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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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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을 정리하는 닭호스아줌마의 가족 뉴스


BY 닭호스 2000-12-30

나는 몇 달전부터 남의 소식을 읽은뒤 거기에 나의 생각을 붙혀 이방에 계신 많은 친구들에게 털어놓는 작업을 했다...

하지만... 2000년이 다 흘러가고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 나는 우리 가정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는지를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되었다.

올해 일어난 일중, 나에게 가장 큰 의미를 준 사건을 꼽자면 단연 우리 딸 아이 달이의 탄생이다.

그리고 다음이 비록 당시에는 병규와 나 둘만의 단촐한 가정이었지만.. 이름도 거창한 우리 가정의 독립을 들 수 있다. 우리는 작년 9월 결혼후 시부모님께서 마련해주신 아파트가 완공되지 않아서 6개월 가량을 부모님께 얹혀 살았다. 그리고 올해 3월 분가를 하였다.

아버지는 우리가 떠나오던 날 아침.. "병철(시동생)이가 주말마다 다녀갈때마다 먼산만 보고 있는 니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렴.. 자식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또 올 줄 알지만 매번 떠나보낼 때마다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하셨다..

그리고 같은 날 우리가 이사를 마치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시동생의 차에 올라타고 떠나실 때 어머니는 "이제 정말 너희 둘 뿐이다. 우리는 이제 가야한다." 하셨다. 결혼을 했을 때보다 더욱 어른이 되는 느낌.. 이제 정말 혼자서 길을 가야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나고 달이가 태어나자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해졌다.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이, 나의 손길이 없으면 그대로 방치되는 한 아이의 탄생과 그에 이은 성장을 겪으며 나는 우리가 독립할 때보다 더 큰 어른이 되었다.

나는 이 해의 마지막 글의 말미에 내가 수년전 써 놓았던 한 수필을 붙이고자 한다. 그리고 어른이 된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하여 어린 시절 꿈꿔왔던 그 큰 자유를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에 부치는 일인가를 이야기하며 다시 한번 엄살을 늘어놓으려 한다.


>>자유의 길<<
나의 여고시절, 우리 학교에는 "구름다리"라고 이름붙은 장소가 있었다. 마음이 울적할 때면 이 곳을 찾아 기분을 풀곤 하였다.

그런데 거기서는 하나의 작은 골목이 내려다 보였다. 그 골목에는 야쿠르트차를 밀고 가는 야쿠르트 아줌마, 갓난쟁이 아이를 들쳐업고 제 힘으로 이제 막 걷기 시작한 큰 아이의 머리를 톡톡 쳐서 발걸음을 재촉하며 시장을 보러 가는 아주머니들, 싱싱한 공장직송 계란을 팔러 다니는 리어카 아저씨들, 공공칠 가방에다 바바리를 멋들어지게 받쳐입은 회사원 아저씨들의 모습등이 보였다.

어린 나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얼마나 자유롭게 보였던가! 내가 학교라는 울타리안에 갇혀있는 이 시간 자유롭게 저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이란... 부러움이 섞인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던 단발머리 여고생이 삼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학교를 졸업하고 그렇게도 열망하던 자유인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대학 2학년이 되었던 어느날이었다. 나는 그 날, 집 근처 한 초등학교의 담장을 따라 걷고 있었다. 문득 여고때의 생각이 나서 올려다 본 초등학교의 창문가에는 한 계집아이가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아이도 그 옛날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였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그 때 그 길을 가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의지대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유를 가졌으되 그에 따른 책임까지도 양 어깨에 진 사람들이었다. 자유라는 것에는 항상 그 무게만큼의 책임이 뒤따른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문득 자유는 비록 누군가에 의해 유보되었을지 몰라도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을 아직 지지는 않은 그 어린시절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