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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인지 아픔인지 그 깊은 내막을 모른다


BY 잔다르크 2003-06-13

설송님이라고 시골살이를 하시는
풋고추 같은 분이 계신다.
더러더러 내딛는 발걸음엔
언제나 고향내음이 푹 배어있다.

사 십 여 년 전 그 시절엔
한더위가 되면
찬밥도 더 시원하게 먹으려고
두레박으로 금방 퍼 올린 우물물에 꾹꾹 말았다.

부엌 바닥에
된장과 고추장을 따로따로 놓고
풋고추와 오이 마늘을 번갈아 찍어
꿀꺼덕 넘겼다.

내가 무리라고 불렀던 오이는
백발백중 꼬부랑 할머니처럼 비틀어져 있었지만
찍어 먹던
냉채를 맹글어 먹던 무척 달았다.

긴 허리띠를 두 불 세 불 둘러매셨던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는
잠시라도 꼭 매지 않으면 허전하다 하시며
하루에도 몇 번을 단단히 추스리셨다.

십 수명이 넘는 식솔들에게
당신의 요기를 양보하고
배고픔을 참으려고 그리 하셨는지?

아니면 아픈 허리 때문에
내가 늘 두르고 사는 혁대처럼
든든 하라고 매셨는지?

노는 데만 정신을 팔고 다녔던 난
그 깊은 내막을 모른다.
늘그막엔 결국 골다공증인 줄도 모르고
꼬부랑 할머니가 되셨지만...

각설하고, 뚝 따서 씻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껍질 채 우거적우거적 씹어 먹었던 오이는
겉이 까슬까슬하고 쫙 빠진 요즘 오이와는 생판 다르게
매끌매끌하고 꼬부라진 정다운 모양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