쌍타..
모두다 입을모으며 언젠가 이모부을 찾아가 밥한끼라도 대접해드리자며
이야기를 끝냈다.
네째이모부..
한때 서울시내에서 유명했던 산부인과 의사였던 이모부는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에 세련된 매너로 게다 성격까지 호탕 하고
직업까지 좋아서 잘나가던 시절에 한 바람 피었다고 했다
몇년전 뇌에 종양이 생겨서 수술을 했고 시신경이 손상되어
앞이 잘 안보이자 병원을 정리하고 집에서 요양중이라는 했는데 ..
결국 병든 몸으로 이모에게 이혼을 당하고 도봉산 지하셋방으로
추락을 했다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말씀 이였다
네째 이모..
이분은 동양적인 미인인 세째 이모와는 반대로 현대적 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상카플이 싹 지고 칼날 같은 코하며 앙 다문 입술과
야무진 턱선은 \"나.냉정..나 똑똑..나 빈틈 없음\"이라고 굳이 써놓지 않아도
여성스러운 세째이모와 분위기가 딴판 이였다.
가난했던 우리집에 세째이모는 네째 이모꺼까지 뺏들어 와서
우리를 도와주려 했고 네째이모는 세째이모의 지난친 인정에
무반응을 보였다고 지난주 도봉산 입구에서 만난 네째 이모의 고백 이였다.
네째 이모부는 네째 이모를 본순간 첫눈에 반해서 청혼을 했다한다.
이모가 간호사로 있던 병원에 월급 의사로 오던 첫날
간호사 복에 흰캡을 쓰고 병원문을 열고 나오는 이모와 마주쳤는데
이모부는 천사가 내려왔나..잠시 어질어질 했다 했다
암튼 ...
두남녀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어 이모부는 싫다는 이모에게 치사할 정도로 매달려
이모와에 결혼을 성공리에 마쳤다 했다.
잘생긴 남자와 미녀와 사이에 태어난 세명의 이종사촌들은
내 남편이 눈이 휘둥그레 질정도로 인물들이 뛰어났으며
머리까지 좋아 대학시절 서울시에서 국비로 남여 각각 한명씩 선발하는
유학길에 오르기도 했다
이렇게 겉보기에는 완벽한 조건을 갗춘 부부였지만 이모부의 바람기로
가정사는 파란만장 해서 이혼장에 도장을 찍니마니 숱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모는 결국 자식들 보고 살기로 했다며 오로지 자식에게 헌신을 하며 살아간다했다
칠십이 다된 나이에 .
버림받은 이모부의 소식을 듣고 우리 세자매는 이번 나의 서울행때
도봉산에 칩거 하시는 이모부를 찾아가기로 했다.
평생 이모의 속을 썩였을지는 몰라도 깍쟁이 이모에게
정 넘치는 이모부가 빈틈없고 냉정한 이모와 살면서 안주를 못했던것은 아닌가 추측을 했고
우리형제들은 이모쪽으로 당연히 기울여져야하는데도
웬지 우리는 약자인 이모부를 이해하는 쪽으로 이상한 여론이 형성 되었다
사전에 아버지에게 이모부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도봉산으로 가기전날
전화를 넣었다
\"여보세요...서영이<이모가많아 사촌들 이름을 붙임>이모부세요?\"
\"네..맞는데요.\"
\"이모부..저 도영이..\"
\'아고 ..니가 웬일로 .도영아...고맙다.고마워..\"
전파를 타고 들려오는 이모부의 호탕 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는 여전 하셨다.
내일 도봉산 입구로 가겠다고 약속을 하고 이모가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나이 먹은 사람이 뭐가 틀려도 틀린다고
50대 언니는 이모가 이모부만 만나고 내려간다면 서운할테니 전화를 해보라 했다
이모와에 통화는 거의 8년만이였는데
8년전 내엄마의 죽음에 나도 일조한것 같은 죄의식에 이모들을 피한 나머지
이모와에 통화는대략 8년만이였다.
내일 도봉산에 간다고 하자 이모는어제 이모부한테 갔다왔지만.
너희들 보고싶으니 같이 만나자며 약속을 하고
이튼날 도봉산 입구에서 남남이된 이모 부부와 우리 세자매는 해후를 하게되었다.
아버지의 일방적인 정보와는 달리
의외로 이혼은 했어도 웬수처럼 지내지 않는 이모 내외에 모습에
다행스러움을 느끼며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이모부의 시력은 물체의 윤곽이 잘 안보이는지 그릇에 눈을 가까히대고
구분을 하는 불편을 겪고 계셨다.
예전 그멋진 분위기는 아직도 남아있어 68세의 노인이라하기에
상당히 젊으셨고 예전의 스타일을 어느정도 간직하고 있었다.
네째이모역시
올해 60이라지만믿기지 않을만큼 미모는 여전했고 팽팽한 피부와
입고오신 연노랑 상의가 매치가 잘되어 세련됨을 풍기고 있었다.
여전히 이모부는 호탕하셨고
여전히 이모는 차분하고 이지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두내외를 마주보고 있으니 성격적으로 참말로 대조적이라는 생각을 하자
서로가 힘듦 살아겠구나..
이모는 이모대로 뻥도 있고 끼도 있고 넑살 좋은 이모부가 못마땅했을테고
이모부는 이모부대로 자로잰듯한 이모의 스타일에
숨이 막혔을지도 모른다는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지하셋방에서 버려진채 ...\"정보와는 달리
이모부는 주택을 사서 기거하면서 나름대로 전원생활을 즐기는듯 하였다.
다행스럽게 아버지의 월 60만원 상가 수입도 아버지의 말과는 다르게
제태크도 하면서 상당한 재력을 가지고 계셔으며
도봉산 행도 이모부가 스스로 선택한길이 라하셨다.
이모 역시도 이모부를 아예 나몰라 하지는 않는것 같았고
서로가 미래을 위한 재산을 각자 알아서 불려놓은듯 싶었다.
잠시 이모부가 계약할일이 있다며
지팡이들 짚고 더듬더듬 나가시고 이모는 잘된듯 이모부와일을 해명하기시작하셨다.
\"니 이모부..뇌수술 받기전까지 여자문제로 속섞인 사람이야.\"
\"바람을 피워도 몰래나 피우지..밖에 여자가 생기면 나한테 쌀쌀맞고 여자가 떨어져나가면 나한테 친절하고 그래서 늘 나는 눈치채고 살았지.\"
이모는 우리의 짐작대로 조카인 우리가 이모부가 불쌍해서 찾아온다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해명차 부랴부랴 온것 같았다.
이모의 말을 들으니 경제적으로는 넉넉했을지언정 여자로서의
잔잔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산것같아 ..내가 솔직히 그랬다.
\"사실 저 이모가 이모부를 빈몸으로 버렸는지 알고있엇어요..\"
\"글러줄 알았어 위문공연 오나보다 했지.돈?돈 나보다 더많아.\"
그러다 보니 이모부가 계약을끝내고 더듬더듬 걸어옷기에
이모를 살짜기 꼬집으며 주위를 상기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