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는 남편의 고교졸업 20주년기념 사은회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일주일 전부터 그곳에 함께 가자는
이야기를 했지요.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모처럼의 나들이를 겸해서 이른 아침을
먹고는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차창밖의 들녘에는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이 넉넉한 가을을 알려주고
길가에 코스모스 한들 한들 손 흔들며 우리를 반겨주었어요.
교정에 다다랐을 때엔 마흔 살 먹은 아저씨들이 여기 저기서
반가운 인사를 건네더군요.
야... 자...하면서 어깨를 툭툭 부딪치며 마냥 좋아하는 모습들이
그렇게 정겨워 보일수가 없었어요.
하늘은 높고.....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아이의 아빠들의 흥겨움......
20년전 은사님들의 머리는 희끗 희끗하시고 이미 이 세상을 떠나가신
분들도 계시다 하였습니다.
20년전 반편성 그대로 우리 가족은 3학년 3반이었던 남편을 따라
3학년 3반이 되었지요. 하루 동안.....
숙연한 마음으로 기념식을 갖고 모두들 스승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시간이었습니다.
2부 순서로 화기애애한 가운데 점심을 들고
3부에는 격의 없는 여흥시간을 가졌지요.
구수한 입담으로 사회를 보는 남편의 친구는 어쩜 그리로 사회를
재미있게 보는지 남편에게 내가 그 친구의 직업을 물어볼 정도였지요.
남편은 은근히 내게 노래 한곡을 부르라 했어요.
그래요.
남편이 그렇게 기뻐하고 좋아하는 날에
아내인 내가 노래 한곡을 부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어
"만남"이란 노래를 불렀지요.
친구들이 우스개 소리로 너 참 장가 잘갔구나 ..... 가수를 데리고
사는 구나..... 그런 말이 듣기 좋았는지 남편의 어깨가 조금은
으쓱해짐을 느꼈습니다.
사는게 무언지 일요일에도 늘상 바빠서 참으로 오랜만에
이렇게 함께 친구들과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그에겐 참으로 남다른 느낌이 드는 듯 했답니다.
아직은 한낮의 햇살이 따가운데 모처럼 정장으로 차려입은
남편의 이마에는 땀이 흐를 정도로 실내가 좀 더웠지만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일요일을 보냈어요.
남편은 넓은 등으로
20년전의 담임선생님을 업어드리고 제자들은 큰 절을 올렸지요.
이제껏 남편이랑 살면서 그런 자리엔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곳에 가기전에는 모처럼 일요일인데 푹 쉬고 싶은 생각도 들었고
우리 가족끼리 오븟하게 어디로 나들이를 가고 싶은 유혹도 사실은
있었지요.
막상 그곳에 가 보니 참 오길 잘 했다고
자신에게 내심 말하게 되더군요.
남편이 고교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해 하는 시간
곁에서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흐믓하고 그랬어요.
행사가 끝나고 교정을 둘러 보았는데 유난히 오랜 세월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듯한 침엽수 몇그루가 눈길을 끌더군요.
처음으로 본 교정인데도 학교엘 가면 이상하게 어디든지 낮설지가
않음은 학교란 누구에게나 오래된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라
그런가봐요.
십대의 혈기 왕성한 함성이
그곳에서 지금도 함성으로 남아있는 듯 했지요.
남편은 오래도록 발길을 떼지 못하다가
돌아오는 차안에서 내게 오늘 하루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습니다.
모두들 살기에 바빠서 잊고 지낼수도 있었건만
그곳에 모인 친구들, 은사님들 모두가 한 마음 되어
그리도 흥겨워 하는 모습들을 보니
더없이 의미 있는 하루로 다가오는 일요일이었습니다.
이제 또 그시간이 끝나면 모두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겠지만
모두들 그런 마음으로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잊지않고 보답하는
마음으로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네들의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헤쳐나갈 수 있는 명분이 있으리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제껏 보아온 모습과는 또 다른 남편의 정스런 모습을
보면서 더불어 행복해하는 하루가 많이 고맙게 느껴진
일요일이었습니다.
길가에 피어난 이름모를 꽃들과 눈인사를 주고 받으며
푸근한 맘으로 하루를 접었습니다.
이젠 아줌마, 아저씨가 되어 버린 남편의 오래전 친구들의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하길 빌어보며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