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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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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받은 생일축하


BY 이쁜꽃향 2003-06-16

'동혁이 엄마 생일축하하네
건강해라'
낯 익은 시어머님의 글씨체.

"엄마!
할머니께서 엄마 생일 축하하신다며 주셨어요."
말년 휴가 나온 아들녀석이 시댁에 인사차 갔더니
할머니께서 주시더라며 건네는 봉투엔 그렇게 적혀 있다.
며느리 생일이 닥치는 걸 기억하셨던지
미리 봉투를 보내신 모양이다.
해마다 아들 며느리와 손주들 생일을 잊지 않으시고
생일축하 봉투를 챙겨주시는 시어머님의 사랑.

몇 년 전에는
내 생일 날 새벽같이 시누이가 찾아왔었다.
내 생일을 깜빡하셨던 어머님께서
전날 밤 늦게야 기억이 나셨단다.
아버님이 깜짝 놀라셔서
장남며느리 생일도 까 먹느냐고 호되게 야단하시고
생일날 이른 아침에 시누이 편에 봉투를 보내셨던 거다.
올해에도 역시 변함없이 내 생일을 기억하시고
마침 휴가 나온 손주녀석 용돈도 주실 겸
생일 축하 봉투를 마련해주셨나 보다.
너무나 신나고 즐거워야함에도 전혀 그럴 기분이 나질 않는다.

어려서부터 내 생일 아침이면
친정 엄마는 늘 분주하셨다.
이른 새벽,
떡시루 차리시고 상 앞에서 날 위해 두 손 모아 축원하시던
친정어머니의 모습.
단정하게 앉으시어 두 손을 마주 비비면서 들릴락 말락한 음성으로
'**살 먹은 우리집 큰 딸 ...
세상에 나가 사람들에게 귄 태고 연태게 하여 주시옵고...
하는 일마다 모두 잘 되게 해 주시고...'
끝도 없이 이어지시던 어머니의 사랑...
그 땐 이불 속에서 자는 체하며
속으론 킥킥 웃었었는데
이젠 다시는 엄마의 그 모습을 뵐 수 없겠지...
작년 둘째녀석 생일날,
수수팥떡 상에 올리시고 치성을 드리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마지막이실 줄이야.
그 날 따라 온가족 모두를 일일이 불러가며 축원하시더니
이젠 그 모습이 추억 속으로만 남게 되다니...
사십 오년째 생일까지 미역국을 손수 챙겨주셨는데...

여동생이 생일 축하를 해 주려고
주말에 미리 내려 왔다.
서로 아무런 말은 안 했지만
엄마 생각에 마음 한 켠이 아려 와
일요일 아침 엄마 산소로 향했다.
출발 순간부터 눈물이 앞을 가렸다.
듬성듬성 자라기 시작한 산소의 잔디를 어루만지며
한참을 울며 무덤 가를 돌아보자니
그 사이 자란 산소 근처의 무성한 잡초가 새삼 서러움을 더하게 한다.
'울 엄마 무덤가에 잡초 뿐이네 라더니...'
여동생의 울음 섟인 넋두리에 풀 뜯으며 다시 울고
한참을 산소 앞에 앉아
그리운 엄마 생각하며
'한 번 가면 그만인 것을...
이렇게 허망한 삶인 것을...'
우리가 온 줄 까맣게 모르고 계실 엄마 생각에,
받기만 하고 미처 되돌려드리지 못한 사랑에 가슴 아파하며
삶과 죽음이 생판 다른 길인 것을 통탄해 하며
다음을 기약하고 내려 왔다.

내일은 내 생일이다.
아무래도 엄마 생각에 결코 기쁜 날이 될 성 싶지가 않다.
직원들이 꽃바구니며 선물 세례를 할 것이고
남편도 아이들도 축하해주겠지...
친구들이 '축하주' 하자는데
난 또 못난이처럼 눈물을 보이게 될 지도 모르겠다.
왜 이렇게 날이 갈수록 엄마 생각이 더 간절해 지는 건지...

주위에서 모두들 축하해 주는
즐겁고 행복해야 할 내 생일날
난 아무래도 눈물로 보내게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