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은행잎이 파릇파릇 나풀거리는 거리를 같이 걸었다.
시어머니의 주선으로 만남을 가지게되었고 퇴근후 살랑대는 봄바람을 맞으며 커피도 마시고, 음악도 듣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이 나누면서 시간이 흘러 가을이 되었고
29살의 동갑내기 우리는 11월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 과정까지 오는데는 어렵지않았지만 친정어머니의 반대를 감수해야했다. 나는 9남매의 막내이고 어려움이 뭔지 돈이 그렇게 중요한지도 모르고 그때까지 살아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나는 돈의 중요성을 무시했다. 벌면 되는것이고 살아가는데 뭐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랴,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어리석고 철없는 생각인지 모르겠다.
몰랐기에 용감했던것 같다.
문제는 결혼을 앞두고 생활할 집을 찾는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시어머니가 안내한 집은 정릉의 무허가 판자집,
내가 우겨 시어머니와 같이 살기를 희망하고 방 두칸짜리를 구하러 다녔던것이다. 난생 처음으로 판자집을 보았다. 조그만 방 2칸에 한칸은 창문도 없어 캄캄하고, 드나드는 현관문(?)은 키가 큰 나는 고개를 숙여야만 가능한 집
또 화장실에 야외에 있어 여러집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판자로 만들어진 간이화장실.
이게 웬 일인가?
미칠것 같았다.
집에와서 나는 펑펑울었다. 아무말도 할수도 없었고 설명할수도 없었다. 어떻게 설명을 할수있을까?
오빠가 눈치를 보더니 집이 마음에 들지않았느냐고 물었기에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 정도라는것은 나의 자존심도 내 남편될사람의 자존심도 상처가 될것 같아서,..
이야기를 듣고 오빠는 결혼자금에서 일천만원을 뽑아 전세집을 조금 넓은곳으로 얻어보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나는 살림살이를 아주 간소하게 마련하고 나머지 자금으로 정릉의 반지하 다세대 주택을 ㅇ얻었고 새집이어서 깨끗했다.
막상 결혼일정을 잡고서부터 남편집안의 세세한 부분을 알게되었다.
복잡한 가족사가 있었다.
3살때 부모님의 이혼, 이집 저집 보내어져 눈칫밥먹으면서 자란 어린시절, 남의 집 양자로까지 갔던일 , 며칠간 혼자서 살아가고 밥을 굶었던 어린시절,..
시어머니의 재혼, 계부에게서 구박받고 학대받았던일들,..떠돌이 생활, 고학,..
상상도 할수없었고 소설속에서 볼수있는 그런일들이 그려져있었던것이다. 남편의 성은 어머니의 성을 가졌고, 이름도 시어머니가 호적에 올려진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버려 성도 이름도 모두 바뀌어버린 사람,..
이런 사람이 나와 결혼할 사람이었다.
어쨌던 결혼식은 보름 남짓 남았고,
친정이나 언니 오빠에게 차마 이 말을 할수가 없었다.
어찌할까?
어찌할까?
속이 타고 현기증이 일고 나는 이 일을 어찌해야할지 결정할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이런 이유로 약속되 결혼식을 파기할 용기도 없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보수적이고 유교의식이 강한 내 친정의 친척과 가족은 나를 어떻게 볼것인가?
나는 결국 결심할수 밖에 없었다.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일에 대해서 끝까지 내가 책임져야겠다고,.. 야무진 결심을 하고 결혼식을 올리고
제주도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친정에 들렀다가 저녁무렵에 시어머니가 이사를 한 새 집으로 시집을 왔다.
시집을 온 새색시에게는 당연히 별도의 상이 차려졌고 음식도 정갈하게 차려진다는것은 내 어릴때부터 보아왔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친척들과 둥근상에 겸상으로 차려진 음식들은 정갈한것 좋아하고 깔끔한것 좋아하던 내 친정집 음식과는 너무 달랐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좀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억지로라도 먹어야할것 같아 조금먹고 배부르다는 이유로 숟가락을 놓았다.
새로운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