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함과 게으름의 결과가 이번 산행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건만 꾸준한 운동과 부지런함은 일을 시작하면서 거리가 멀어졌으니 산을 오르면서 뒤처지고 힘든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나이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순의 나이에도 산을 펄펄 나는 사람이 있는가 보면 20대 젊은 혈기가 왕성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기어가는 자들이 있으니 평상시 얼마나 몸을 관리했는지 보지 않아도 훤하다. 새벽 5시가 되면 훤히 동이 트이는 초여름... 뿌연 안개가 휘감아 도는 새벽을 가르고 산행준비를 하며 나선다. 아이들 먹을 끼니거리까지 준비해 놓는다고 부산을 떨다 시간 반쯤 잤을까... 눈도 덜 뜨인 상태에서 차에 오르니 잠이 물밀듯 밀려온다. 남편을 다른 자리로 밀어내고 혼자 누워간 탓인지 메슥거리면서 멀미가 오기 시작한다. 두시간 여를 타고 가면서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 보지만 속도 몸도 모두 불편하기만 하다. 매일 아침 다섯 시면 일어나 운동을 해 왔던 남편의 목소리가 잠결에도 쌩쌩하게만 들려온다.. 게슴츠런 눈으로 본 이른 아침 차창 밖의 정경은 초록의 계절이 익어가는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었을까... 차에서 내려 모두들 산 오를 준비를 철저히 한다. 신라 선덕여왕때 지어졌다는 희방사를 거쳐 비로봉을 넘어 내려오는데 왕복 6시간 정도 걸린다는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매일 매일을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와 책보기만을 하던 내 운동 부족에 걱정이 앞선다. 손님이 와 봐야 잠시 일어났다 옷을 팔고 나면 앉기가 바쁘니 모든 근육과 지방 덩어리들이 점점 불어나는건 당연지사... 그런 나를 남편은 늘 걱정하면서 운동을 시작하라고 말을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산 초입에서부터 축 처지기 시작한다. 그냥 똑같은 템포로 천천히 오르라는 분의 격려의 말을 들으면서 혼자 묵묵히 계곡의 물흐름소리와 산새소리와 함께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초겨울에 와 보았던 소백산행.. 경치에 반해 눈오는 모습에 힘든줄 모르고 올라갔던 산 코스와는 다르게 희방사쪽으로 오르는 길목은 한시간여의 가파름으로 인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올라가는 힘겨운 나와의 싸움이었다... 우리들 삶의 굴곡이 있듯 산행은 자신과의 싸움이라 본다. 발길 내딛는 걸음걸음의 무게는 삶의 애환, 고초등이 엮어내는 것과 같다는 것은 산을 오른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져본 생각일 것이다. 산길을 우리네 인생과 함께 비유를 많이 한다. 힘이 딸려 뒤로 축 처지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졌다. 마냥 평지만 있다면....사는것이 무미건조하다면....어떨까.. 돌계단..암벽 등 힘든 코스를 엉금엉금 엎드려 기면서 조금만..조금만 가면 괜찮은 길이 나올거야 하는 기대감으로 넘어가지 않는가.. 살면서 힘들었던 시간들을 참고 견디면서 살아가질 않던가... 등반을 포기하고 다시 내려갔던 일도 겪어 봤지만... 그때 만약 힘들어도 참고 정상까지 도전했다면 또다른 감격으로 와 닿았을텐데 지나고 보니 후회스럼 또한 없지 않았다. 힘든 몸을 이끌고 정오가 다 되어서 비로봉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눈만 빼꼼히 내놓고 온얼굴을 눈과 바람으로부터 보호했던 지난 겨울.. 거세고 세찼던 겨울바람은 한 계절을 건너 시원한 바람이 되어 폐부 깊숙히 파고 들었다. 산을 타면서 흘리는 땀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 안에서 나오는 모든 불순물들과 함께 이곳 정상인 비로봉에서 모두 없애고 여기저기서 들리는 애국가, 만세삼창, 환호성등을 뒤로 하며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오르내림과 장애를 몸소 산행을 하며 부대끼고 자기 자신을 한번 더 돌아보게 하고 명상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주는 산.... 긴 산행시간에 주어지는 많은 생각들이 산길을 거닐며 머리안에서 끌어내 차곡차곡 정리할 수 있어 너무 좋다. 일상에서의 잡념이 아름다운 소리들과 자연을 접하면서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다양하다. 사람들마다 모두 다르기는 해도 이 아름다운 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내려가는 길에서도 역시 제일 후미였다. 늘 처지기만 한 나를 보면서 남편은 내심 걱정이 되는지 계속 뒤 보기를 수십번.. 결국 내 발걸음에 남편도 지쳐버리고 마는것 같다. 거의 다 내려 왔을까...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나를 유혹한다. 다리의 힘이 풀리면서 후들거린다. 맨 발을 담그니 물이 얼음장처럼 얼얼해 아픈 다리의 피로가 싹 가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차장까지 오가는 택시들이 지친 등산객들을 현혹시킨다. 만원이나 하는 요금을 주면서 타고가는 사람들.. 다 내려왔다 싶은 안도감에 주차장가지 내려가는 길이 너무 길어 결국은 사륜차에 의지하는 등산객들의 마음을 읽을수 있을것 같았다. 힘든 산을 넘었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걸어 내려가리라 맘먹은 나는 남편과 함께 제일 꼴찌로 내려가 일행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막걸리와 함께 한 판 벌리고 있었던 일행들이 고생했다면서 한잔을 건낸다. 가져간 얼음물로 갈증이 날때마다 입을 적시곤 했지만... 물과는 다른 막걸리의 맛을 무엇에다 비교할까... 한잔 쭈욱하고 들이킨 다음 두부김치와 함께 입맛을 곁들이니 그 또한 별미이다. 흔하디 흔한 음식이지만 갈증과 허기짐에 마시고 먹는 것을 별미라 칭하니 두부가 산중에서 출세한 편이다. 신체적인 연령과 정신적인 연령의 중간...내 나이 마흔다섯.. 항상 마음은 20대라고 자부하면서 몸이 말을 듣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내일 아침이면 운동가자며 깨우는 남편의 말을 들을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경북과 충북의 경계에 걸쳐 있는 소백산.... 너무 힘든 탓에 지금도 몸은 둔하고 아프기만 하다. 하지만 또 하나의 기록을 남기고픈 생각에 담고 있었던 내 마음들을 펼쳐 놓는다. ** 소백산 희방사(경북영주) - 제 2연화봉 - 제 1연화봉 - 비로봉 - 비로사(경북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