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하기가 싫어서 음식점 스티커를 뒤적거리다가 김치 볶음밥이
눈에 들어온다.
음! 4000원 그 돈이면 우리 아가의 베지밀이 17개가 아니던가!
냉장고 앞으로 간다. 냉장고 문을 열고 김치통을 꺼내고
양파와 양배추도 꺼낸다. 그리곤 냉동실을 열어 돼지고기를 내린다.
전자렌지 속으로 들어간 돼지고기가 녹아가며 고기 냄새가 난다.
김치통을 열고 새빨간 김치 하나를 꺼내 도마위에 올려 잘게 썰기
시작한다. 양을 조절하기가 힘들다. 결국은 생각보다 많은 양의
김치와 양파 양배추를 준비한다. 가스렌지위의 냄비가 달구어 지면
들기름을 한방울 떨어트린다. 기분좋은 고소한 내음새.. 식욕을
자극한다. 약간의 고추가루와 설탕, 후추를 넣고 김치를 볶기
시작하면 매콤함이 콧속으로 스며둔다. 큰 접시를 꺼내 밥을 편편하게
담는다. 조금더 조금더 하다가 결국은 양이 또 많아진다.
냄비 속의 김치가 아주 맛나게 익었다. 밥위에 볶아진 김치를
올린다.
그리곤 수저를 들고. 그 넓은 접시에 코를 박고 밥을 헤치우기
시작한다. 접시가 비어지는 동시에 나의 배는 포만감에 쌓여간다.
그리곤 그 포만감보다 깊은 곳에선. 나자신에 대한 회의가 밀려온다.
뚱띵이!
설겆이를 끝내고 가스렌지에 주전자를 올린다. 끓어오르는 물.
큰 머그잔에 녹차를 두개나 놓고 물을 하나 가득 담는다. 그린곤
겁도 없이 그 뜨거운 녹차를 마셔된다. 마치 그 한컵의 녹차로
내 위장속의 음식물이 다 녹아들길 바라며. 그리곤 마음속에서
나의 음성이 들린다. '하루에 두끼만 먹는다며'
그럼, 난 대답한다. '물론이지 저녁은 먹지 않을거야'
누가 나를 이렇게 어리석게 만드는가. 그건 나와 같이 사는 동거인
때문이 아닌가! 그가 주는 상처는 끔찍하리 만치 나를 내리누른다.
'날씬한 여자랑 한번 다녀보자거나.' '누구누구처럼 좀 날씬했으면'
하는 식의 말들. 나의 허기는 아마도 애정결핍 같다.
갑자기 불어나는 살들 속에서. 내 가슴은 텅텅 비어간다. 그리곤
가슴의 텅빔과 맞물려 뱃속은 늘 궁핍하다.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토요일 오후. 나는 김치볶음밥을 해먹었다. 그리고 나의 동거인은
어제 망년회를 앞세워 외박을 했다.
나는 그 화풀이라도 하는듯 아주 많은 양의 점심을 해치운다.
남자들이여! 들을지어다.
당신아내의 허기짐은 위장이 아니라 가슴임을 알고 있는가!
가슴이 텅비어 갈수록 위장도 비어 간다는 사실을 알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