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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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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5) - 마지막입니다.


BY 영자 2000-07-18

남편은 말했다. '인영아, 그래도 그 아이가 그냥 가지 않고 네 몸을 빌어 이 세상에 우리 자식으로 왔다간 것만으로도 만족하자. 아주 잠시지만 우리 아이로 세상에 왔었다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그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영혼으로 돌아간거야. 때묻지 않고 말야.'

그럴지도 모른다. 며칠전 고등학교 학생들이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고가 있었다. 그 부모들의 심정이 어떨까? 어쩌면 아무것도 기억할 것 없는 내가 그분들에 비하면 행복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기억할 얼굴도 모르는 내가...

수술을 하고도 5일을 더 병원에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뱃속의 장기가 좌우로 상하로 왔다갔다 하는 것 같았다. 많이 움직여야 뱃속의 노폐물이 고여있지 않고 밖으로 나온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대로 펴지지 않는 허리를 곧게 펴고 병원 안팎을 왔가갔다 했다.

내 침대의 왼쪽에는 임신 19주된 산모가 있었다. 그 언니는 딸이 둘이 있는데 남편이 아들을 낳자고 해서 또 아이를 가진 경우다. 그 언니도 나와 비슷한 경우로 임신 13주부터 하혈이 있었단다. 물론 이번 임신 이전에 네 번이나 유산을 경험했다고 한다. 양수가 새거나 혹은 조산 등으로... 그리고 이번이 다섯번째 임신, 이번에는 아예 13주때부터 병원에 들어와 지내고 있다. 딸아이 둘은 시어머니께 맡긴채.... 홀로 병원에서 아니, 침대위에서만 안정을 취한 채 지내고 있다. 병원에서 3주를 보낸 내가 생각해도 그 일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 언니의 남편은 아내가 유산을 네번씩이나 했는데도 결코 아들을 포기하지 못하고 또다시 다섯번째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 언니는 아마도 출산때까지 병원에서 안정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 언니가 꼭 성공하실 진심으로 바래본다.

그 언니의 말로는 서울중앙병원에는 정말 어려운 산모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그 병원에서 출산을 하는 산모들의 대부분은 조산이나 난산인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내가 수술을 한 이틀 후에도 24주된 산모가 조산을 하였고 내 옆엔 임신중독증으로 7개월만에 조산한 산모가 있었고, 내 앞 침대에는 6개월 되었는데 배가 자꾸 뭉쳐서 며칠 째 위급한 상태인 산모가 있었으며 교통사고로 인해 안정중인 13주된 산모도 있었다. 거기 청소부 아줌마의 말을 빌자면 이 병원에 입원하는 산모들은 거의가 나이 30이 넘은 경우가 많다고 했다.

나는 임신 8주 때부터 하혈을 하기 시작해서 18주가 지나서야 하혈이 멈추었다. 그리고나선 양수가 적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으며 그 때 이미 약간의 양수가 새고 있었지만 난 그게 양수인지도 몰랐고 의사 또한 대수롭지 않은 일로 얘기했었다. 그리고 22주가 지나면서 양수가 터져 버린 것이었다. 그것도 그 일이 있은 지 5일이 지나서야 나는 개인병원을 찾았고 이후 2주간을 종합병원에서 지내고 임신 24주가 지나 재왕절개로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처음에 거꾸로 있었고 탯줄이 자궁 아래쪽에 있었으며 전치태반이었다. 의사선생님의 말로는 어려운 상황이란 상황은 모두 갖고 있는 상태라고 하였었다.

병원에 있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처음 하혈을 시작했을 때 큰 병원에 갔었더라면... 아니 양수가 적다고 했을 대, 아니, 양수가 한 방울이라도 흐르는 것을 느꼈을 때 '양수과소증 산모 전문가'가 있다는 그 병원을 알았더라면 어쩌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후회가 막급했다. 남편은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자고 하였다. 물론 늦게나마 '양수주입술'을 시술 받을 수 있게 되고 또 '난산모 전문가'인 의사선생님께 수술을 받게 되어 내 몸은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으로도 감사하다.

만일 나의 전치태반 상황이나 아기가 거꾸로 있어서, 탯줄이 아래쪽에 있어서 수술이 위험하다는 사전 얘기도 없이 그냥 수술시간을 잡아 수술을 하려했던 그 개인병원에서 그날 수술을 했더라면... 정말 생각하기도 싫다. 특히나 그 때는 의사파업 중이라 만약 그 개인병원에서 갑작스런 사태가 발생하였어도 종합병원으로 옮길 수도 없었을 것이고... 정말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물론 임산부가 전부 종합병원이나 유명한 대학병원을 가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개인병원에도 유능한 의사선생님들이 많이 계실 것이다. 그리고 거의 모두들 아무 문제없이 예쁜 아기를 낳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나처럼 초기에 하혈이 있거나, 특히 나이가 많은 경우, 양수가 샌다거나 진통이 있거나 배가 뭉친다거나 특이한 현상이 발생했을 때는 그 쪽 분야에 전문가가 있는 병원을 적극적으로 찾아 가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기에게 약간의 위험신호가 있다면 빠른 대처를 해야 할 것이다.

두번째로, 임산부는 아기와 진실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내 경험이다. 책에서 수없이 아기와 대화를 나누라는 얘기를 보았지만 나는 병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런 절박한 상황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잘 몰랐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한 2주동안 나는 아이와 진심으로 대화를 하였고 아이와 나의 생각이 하나됨을 느꼈었다. 아이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로 갔고 나 또한 마음 아프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아가를 보낼 수 있었다. 그것은 아이와 내가 함께 한 대화의 시간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임신하고 있는 아줌마들.... 부디 아기와 많은 대화, 진심어린 사랑을 많이 나누시길...


남편이 말했다. '당신, 이담에 돈 많이 벌면 조산아 연구기금 같은 거 조성해서 이 병원에 연구비 지원같은 거 하면 어때?' 라고. '우리 아기 같은 조산아들이 폐성숙을 위해 투여하는 주사가 한 병에 1백만원씩이래. 그걸 몇 개나 맞아야 폐가 제대로 성숙이 될지도 알 수 없고...'

지난번 '세상에서 가장 작은 아이'라는 TV특집물을 보았을 때, 외국에서는 조산아들을 위한 지원기금을 모은다거나 이를 위한 사회재단 같은 것도 많이 활성화 되어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고 들었다. 부모의 입장에서도 조산아의 경우 기형아가 될 확률이 높다는 이유로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아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를 위한 사회적, 국가적 차원의 지원 또한 전혀 없는 것이 현실이고.... 그 때 그 프로를 보면서 우리나라도 조산아를 위한 연구기금이나 혹은 지원재단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혼자 했었는데.

내가 바로 조산아의 부모가 될 줄을 그 때는 상상도 못했었다. 우리 아기도 100만원짜리 폐성숙 주사를 2병 맞고도 소생을 못했다고 한다. 아이 스스로 심장이 멈추었으니... 내 병원비도 보험이 적용되었지만 꽤 많은 금액이 나왔다. 그래도 나는 행복한 엄마였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런 시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경제적인 이유로 시술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기때문에... 많은 분들이 나의 건강을 많이 염려해주시고 또 내가 아이를 잃은 것에 대해 마음 아파하시지만, 어쩌면 나는 참 행복한 엄마였다. 내게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2주간의 시간과 또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해준 남편과 의사선생님, 그리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는 제왕절개를 했다. 보통 제왕절개는 가로로 하는게 일반적이다. 그래야 다음번 아이를 낳을 때 자연분만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며 또 미용상의 이유로도 그렇다. 하지만 난 전치태반에 탯줄이 자궁입구에 있고 또 임신6개월의 조산이었기 때문에 가로로 절개할 경우 수술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만약 태반을 제대로 제거하지 못하거나 이로인해 출혈이 심해질 경우 자궁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 생길수도 있고... 여러가지 이유로 세로절개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세로 절개를 할 경우는 비키니를 입을 수 없는 단점이 있다고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셨었다. 그러나 세로절개의 큰 단점은 다음번 아이를 가졌을 경우 36주경에 미리 제왕절개로 조산을 하여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세로절개의 경우 만삭이 되면 배가 터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임신은 약 1년이상의 휴식기를 가진 이후에 해야 된단다. 그러니까 난 지금부터 한 1년 이상 자궁을 튼튼히 하는 과정을 거친 이후에야 임신을 시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1년이 지나야 임신을 할 수 있대.' 라고 말했었다. 남편은 '이 사람아, 그 고생을 하고도 또 아이를 가지고 싶어? 그냥 우리 둘이 행복하게 살자. 한 10년쯤 열심히 일하고 돈벌면 좋은일도 하고..그리고 여행이나 다니면서 말야.' 남편에게 고마운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난 내가 사랑하는 남편을 쏘옥 빼닮은 아들아이를 하나 꼭 낳고 싶다. 남편도 시간이 진나면 또 생각이 바뀌려나? 친정엄마도 그러신다. '얘, 여자가 아이 하나를 키우은데 쏟는 정성을 다른 곳에 쏟으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아이 없으면 어때? 그 정성으로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할 수도 있잖아' (우리 엄마 멋지죠?)

나의 몸과 마음은 이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남편말대로 아이에 대한 성급한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도 TV에서 '조혜련의 육아일기'를 보면서 생후 2개월된 예쁜 아기를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울 아기도 저렇게 태어날 수 있었는데... 모든 것이 내 잘못인것만 같다.

그래도 남편이 '앞으로 인영이, 네가 임신을 하게 되면 처음부터 검진 잘 받을꺼구, 또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사전에 조심해야 하는 방법도 알구... 암튼 2년 후쯤이면 의학도 더 발달할꺼구.. 이번같은 일, 다시는 겪지 않게 될꺼야,' 라고 말해주어서 조금은 위로가 된다.

지금 난 친정엄마가 해주시는 맛난 밥을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겨먹고 있고 간식에, 과일에, 우유, 요구르트, 한 시도 쉬지 않고 먹어댄다. 늘 옆에서 챙겨주시는 엄마, 아빠가 계시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기보다는 며느리걱정을 더하신 시부모님이 계시고 또 일과 '아내와 아기' 사이에서 너무도 힘든 시간을 보낸 사랑하는 남편이 있고, 언니, 동생, 형부, 제부,,, 친척분들... 그 분들이 옆에 있어 난 너무 행복하다. 빨리 건강을 회복해서 또다시 '열심히 일하는 여자'로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사랑스런 아내'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

그동안 걱정 많이 끼쳐드린 모든 분께 너무 죄송스럽고 또 감사합니다. 제 두서없는 글이 혹여 나중에라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가을이 되면 보고싶은 울 아줌마들을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