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하게 내리던 비도 그치고
모처럼 햇살이 밝게 비춰 옵니다.
베낭안에 물통 두개를 넣고
산으로 올라 갑니다.
길가에 핀 나팔꽃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달려 나옵니다.
보랏빛 초롱꽃이 조롱조롱 매달려
전깃줄에 참새떼처럼 재잘거립니다.
가파른 언덕 길을 단숨에 오르고 나니
싸리꽃 만발한 오솔길이 나타납니다.
오솔길을 걸을 때면 늘 영화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키큰 나무숲 사이로 홀로 걸어 가다
보면 어디선가 그리운 사람 하나 나무 뒤에
숨어있다 반가이 날 맞이 해 줄 것만
같습니다.
굽이굽이 길을 돌아서 다시 내리막길입니다.
비에 젖은 길이라 조심스럽습니다.
행여 미끄러질 새라 허리를 굽히며
한발 한발 내딛습니다.
드디어 약수터에 도착했습니다.
시원한 물 한바가지로 갈증을
달래 주고 베낭에 가지고 온 물통 하나
가득 물을 받습니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벤취로 가서
베낭을 베고 누워 봅니다.
푸른 하늘과 햇빛이 일렁거리는 초록 잎새사이로
쏟아져 내립니다.
마치 별이 빛나는 것 같습니다.
빛을 머금은 잎새는 투명한 초록입니다.
이 순간만은 모든 것을 잊고 싶습니다.
나 또한 나무가 되어 그렇게 쉬고 싶습니다.
회색 꼬리를 가진 줄다람쥐 한마리가
쪼르르 큰 나무를 타고 올라 갑니다.
순식간에 꼭대기 가지까지 올라 가더니
다시 미끄럼을 타듯이 내려 옵니다.
까만 눈을 반짝이며 요리조리 살피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한번만 쓰다듬어 주고도
싶습니다.
푸른 하늘과, 초록빛 숲이 있는 산에서
한 순간 행복 해 집니다.
세상만사 온갖 근심, 그리고 헛된 욕망도
이 시간만큼은 이별입니다.
언젠가는 전원에서 살고 싶습니다.
앞에는 은빛 물결로 흐르는 강이 있고
집뒤로는 사계절 풍경을 담는 산이
있는 그런 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쫓기는 삶 속에서도 꿈을 꾸듯이
늘 그렇게 자연속에서 살 날을
기다립니다.
남은 시간 얼마가 될런지 알 수 없지만
이제는 그만 자연으로 돌아 가고 싶습니다.
"너는 아무래도 중 팔자다..."
어려서부터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날 보시며
어머니가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은 정말 산사람이 되고픈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