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이 내 몫일 때…
형부에겐 반찬을 뒤적이는 습관이 있다.
반찬을 뒤적이는 습관이 있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일이 한 가족일 경우도 유쾌할 리가 없지만 한 가족이 아닐 경우엔 더욱 곤혹스럽다.
남편과 나도 언니랑 형부가 우리 집에 와 있을 때 그 문제로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몇 달 이 될 경우, 밥 먹는 일이 고역이 되기도 한다.
언니에게 몇 번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형부의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언니에겐 부부 사이인 형부의 습관이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겠고, 형부도 아내인 언니의 불평이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해는 된다.
그러나 우리 집에 몇 달씩 와 있을 때가 많은 언니네 인지라 남편과 내겐 형부의 습관이 결코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될 수가 없다.
밥공기 대신 커다란 개인 접시에 부페 식으로 반찬을 덜어다 놓고 먹을 수 있도록 식탁을 차리지만 그런 일에 익숙치 않은 형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찬을 뒤적이는 경우가 많다.
반찬을 따로 담아 주어도 어느 때는 자기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처제인 내 그릇으로 서슴없이 젓가락이 오기도 한다.
남편과 나는 언니 가족이 겪는 숱한 불행을 생각하면 마음 아픈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형부와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다 보면 언니 가족이 우리 집에 와 있는 것이 짜증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사람들은 악역을 맡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악역을 맡는 것은 싫다.
하지만 악역이 내 몫일 수 밖에 없는 때도 있다.
그런 때, 악역일지라도 내 몫으로 주어진 일에 충실하자는 것이 내가 노력하며 사는 일 중의 하나다.
그래서 간혹 사람들에게 지독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을 때도 있고, 그런 평을 들을 때 씁쓸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오늘 아침도 악역이 내 몫일 수 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
아침 밥상에서 김치를 뒤적이는 형부의 버릇이 도를 넘어선 것이다.
김치 조각을 젓가락으로 던지듯 하면서 김치를 뒤적이는 형부는 맘에 드는 김치 조각을 찾아내지 못했는지 계속 그러고 있었다.
언니는 잠자코 있었다.
남편도 물론 잠자코 있었다.
나도 잠자코 있고 싶었다.
하긴 숱하게 많은 경우 나도 잠자코 있었다.
내 안에서 잠자코 있고 싶은 나와 악역이지만 내 역할을 해야 된다는 내가 싸웠다.
그리고 결국 나는 이번에도 내가 맡은 악역에 충실했다.
“형부! 그렇게 김치를 뒤적이면 어떡해요?”
이런 때 나는 버릇도, 철딱서니도 없는 처제가 되어 소리지른다.
“그럼, 나보고 이런 김치 조각을 먹으라는 말이냐?”
형부도 같이 소리지른다.
형부는 자기가 들었다 놓았던 김치 조각을 젓가락으로 다시 한 번 들었다 던지듯 놓는다.
형부의 반말에 익숙하고 그런 일을 문제 삼지 않기 위해 나 역시도 가끔 어리광 섞어 반말 비슷하게 말하는 사이라 형부의 반말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반찬을 뒤적이는 일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는 형부의 사고 방식은 문제 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 다른 사람은 형부가 골라내 버린 조각이나 먹으라는 말이예요?”
“…….”
“언니, 형부 김치는 앞으로 따로 담아.”
“그래, 내 것은 따로 줘!”
“한 번 젓가락이 닿은 김치가 먹기 싫으면 자기 접시 한 쪽에 가져 다 두면 되잖아요.”
“…….”
“언니는 왜 반찬을 뒤적이는 형부랑 결혼해서 내 속을 썩이는지 몰라.”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내 공격에 몇 번 반격을 시도하던 형부가 양보한다.
“알았어! 앞으로는 내 접시에 가져 다 둘게.”
그런데 하루 종일 내 마음이 아프다.
언니랑 형부가 우리 집에 와 있는 일을 얼마나 치사하게 느낄까 생각하면 한 없이 마음이 무겁다.
어느 때는 전혀 김치를 먹지 못하고 식사를 하기도 한다는 남편에게도 미안하다.
왜 악역은 내 몫일 때가 많을까?
나는 오늘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